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0~12일, 여행 354~356일 차, 에콰도르 키토
칼리에서의 충전을 마치고 다시 길을 떠났다. 다음 목적지인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로 가기 위해서는 콜롬비아의 국경도시 이피알레스에서 잠시 머물렀다 이동해야 했다. 콜롬비아의 끝에서부터 에콰도르의 수도이자 지구의 중심인 적도가 흐르는 키토로 향하는 이야기를 남겨본다.
칼리에서 버스로 약 8시간 정도 이동하면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의 국경도시인 이피알레스에 도착한다. 한 번에 키토로 가려면 이동시간이 길어 피로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하루 정도 머물고 낮에 간단히 이피알레스의 유일한(?) 볼거리로 알려진 절벽의 교회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이피알레스는 숙소 환경이 열악한 편이다. 우리도 한 네티즌이 남겨놓은 후기를 참고해서 찾았던 호텔에 묵었는데, 그나마 그곳은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인터넷도 꽤 괜찮았고 시설 전반적으로 나쁘진 않았다. 확실히 교외로 나와야 그 나라의 인프라 수준을 확실히 느낀다. 다음 날, 버스 일정을 확인한 뒤 절벽 교회로 향했다. 터미널로부터 택시로 약 20분 정도 이동하면 도착한다.
산세와 어우러져 있는 교회의 모습이 마치 우리나라의 절을 보는 느낌도 같았다. 외국에서 이런 광경을 보니 괜스레 한국 생각이 나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날은 마침 주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미사를 참석하기 위해 방문하고 있었다. 길거리 곳곳에서는 음식과 더불어 물통을 파는데, 한편에서 나오는 천사상의 성수(?)를 받기 위해서인 듯했다. 다채로운 볼거리도 아니요, 엄청 기념비 적인 건물도 아니지만 현지인들이 와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나 산세에 둘러싸인 이 교회 자체가 주는 느낌이 남달랐다.
간단한 산책(?)을 마치고 근처에서 점심을 먹은 뒤 에콰도르로 이동했다. 이피알레스에서 국경까지 이동 후 도장을 받은 뒤 에콰도르 국경을 넘어 툴칸이라는 마을로 가서 키토행 버스에 타면 된다. 원래 나는 국경에서 도장을 어디에 찍어주든 큰 상관을 하지 않았는데, 우꾼과 다니면서부터(...) 순서대로 찍히길 바라는 습관이 들었다. 스페인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으므로 작은 쪽지에 '여기에 도장 찍어 주세요'라고 적어 다녔는데, 콜롬비아 이민국 담당자가 '여기 찍으면 되는 거야?'라며 웃으며 찍어주었다. 콜롬비아의 끝이 유쾌하게 마무리됐다.
다른 사람들은 키토에 왜 오는지 난 잘 모르겠다. 찾아보질 않아서. 하지만 내가 키토에 오고 싶던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적도. 세상의 중심으로 불리는 적도 박물관이 이곳에 있다. 사실 적도를 지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케냐와 우간다 사이에서 적도에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사실 있었는데, 그때 아쉽게도 우간다로 가는 버스가 딱히 그곳에 서지 않아서 가볼 수 없었다. 그때도 우꾼과 함께였는데 이번도 함께라니 뭔가 '데자뷔'의 느낌이지만... 키토에서 버스 두 번을 타고 한 시간 반을 이동하면 키토 북부에 위치한 'Mitad del Mundo'라는 곳이 나온다. 영어로 번역하면 Middle of the World. 말 그대로 '세상의 중심'이다.
지금은 다른 박물관들과 함께 거대한 공원이 되었고 내가 조사했을 땐 입장료가 별도로 없다고 했는데, 이제는 적도 기념비까지 가는데 3.5불, 그리고 공원 전체를 보는 데에는 7불을 받는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선일 수도 있지만, 이 선을 기준으로 지구는 남반구와 북반구가 나뉘며, 지구에서 관찰될 수 있는 여러 현상들이 이 선을 기준으로 나뉜다고 한다. 한참을 선 좌우로 발을 옮겨가며 남반구와 북반구를 오가며 사진을 찍었다. 사실 Mitad Del Mundo에 있는 적도 기념비는 진짜 적도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한다. 과거 측량기술이 발달하기 전 프랑스 학자들이 적도로 표시한 곳에 기념비를 세운 것인데, 최근 GPS의 발달로 정확한 적도 위치를 측량해 보니 실제 적도선이 지나는 곳과는 약 150m 떨어진 곳이 진짜 적도라고... 그래서 이 적도 기념 비안의 실험관에서 체험할 수 있는 적도의 과학적 사실들은 모두 조작인 셈.
