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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타조 Sep 07. 2021

안경을 탐하다

어른이 되고 보니


형이 안경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칠판이 흐릿해서 수업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봐도 그럴만했다. 평소에도 형은 공부를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무엇이 좋은지 그토록 공부하는 형이 늘 신기했고, 반면 매 하루의 끄터머리에 겨우 숙제를 마치는 내가 못나보이기도 했다. 한 번은 형처럼 해보겠다고 의욕도 다졌지만, 형은 아무리 해도 안되는 황새의 격이란걸 알게 되었다.

'아마 형은 날 때부터 공부쟁이였으리라.'

혼자 위로했다. 그럼에도, 불공평한 세상은 형이 거쳐간 학교를 따라갈 때마다 일깨워 주었다. 전교에서 몇 등을 찍고 다녔다는 형의 명성을 선생님들에게서 고스란히 들어야했다. 공부로 인해 나는 형의 안경 소식에 고소해 하면서도, 깜빡이던 형광등 아래 고군분투하는 형 걱정스럽기도 했다.


안경에 대한 이야기는 중학교 때의 일이다. 엄마는 혹시나 하며 나도 안과에 데리고 갔다. 당시 우리 동네에는 유명한 안과 하나가 있었는데, 진료가 마치면 병원에서 바로 안경을 맞춰주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그래서인지 그 안과를 다녀온 친구들은 저마다 안경 하나씩을 쓰고 나타났다. 친구들 사이에는 거기에만 가면 안경을 쓸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사춘기 중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인 곳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친구가 안경을 쓰기라도 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잠자리 안경을 쓴다면 고민이던 내 눈도 멋있어 보이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안과에 가기 전 작전을 세웠다. 친구들의 노하우가 있었다. 일단 눈을 비비고 시작하고, 잘 보여도 무조건 시침이 떼라는 말이었다. 나도 눈을 비비고 마음도 준비했다. 검사가 시작되었다. 검사판에 글자와 문자들이 띄워졌고, 선생님은 하나씩 짚어 나갔다. 하지만, 웬걸, 내 눈에는 그것들이 너무 잘 보였다. 줌으로 당겨놓은 듯이 글자들이 크고 선명해졌다. 이렇게 뚜렷한 글자를 보고도 모른다고 하기에는 내 양심이 허락되지 않았다. 보이는 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1.5!, 1.5!"

의사의 판정이었다.

안과를 나서며, 형의 콧잔등 위에 얹힌 잠자리 안경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평소 글자가 흐릿하다는 아내가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그냥 사는 중이었다. 하지만, 같이 건강검진을 받고 얼마 후 날아든 결과지에 여지없이 나타난 아내의 눈 지적이 마음에 또 걸렸다. 이전보다 더 나빠진 것이다. 아내를 부추겨 어디라도 가자했고, 아내는 동네에서 잘한다는 안경점을 하나를 찾았다. 안경점의 주인장처럼 보이는 직원이 눈 상태를 검사했다. 십여 분간의 검사를 마치고 난 직원이 말했다. 아내는 시력도 그렇지만, 노안도 진행되었으니 안경을 맞추어야 한다고 했다. 렌즈를 고르고 와인색의 안경테까지 고르자, 일사천리로 안경 맞추는 일이 끝이 났다.

아내는 내게도 검사 한번 받아보라며 권했다. 이미 나는 내 짱짱한 시력을 알고 있었다. 좌측 1.0, 우측 1.2, 얼마 전의 검진 결과지에 찍힌 성능이었고, 일상에도 불편이 없었다. 그래도 해보라는 아내와 직원의 계속된 권유로 끝내 나도 검사실로 들어갔다. 검사표가 나올 거라고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경점은 달랐다. 처음에 어떤 렌즈 하나를 들여다보더니, 직원은 바로 멀리 보는 시력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어, 노안 검사를 한다며, 여러 개의 수직, 수평선들이 나란히 있는 슬라이더를 한 장씩 보여 주었다. 그러고 나서, 어떤 선이 더 짙게 보이는지를 물었다. 나는 보이는 대로 답했다.

"아니, 선생님은 나이가 몇 살이세요? 노안 단계로 치자면 0.5단계도 진행되지 않았어요."

내 시력을 두고 특이할 정도라 했다. 내 눈은 여전히 안경이 필요 없던 것이었다.


벌써 30년이 된 일이었다. 형을 따라 안과 들렀던 이후로, 안경을 맞추기 위한 시력검사는 그때 이후 오늘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안경점 직원은 30년 전의 안과 선생님처럼 내 눈이 생생하다고 했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마흔 중반을 넘기며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데, 여전히 눈만은 건강하게 지내는 중 있었다.

"선생님, 그러면 컴퓨터와 핸드폰을 많이 보신다니까,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은 어떠세요? 요즘 많이들 하시는데..."

호객행위인 줄 알면서도, 나는 30년 전 안경 욕심이 다시 떠오르며, 지체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워크맨, MTB 자전거, 스케이드보드, 게임기, 비디오, 나이키 운동화..."

"마음껏 오락실에서 놀기, 세계 일주 가기, 자전거로 전국 여행, 서울에서 살기..."

갖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때가 어린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마음만 그렇지, 세상은 온통 결핍 투성이었다. 어리다는 이유로 돈과 시간이 풍요롭지 않았고, 낭만을 몰라주는 어른들의 훼방과 회유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 시절의 욕망은 더더욱 간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욕망도 변했다. 어떤 욕망은 바뀌고, 어떤 욕망들은 귀찮아지고, 또 어떤 욕망은 유치해서 포기하기도 했다. 나머지 대부분은 어른이 되며 성취한 것도 있다.

 

모두들 어렸을 때가 좋았다고 한다. 나도 일백 프로 동의한다. 단순하고 직설적이던 어린 시절에 비해, 어른의 세상은 짜증나게 복잡하고 끝이 없는 귀찮은 것들이 숙제처럼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른이라 좋을 때도 있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이 그렇다.


콧잔등 위에도 얹혀진 안경의 느낌이 묘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더 묘했다.

'이렇게 어색하려고 30년이나 탐했나?'

그래도 어른이니까, 가능한 안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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