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4일~5일, 여행 378~379일, 페루 리마
와라즈에서의 휴식으로 충전하고 다음 여행지를 고민해야 했다. 계산을 따져보면 친구들과 일정을 전혀 함께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루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같이 할 수 있었지만 이카의 와카치나 사막을 가보고 싶었기에 그렇게 되면 중복 동선으로 돌아와야 했으니까. 고민 끝에 리마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 계획은 이랬다. 친구들이 먼저 떠난 쿠스코로 바로 향하게 되면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쿠스코에서 합류하지 않고 리마에서 쉬면서 대기하고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하여서 만나려고 했던 것. 그런데 여기에 몇 가지 문제가 겹친다. 나는 나대로 계속 '기다림'이 지속되다 보니 서운한 감정이 있었고, 친구들은 친구들 대로 기다리는 나에게 '미안함'이 지속되었다. 게다가 쿠스코로 갔던 친구들은 뒤늦은 피로가 몰려와서 이래저래 친구들도 나에게 대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복합적인 상황에 기다림이 지치니 나의 몰래카메라에 대한 열망은 심통(?)으로 변질되어 갔다. 뭐,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에는 주로 비앤비에서 한식을 하거나 산책을 하며 보냈다. 수도임에도 생각보다 볼거리가 적은 곳이 리마였으니까. (나중에 찾아보니 볼 것은 많은 곳이었다.)
결국 친구들을 리마 구도심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미 서로 어느 정도 어긋날 때로 어긋 나있던 상태였었고, 하필이면 교통 체증과 여러 상황까지 나와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방해하다 보니 나는 괜시레 친구들에게 더욱 심통을 부리고 싶어 졌던 터였다. 그러던 터에 민우가 내 역린을 건드렸다. '야, 너 삐진 거지!' 뭐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에게 이런 경우 삐졌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삐졌다는 한마디가 삐지게 만든다. 나는 그렇다. 민우의 그 말은 내 못된 성질 머리의 방아쇠를 당겼고, 덕분에 나는 진짜 삐져버렸다. 친구들이 뻔히 기다릴 걸 알면서도 화를 내고, 쉽게 풀지 않은 채로 시간이 걸려 만나게 됐고, 만난 상태에서도 내 마음을 풀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친구들이 싫어할 걸 뻔히 알면서도. 친구들과 짧게 구도심을 보고, 신도심도 둘러봤지만 진짜 삐져버린 나도, 이제는 내 마음을 풀어주고 싶지 않은 친구들도 서로 마음이 어떤지 알기에 팽팽히 줄을 당기 고만 있었다.
사실 여훈이도 엄청나게 노력해 주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도 튕김 질을 했던 거고, 나도 나름대로 서운한 게 있다는 거 알지만 서도 그걸 굳이 여훈이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 항상 중간자 역할을 하는 건 민우였다. 전망이 좋은 한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술이나 한잔 하자며 시작된 우리의 얘기는 결국 서로 서운한 것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나대로, 친구들은 친구들 대로 서로한테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니 쌓여갔던 것 들도 있고, 알면서도 서로의 자존심을 당겨버렸던 (특히 나의) 행동에 모두 지쳤던 것. 술기운도 살며시 올라오니 하나 둘 털어놓기 시작하다 예전 이야기들도 하면서 서서히 마음이 풀어졌다. 자세한 이야기를 다 옮길 순 없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래서 이 친구들이 좋다.
태어나서 자라기까지 수많은 '친구'라는 존재가 생기는데 정말 친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그걸 받아들여줄 수 있는 '친구'는 몇이나 될까.
친구들의 인생에 몇 없을 길고 긴 남아메리카 휴가에 내가 고춧가루를 뿌린 것 같아 미안했지만, 마음 한 편으로 '그래도 얘네들이니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재밌게 보낼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친구들이 페루와 브라질의 축구 대결에 정신이 팔려 스크린을 보는 동안,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