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 읽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린뿔 Mar 26. 2021

아픈 몸이 아닌 '다른몸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관람평

2020년에 가장 자랑할만한 일이 있느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온라인 연극을 봤던 경험을 말할 것이다. 직접 현장에 가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온라인'이라는 조건이 오히려 감상의 기회를 주었다. 온라인 연극의 시도는 베테랑 연출가에게도, 초보 배우들에게도, 관객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봐도 감상평을 남기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사실 '익숙하지 않음'보다 '귀찮음'의 탓이 크다) 늘 그냥 넘어갔다. 그러니 리뷰 이벤트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이런 녀석이 웬일로 '리뷰'라는 걸 다 쓰고 있다. 도저히 글을 남기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아래 글은 작년 7월에 잠시 타오른 짧은 열정의 흔적이다. 그 열정 덕에 세 권의 책도 받았다. (애석하게도 아직도 못 읽었다) 이 연극. 아, 정정하겠다. 이 연극뿐만이 아니라 모든 연극이 다시 상연될 날을 꿈꿔본다.




눈부신 조명이 아직 드리우지 않은 무대 위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조심스럽게 얹어졌다. 

그리고는 다른 무대보다 천천히 불을 밝히며 연극의 막이 올랐다. 

그 뒤로 이어지는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은 몸'들'의 이야기들. 


다른 몸들은, 서로 달랐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다르지 않았다.

배우 한 사람의 아픔은 곧 다른 출연자의 아픔을 읽어낼 수 있는 열쇠가 되어, 각자의 일기에 불과할 것이라 한계 지은 이야기들이 마침내 문을 열고 무대 위로 올랐다.


세상 어느 곳보다 표준적인 생애, 이른바 '평범한 삶'의 모습을 숭상하는 한국 사회에서 아픈 몸은 예기치 못한 하나의 오류이자 잘못으로 여겨진다. 그것도 아주 개인적이기만 한.


대학입시에서부터 취업과 결혼, 출산과  양육으로 이어지는 생애 코스 위에서 벗어난 신체는 동정과 의아함의 시선을 남겼고, 누구나 어떤 나이에 걸맞은 경험을 겪어야 한다는 굳은 믿음의 체계는 아픈 몸에 돌팔매를 던졌다. '청춘' 혹은 '젊음'이란 단어 앞에서 휴식이 필요한 신체는 지속적인 노동 생산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쓸모없음의 상징이 되었으며, 갑작스러운 신체의 아픔은 패자의 무례한 변명으로 왜곡되었다.

그러나 이 연극무대에서 다른 몸들은 그저 하나의 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파도 미안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몸으로.


온라인으로만 무대를 관람했다는 아쉬움이 사라질 정도로 몰입하며 연극을 곱씹었다. 완전히 밝지도 어둑하지도 않은 무대는 배우의 목소리와 대사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게 이끄는 낯선 공간을 선뜻 내주는듯했다. 그들은 이 꾸밈없는 공간에서 외롭게 울기도, 허탈하게 웃기도, 참다못해 화내기도, 아프게 쓰러져있기도, 아름답게 춤추기도 했다.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하이라이트 영상 썸네일 (사진=유튜브)

그들이 몸으로 들려준 이야기들은 동시에 내가 나의 몸으로 경험해 왔던 여러 억압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전신의 근육세포가 자신을 복구하지 못하고 서서히 무력해져 갈 때, 늘어가는 위축의 규모만큼이나 필요한 의존이 내 일상의 대부분을 채워갔다. 이따금 허벅지와 고관절에 통증이 밀려와 휴식해야 하고, 조금만 무리해도 전동휠체어 레버조차 젖히지 못할 정도로 진이 빠지고, 사소한 온도 변화에도 근육들이 굳어 버리는 상황―그래서 난 겨울을 몹시 싫어한다―은 내가 먼저 타인을 멀리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나로 인해 누군가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몸을 위해 주어지는 의존과 배려는 항상 낯설고 망설여진다.

연극에서는 말한다.

방석이 필요하다면 방석을, 매트가 필요하다면 매트를 요구하라고. 혼자 아프지 말자고. 


그 당연한 말이 너무나도 사무쳤다. 나의 아픔도 장애도 모두 살아 있는 삶 그 자체이므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온몸으로 껴안고서 말해야 한다. 그럴 용기를 이 연극에서 얻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몸은 정당하다. 어떤 몸이라도 존중받아야 한다.


다른 몸들이 남겨놓을 고통의 목격담과 증언이 나날이 늘어나 ‘완전함’을 더 세차게 부정했으면 한다. 사람의 몸도, 그 몸을 어떻게든 치유하려는 의학의 욕망과 지식도, 실은 불완전하다. 아마 그 사실은 다른 몸을 가진 존재만이 아는 금단의 비밀 일지 모른다.


(그러니) 모든 다른 몸들이 자신의 저자가 될 때까지 연극은 계속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연극을 홍보하는데 열정적이었던 지인에게 고마움을 돌린다. 그 덕에 이렇게 귀중한 공연을 보게 되어 영광이었다. 모든 배우분이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한 명, 한 명이 빛났고 멋졌다.


2020. 07. 22.

매거진의 이전글 넘지 말아야 할 ‘선’ 넘을 수 없는 ‘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