봄날의 산책, 퇴직 후 발견한 작은 행복

알람없는 아침, 나만의 작은 행복들

by 비채맘


알람이 울리지 않는 아침이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유가 있다.

벚꽃이 지고 철쭉이 피어나는 변화를 눈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


퇴직 후 일상은 이렇게 달라졌다.


알람 소리에 허겁지겁 눈을 뜨던 아침은 사라졌다.

32년간 이어진 직장생활의 굴레를 벗어나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핸드폰 알람 대신 창문 너머 들려오는 새소리,

그리고 간간이 비치는 햇살이 나를 깨운다.


'시간이 없다'는 말로 하루를 요약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창문을 열고 하루를 맞이한다.


직장인이었던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평일 낮의 산책은 이제 나의 일상이 되었다.

이 변화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관찰할 수 있는 여유'다.


예전에는 산책도 하나의 과업이었다.

만보기 앱을 켜고 '한 시간',

'5킬로미터'라는 목표를 세우고 앞만 보고 걸었다.

마치 업무를 처리하듯,

산책조차 해내야 할 일로 여겼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매일 같은 공원을 거닐지만,

매일 다른 풍경을 본다. 불

과 며칠 전만 해도 벚꽃이 만발했는데,

이제는 꽃잎은 떨어지고 새잎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문득 가지에 붙어있는 마른 꽃잎들이 마지막 자신의 색깔을 뽐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인생을 보는 것 같았다.

한때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고 봄을 맞이하는 설레임을 선사했던 벚꽃이 떨어지는 자리, 그 빈자리를 튤립이나 철쭉 같은 다른 꽃들이 차곡차곡 채워가는 모습을 보며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느꼈다.


흔들리는 나무와 꽃들,

따스한 봄 공기,

살갗을 간질이는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다 보니 문득 입에서 나온 말.

"아! 행복하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퇴직하면 뭐 할 거예요? 행복하세요?"

이 질문이 참 재미있다.

마치 행복이 성취해야 할 목표인 것처럼.


어느 인터뷰에서 장도연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행복하려고 하지 않아. 왜 행복해야 되지? 이렇게 살면 실망할 일이 없잖아."


처음에는 이 말이 냉소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산책길에서 무심코 느낀 행복의 순간들을 경험하고 나니, 그녀의 말이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는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는 순간 오히려 행복에서 멀어지는 역설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은 목표가 아닌, 삶을 열심히 살아갈 때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긍정적인 부작용이 아닐까?


32년간의 직장생활은 치열했다.

목표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놓치기도 했다.

하지만 아쉬움은 없다.

오히려 그렇게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들이 더 감사하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들, 느낄 수 없었던 감정들을 이제야 발견하고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행복은 퇴직이라는 '결과' 때문이 아니라, 32년간 열심히 살아온 '과정' 덕분이다.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여유와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벚꽃이 지고 철쭉이 피어나는 것처럼, 내 삶의 계절도 바뀌었다.

직장인에서 퇴직자로, 바쁨에서 여유로, 목표 지향적인 삶에서 과정을 즐기는 삶으로.


퇴직 후 삶이 두렵기도 했다.

그동안의 익숙함을 벗어난다는 것은 안정감을 잃는 것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동시에 설렘도 컸다.

내 시선과 행동에 따라 삶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이 가슴을 뛰게 했다.


마른 벚꽃잎이 아직 가지에 남아있지만, 새잎들은 이미 자라나고 있다.

자연은 그렇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 순간에 담아낸다.

나의 삶도 그러하다. 32년의 직장생활이 남긴 흔적과 함께, 새롭게 피어나는 퇴직 후의 일상이 공존하고 있다.


퇴직 후 깨달은 것이 있다면, 행복은 대단한 성취나 특별한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산책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꽃 한 송이, 머리 위로 흩날리는 벚꽃잎, 따스한 봄 햇살 한 줄기...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행복이라는 그림을 완성한다.


이제 나는 알람에 의해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리듬에 맞춰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매일 공원을 산책하며 벚꽃이 지고 철쭉이 피어나는 자연의 순환을 목격한다.

행복을 목표로 삼지 않아도, 행복은 어느새 내 곁에 와 있다.


알람 없는 아침, 벚꽃 지는 공원에서 찾은 나만의 작은 행복들.

32년의 치열한 직장생활 끝에 발견한 이 소소한 행복이, 앞으로 펼쳐질 나의 새로운 삶에 더 많은 의미를 더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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