그래서 기념비를 나와 150m 정도 옆에 있는 '적도 박물관'이라는 곳에 다시 찾아가 보았다. 4불의 가격으로 가이드 투어까지 함께 즐길 수 있어 더욱 재미있다. 이 곳에서는 적도 실험관에서는 관찰만 해야 했던 몇 가지 실험들을 직접 가이드와 함께 체험해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실험이 바로 전향력(코리올리 힘)에 의한 물이 내려가는 방향을 관찰하는 실험! 지구본을 이용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 준 뒤 적도선을 기준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수조를 직접 옮겨 물이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적도선에서는 어떻게 내려가는지 한 번 더 보여준다. 과거 관련 교육교재를 만들었던 사람으로서, 교재를 위해 검색만 하던 것을 실제로 보니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아프리카에서 지나가 보지 못했던 아쉬움을 훌훌 털 수 있던 세상의 중심, 적도였다!
다음 날은 키토 시내에서 볼거리들을 보고, 이 이후 일정에서 에콰도르의 핵심 일정이었던 '쿠야 베노 아마존 투어'를 예약하러 갔다. 사실 키토에는 볼거리가 그렇게 많지 않은 듯했다. 고풍스러운 성당들이 주였는데, 성당이라는 것이 보면 또 다 비슷하다. 가이드도 없이 보다 보니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확실한 건 어떤 성당은 오래됐지만 하늘을 찌를 듯한 외관에 비해 아주 부드럽고 포근한 내부를 갖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아주 오래된 외관을 갖고 있었는데 내부는 휘황 찬란한 내부였다. 이제 사실 이런 볼거리가 되려 나에게는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되려 나는 이런 것보다는 그날 있었던 소소한 장면들이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투어 예약 이후에 나와 우꾼이 주로 했던 건 나의 복지 상태 개선(...)이었다. 원래는 등산화를 신고 다니는데, 최근 네덜란드 호스텔의 Give and Take코너에서 얻었던 검은색 부츠를 신었다. 오래되서인지 뒤축도 닳고 앞코도 밑창과 벌어져서 거의 신발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7불에 수리를 해준 다는 곳에서 신발 수리를 했다. 정성스러운 손길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져서 10분 걸어가다가 다시 벌어져버려서 수리를 한 번 더 해야 했다. 1불 깎아달라고 이런 건가.
신발을 고친 뒤에는 머리도 깎았다. 대륙별로 보통 1회씩 이발을 하는 편이다. 아시아의 파키스탄, 아프리카의 이집트, 유럽의 영국에서 머리를 깎았고 북미에서는 그냥 넘어왔다. 남미에서는 바로 에콰도르에서 자르게 되었다! 콜롬비아에서 우꾼의 멋짐 폭발(?) '입대 컷'을 봤던 지라 머리 선정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큰 위화감 없이 잘 잘라주셨다! 게다가 가격이 단돈 1.5불! 역대 두 번째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가격 대비 만족도도 아주 훌륭했다. 아직까지 파키스탄을 따라가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
가는 길에는 강정 하나를 집었다. 한국에서 볼법한 견과류 강정을 이 곳에서도 팔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맛이었다. 간단한 저녁 대용으로는 길거리에서 만난 곱창 구이를 먹었다. 중남미 쪽은 육류를 버리는 것 없이 활용하기 때문에 간간히 볼 수 있지만, 곱창 구이라니! 오후가 늦게 되어서 갑자기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가려고 마음먹는데 사람들이 엄청나게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문구점에서 엄마 아빠들이었다. 손에는 다들 어떤 종이인가를 들고 있었다. 아마 학용품 목록이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지정한 학용품 목록을 준비해주려는 모습이었다. 아주 어릴 적, 초등학교 1학년 때쯤 선생님이 가정통신문으로 가져오라던 준비물을 사던 때가 갑자기 떠올라 기분이 묘했다.
그냥 이런 일상적인 경험이 나한테는 되려 더 크게 와 닿는 것 같다. 그냥 이 곳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무엇을 먹는지 먹어보고, 어떤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느껴보는 것. 그냥 나에게 키토는 일상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