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상택 Sep 28. 2017

158. 걱정을 해결해줘, 바뇨스

2017년 9월 18~21일, 여행 362~365일 차, 에콰도르 바뇨스

아마존에서는 아침에 나왔기 때문에 다음 목적지를 바로 결정해야 했다. 아니, 사실 나의 목적지는 바뇨스라는 곳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우꾼의 모종의 상황이 가장 중요했는데, 역시나 상황이 우꾼이를 안 도와주는 것인지, 안 좋은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나와 함께 바뇨스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나와 우꾼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Adios, Amigo!


가는 과정에 약간의 마찰이라면 마찰이 있긴 했다. 아마존이 있던 라고 아그리오에서 바뇨스로는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 다만 대기 시간이 좀 길다면 기달까. 아마존 투어를 마치고 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했을 때가 1시였는데,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저녁 8시에 온다고 했으니 7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우꾼과 따로 간다는 가정 하에서는 7시간을 대기 한 뒤 버스에 오르려고 했는데, 우꾼이 '키토로 가서 버스를 알아본 다음에 거기서 바로 바뇨스로 가자. 경로 상으로는 가능하다'라고 제안한 것. 사실 나도 그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돈도 더 들지만, 도착 시간이 심야일 확률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었다. 숙소 예약도 안된 상황에서 심야 도착을 진행하는 것이 미덥지 않아 고르지 않은 선택지였다. 그런데 우꾼의 반응이 기다리고 싶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결국 우꾼의 말을 따르기로 했고,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방을 구하지 못해 한참을 걷다가 숙소를 잡아야 했다. 나도 심통이 나서 삐뚤어진 말을 몇 마디 뱉곤 늦은 시간 때문에 잠이 들었다.

날씨 이거 실화입니까... 고산지대라고는 해도 나한테 너무 날씨를 허락 안하는게 아닌가
궃은 날씨의 한 줄기 빛은 그야말로 고마울 뿐이다. 날씨가 안좋았지만 그네는 재밌게 탔다 :-)

다음 날 약간은 꽁한 내 마음을 접지 못한 채 바뇨스에서 유명한 '세상의 끝 그네'를 타러 갔다. 처음엔 지도 상 대륙 끝에 있어서 인가 싶었는데, 바뇨스는 완전 내륙에 위치해있으므로 그 추측은 완전히 틀린 것이다. 깎아지를 듯한 낭떠러지 끝에 그네가 위치해 있고, 그곳에서 그네를 타면 마치 세상의 끝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주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진 듯했다. 거기에는 그네 외에도 미니 짚라인이나 다른 그네들이 많이 있었다.


그네를 탈 때까지만 해도 나의 소심한 꽁함은 잘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네 타는 표정이 영 좋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고, 내려가는 버스도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짚라인만 빨리 타고 가자'라고 우꾼이 이야기하길래 짚라인으로 향했다. 암만 꽁해있어도 서로 사진과 영상 찍어주는 본능은 남아있는지 '짚라인 타는 거 서로 찍어주자'하면서 서로를 찍어주었다. 근데 참 이게 뭐라고, 이거 찍다가 그냥 풀려버렸다.

우꾼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소하게 갈등이 생기고 그게 또 말도 안 되게 사소한 걸로 풀리는 그런 사이가 난 가장 친한 사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지낸 기간이 내 전체 여행의 1/3에 달할 정도로 오래 지내기도 했지만,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길 하면서 가장 가까워진 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짚라인에 풀리지.


다음 날 떠나는 우꾼의 모습은 이제 못 볼 친구의 모습이 아니라 그냥 학원가는 친구 뒷모습 같았다. 먼저 페루로 떠나는 우꾼의 색칠 공부가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끝나길, 여행 동료이자 (나 혼자는) 친구가 바라본다.


욕구를 해소하라, 바뇨스!

우꾼이 가고 본격적으로 바뇨스를 즐기기로 했다(결코 네가 떠나서 즐기려고 한건 아냐 우꾼!). 바뇨스는 사실 스페인어로 해석하면 화장실이다(...) 배변 욕을 해소하는 공간인 Banos지만 이 곳에선 아드레날린을 폭발시킬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들이 기다리고 있다. 바뇨스는 사실 액티비티의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액티비티들이 아주 저렴한 가격에 준비하고 있었다.  짚라인, 캐녀닝, 래프팅, 번지점프, 패러글라이딩 등등. 나는 그중 캐녀닝과 번지점프를 하기로 했다.


먼저 캐녀닝! 바뇨스에 있는 Rio Blanco를 따라 올라가면 계곡이 펼쳐진다. 그 계곡을 따라 총 5번의 캐녀닝을 즐기게 된다. 군대에서 레펠을 담당해 본 적은 없는 지라 미숙했지만 물을 옆에 두고 계곡 벽을 따라 내려가는 손맛이 최고였다! 5번 중 2 번은 레펠을 짚라인 삼아 타고 내려가거나 미끄럼틀을 타는 코스라 온몸으로 계곡을 느낄 수 있었다. 하고 나서는 엄청난 피로감 때문에 뻗기는 했지만...

다음은 논란의 번지점프. 자세한 설명 없이 영상으로 모든 걸 대체하겠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난 두 번 다시는 번지 점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번지점프를 하는 다리이다. 높이는 약 100m... 아이고 예수님, 부처님, 알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런 액티비티가 20~50불 이내로 아주 저렴하게 즐길 수 있어서 쌓여있는 아드레날린을 펑펑 터트릴 수 있다. 욕구를 해소하고 싶다면 바뇨스로!


해우소 = Banos

화장실은 절에서는 해우소(解憂所 : 걱정을 해결하는 곳)로 불리지 않았던가. 중-남미를 바쁘게 해쳐오면서 휴식에 이렇게 최적화된 공간을 만나본 적이 없다. 일단 주변이 모두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날씨가 그렇게 덥지 않다. 해발 고도가 1500m를 가뿐히 넘고, 산 정상은 2600m 정도 되니 항상 선선한 날씨가 유지된다. 날씨가 좋은 날에 다시 세상의 끝 그네로 가서 멋진 풍경을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곳이 휴식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판단되는 근거는 저렴한 물가와 입맛에 맞는 다양한 먹거리들이다. 막창구이, 껍데기 구이, 닭곰탕 등 한국인들의 입맛에 안성맞춤인 음식들이 한가득이었다. 날씨도 너무 좋아서 해가 쨍쨍 나더라도 고도가 어느 정도 있는 곳이라 아주 덥지도 않고 최고였다. 혼자 지내는 동안 맛있는 음식 많이 먹으면서 날렸던 것 같다. 하루는 고춧가루를 챙겨가서 껍데기와 막창에 섞어 먹었는데 완전 양념 껍데기, 양념 막창 맛이었다. 여행하면서 입맛에 맞는 음식 찾는 건 쉽지 않은데 너무 내 취향 저격이었다.

이제 이 곳을 떠나면 혼자 시작되는 새 나라의 여행이 다시 펼쳐진다. 남은 걱정일랑 훌훌 털고 출발해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