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이영표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갑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축구 레전드 중 한 분이신 이영표 선수님께서 하나은행의 광고를 찍으셨던 기억이 있다.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갑니다. 매일 아침,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고 싶었습니다..."
애국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인용한 것은 아니다. 내가 주목했던 문구는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갑니다 라는 이 문구 한 마디다.
사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가라는 이야기가 아닌, 먼 길을 돌아가는 게 오히려 더 빠른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여러분들이 만약 처음 취업 준비를 한다면,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사실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모두가 각자의 답에 맞게, 상황에 맞게 스스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선택지일 뿐이다.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결과론적일 뿐, 그 선택이 옳았냐 틀렸다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도, 책임을 질 수도 없다.
늘 그렇듯, 내 이야기로 시작해 보겠다.
나는 첫 대기업을 그렇게 나의 오만으로 인해 스스로 걷어차버리고 호기롭게 회사를 나왔다.
이직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비록 어느 정도 한 번의 오만함으로 인해 발생한 실패지만, 이 또한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여전히 나는 자신이 있었다.
대기업인지, 중소기업인지 그런 선택지조차 고려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는 나로서 있을 곳이 필요했고, 나를 제일로 필요해줄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의 이직텀은 그리 길지 않았다. 퇴사한 지 약 한 달 만에 나는 새로운 거처를 찾았다.
중소기업이었고, 당신 보직 자체가 채용했던 직무와 사뭇 달랐으며, 신입들을 저렴한 맛에 뽑아서 계약직으로 굴리던 곳이었다.
그곳도 비범한 곳이었지만, 나 역시도 부정적으로 비범하다면 뒤지지 않는 사람 아니던가.
나 역시 그곳의 룰을 늘 깨고 오만함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계약직에서 전환이 되지 않으며 다시 재야의 조무래기 신세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나는 심각성을 조금씩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나를 돌아봤고, 목표가 필요했다. 그냥 애매하고 추상적으로 '나는 이런 시시한 일을 하러 온 게 아닌데'라는 마음으로는 회사 생활을 오래 하지 못할뿐더러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것 같았다.
나를 버리기로 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그런 내 능력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곳을 찾고 싶었다.
대기업을 한 번 더 지원해 볼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 당시 나 스스로도 아무리 자신만만했어도 이미 대기업에서 한번 쓴 맛을 본 터라 이대로 다시 간다 한들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당시 연이은 게임의 성공으로 강력한 다크호스로 성장 중이었던 스타트업에 지원을 했고, 약간의 자아성찰이 포함된 면접 내용 덕분에 대표님께서 흡족히 나를 뽑아주셨다.
내 6개월 남짓의 첫 스타트는 사업 PM이었지만, 그곳에서 나는 내가 제일 잘하는 중국어를 살려 로컬 PM으로 입사를 했다.
거창해 보이지만 중국 개발사와 사업 PM 간의 커뮤니케이션 브리지가 되어 주는 통역사다.
이 회사에서 나는 인재보단 노동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열심히 능동적으로 일했던 것 같다.
개발사의 메신저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사업 PM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흘려듣지 않고 궁금해했다.
그런 나를 기특하게 여겨주셨기에 선배님들도 나를 키워주시기 위해 아낌없는 조언과 자료들을 공유해 주셨다.
그리고 회사 내에서 이제는 로컬 PM들도 서브 사업 PM으로서 성장을 시키겠다는 기조하에, 사업 PM으로 전환되게 되었다.
일한 지 약 3개월 만에 다시 내 본래 직무를 찾은 셈이다.
그곳에서 나는 충실하게 선배님들이 요구하시는 역량과 능력치들을 흡수하고 쌓아나아 갔다.
물론, 사업 PM 사춘기라 불리는 3년 차를 그곳에서 맞으며, 초심을 잃고 더 날뛰긴 했지만, 그래도 그 시간들은 비록 포괄임금제였음에도, 이렇다 할 복지가 없었음에도 돌이켜보면 정말 행복하고 보람찼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이젠 폐업을 하여 그저 추억 속에 있던 회사가 되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지금까지도 내게 처음 사업 PM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알려주신 멘토 형님을 만났고, 그때의 경험이 사업 PM으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되었다.
결국, 후에 나는 비록 잦은 이직이 있었음에도 중소기업 -> 상장기업 -> 중소기업 파트장 -> 중소게임 메인 PM -> 중견기업 -> 대기업으로의 루트를 밟으며 다시 한번 대감집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현실적인 처우가 크게 따라오지 않았지만, 일을 하는데에 있어서는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하는 능력과 약간의 미니멀한 제네럴리스트로서 성장하는 것은 도움이 꽤 되었던 것 같다.
다시 돌아와서, 여러분들은 고민하고 있는가?
몇 년째 큰 수확을 한 번에 노리기 위한 기회를?
정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례도 있다는 점은 참고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현재 대한민국 월드클래스 김민재 선수는 세계 최고 명문팀 중 하나인 바이에른뮌헨에서 뛰고 있다.
그 선수가 K-리그에서 중국을 갈 때도, 중국에서 튀르키예 클럽을 갈 때도, 다른 더 유망한 구단들의 오퍼가 있었는데 왜 가지 않았느냐라고 아우성을 쳤었다.
그런데 그 선수가 차근차근 밟아나간 커리어는 이탈리아 명문팀 나폴리에서 입단 첫 해에 우승의 주역이 되고, 더 완벽한 커리어로 바이에른뮌헨에 입단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고 본다.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갑니다.
어쩌면 이 말 자체가 T적인 사고에서는 굉장히 비효율적인 말로 들릴 진 몰라도, 당신이 지금 당장 원하는 기회를 잡을 수 없다면, 기회가 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무엇이라도 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