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기업가의 꿈을 포기하다
퇴직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순간, 어깨 위에 올려져 있던 무거운 짐이 한 번에 내려놓아지는 느낌이었다.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라는 이름의 그 짐 말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 할수록, 인간관계라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MZ세대의 자유분방함과 기성세대의 고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듯 균형을 맞춰야 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지각한 민원인들의 무례함 앞에서도 미소를 지어야 했고, 사무실의 평화를 위해 진심을 삼켜야 했던 날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대외적 이미지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야 했던 그 시간들. 정작 '일'보다는 '사람' 때문에 더 많이 지쳐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퇴직 후에도 지인들과의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예전에는 설레던 만남이 이제는 버거운 의무처럼 느껴진다. 의미 없는 대화들, 형식적인 안부들... 그 모든 것들이 조금씩 소진되었다.
밥 한 끼, 커피 한 잔의 시간. 두 시간이 내가 견딜 수 있는 한계였다. 그 이상 시간이 지나면 가면이 벗겨지고 진짜 모습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버린다. 지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본 지인들은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 한다. 그럴 때면 미안함과 동시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어제, 오랫동안 멘토로 여겨왔던 분과 마지막으로 관계정리를 했다. 가슴 한편이 아프면서도 홀가분하다. 직장에 다닐 때는 꿈꿨었다. 퇴직 후 1인 기업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모습을. 하지만 진짜 자신과 마주하고 나니 깨달았다. 나는 사업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그것을 위해 감내해야 할 인간관계의 복잡함은 직장 생활보다 더 버거웠다.
평생 멘토로 모시고 싶었던 분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신념의 차이는 생각보다 깊은 골을 만들어냈다. 예전 같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극단적으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함께 걸어갈 자신이 없다. 다음 주 그분의 모임에서 북토크를 하기로 했었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내 이야기가, 나의 경험이 누군가의 사업 도구로 사용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분이 보내준 숏츠 영상에서도 내 주제가 활용된 흔적들이 보였다.
퇴직을 결심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불필요한 인간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오롯이 진정 원하는 것에 단순하고 뾰족하게 몰입하며 살고 싶었다. 이제서야 그 모습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혼자 있을 때 가장 나다운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투자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경제적 자유,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적 자유. 더 이상 누군가에게 끌려다니고 싶지 않고, 어디엔가 소속되어 얽매이고 싶지도 않다.
퇴직 후 3개월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지금, 그리던 삶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투자를 하며 살아가는 삶. 그 속에서 진정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살지 않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꿈꾸는 진짜 자유이고, 조기 퇴직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