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상에서 키우는 두 번째 꿈
32년.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회사라는 이름의 무대에 서서 누군가가 써준 대본을 읽어왔다.
아침 6시 알람은 일상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었고, 발걸음을 재촉하던 출근길은 무대 뒤 복도 같았다.
그런데 이제, 모든 게 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창가에 자리한 나만의 책상이다.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은 그 작은 공간에서, 나는 비로소 내 이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퇴직금으로 하나 둘 장만하 기기들이 책상 위에 나란히 놓여 있다. 아이맥, 맥북, 아이패드, 그리고 7년을 함께한 윈도우 노트북까지. 어제는 삼성 올인원PC도 새 식구로 맞아들였다.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해?"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각각 다 제 역할이 있다고. 글을 쓸 때는 윈도우PC, 영상을 편집할 때는 아이맥, 책을 읽고 싶을 때는 아이패드가 나의 동반자가 된다고.
슈어 마이크 옆에 놓인 마샬 스피커에서 잔잔한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온다. 스노우볼 조명이 만들어 내는 따스한 빛 아래에서, 나는 천천히 키보드를 두드린다.
이 모든게 사치일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작은 공간에서 나는 처음으로 온전히 '나'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몇 년 전부터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일이 뭔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단지 회사에서 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은 아니라는 걸 알았을 뿐.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좋아하는 일이란 게 거창한 건 아니었다.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어제 쓴 글을 다시 읽어보는 것. 마이크 앞에 앉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녹음하는 것.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어도 전혀 피곤하지 않는 것.
그런 소소한 순간들이 모여서 '좋아하는 일'이 되었다.
물론 처음엔 서툴렀다. 아직도 서툴다. 미디어 영상 하나 만드는 데도 온종일 걸리고, 팟캐스트 녹음할 때면 "어...음..." 소리가 절반을 차지한다.
그래도 괜찮다.
누가 재촉하지 않고, 누가 평가하지도 않는다. 실수해도 되고, 느려도 된다. 이 책상 앞에서만큼은 내가 주인공이니까.
가끔 의문이 든다.
'이게 정말 일이 될까?'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나는 창밖을 바라본다. 계절이 바뀌고, 나무가 자라고, 새들이 날아다는 걸 보면서 생각한다.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의 속도로 자란다고. 늦은 건 없다고. 지금이 바로 나의 계절이라고.
32년간 남의 꿈을 키워주느라 미뤄뒀던 나만의 꿈을, 이제서야 꺼내어 햇볕에 말리고 있다.
퇴직은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었다.
그 시작을 나는 이 작은 책상에서 맞이했다.
어떤 이는 묻는다. 퇴직 후 뭘 하며 지내느냐고.
나는 대답한다. 꿈을 키운다고. 아주 천천히, 아주 정성스럽게.
창가 한 뼘에 마련한 이 작은 세상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다.
당신도 그런 공간이 있는가?
온전히 당신이 될 수 있는, 아주 작지만 따뜻한 그런 곳 말이다.
만약 아직 없다면, 지금 당장 만들어보면 어떨까.
거창할 필요 없다. 창가 한 뼘이면 충분하다. 거기에 당신만의 꿈을 하나씩 올려놓아 보자.
세상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큰 변화가 거기서 시작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