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까라면 까야지 뭐 별 수 있나
내 MBTI는 ENTP다.
말 더럽게 안 듣기로 유명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 못해 자기주장까지 가는 MBTI다.
지드래곤, 이찬혁, 토니스타크 등 MBTI로만 보면 정말 재능 있고 유명한 분들이 많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는 게 함정이지만.
내 첫 회사는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3N 대기업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나는 사실 이력서에 이 이력을 적지 않고 있다.
왜냐면 난 1달 만에 이 회사를 때려치우고 백수 신분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세 번의 면접들을 거치고 우여곡절 끝에 나는 꿈에 그리던 회사에 들어갔다.
내가 생각했던 회사 생활은 굉장히 골져스 하고 럭셔리하고 유능한 비즈니스맨처럼 멋진 나날을 보낼 것 같다는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난 무엇보다 자신이 있었다.
나만큼 게임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거라는 자신감과 11년 동안 중국 현지 학교 생활을 통해 생존형 중국어가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첫날의 회사 업무는 조직도 외우기와 게임의 매뉴얼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굉장히 뜬끔없고, 이상한 업무라고 생각했다.
근데 여기서부터가 잘못되었던 것 같다, 이걸 업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 과제라고 생각했었야 했다.
대학교 팀플 정도로 생각하고 매일매일 그저 입사뽕에 취해서 할 일을 미루고 미뤘었다.
태생부터 게으르고 건방진 태도가 여기서도 발휘되었다.
차주까지 목차에 기본 틀까지 작성해 오라고 했던 사수의 말에 나 정도면 그런 거 하루 만에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오만이었다.
하루 만에 빈 프레젠테이션에 목차와 목차에 따른 하위 페이지들을 작성하고 가져갔다.
자랑스럽게 내밀었던 문서는 선배님들께 처음으로 된 통 깨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말씀하셨던 기본 틀이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저 페이지에 제목만 달아두는 게 아닌, 어떤 내용을 쓸 건지에 대한 초안을 원한 것이었고, 오만하고 어렸던 나의 생각으로는 완벽한 오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변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사수의 요구사항에 그저 나의 논리대로 해석하고 결과물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는 팀 전체가 나를 채용한 것에 대한 후회와 불신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더불어, 나 역시도 이들의 피드백에 대해 불만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나는 고작 이런 쓸데없는 일을 하러 온 게 아닌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을 시키는 거지.'
이 마음이 드는 순간부터 나는 좌시할 수가 없었다.
팀에서 오더 한 방식이 아닌 나만의 방식을 고수하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변명도 계속되어만 갔다.
파트장님, 팀장님 그리고 실장님까지 누차 경고를 주셨음에도 나의 고집은 계속되었다.
나의 과제가 지연되는 만큼 야근과 주말 출근까지 감행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날 기다려주지 않고, 과제를 못했던 것만큼 그 위에 누적된 과제들이 쌓여만 갔다.
결국 나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진해서 퇴사를 하게 되었다.
사실 별로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긴 하다.
지금 만약에 저런 신입이 내 밑으로 온다 하면 눈길조차 안 주고 싶었을 것 같다.
나의 오판과 오만함에 대한 부끄러움과 남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부분에 대한 후회스러움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스스로가 인재라고 생각하고 들어갔지만,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나는 인재이기 전에 노동자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직장에서는 주어진 일에 대해 성실하게 완수를 해야 하는 것이고, 그 주어진 일을 완수해야만 비로소 기회를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직장은 나의 관점이 아닌 늘 회사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후에 깨달았다.
인재가 되고 싶다면, 나의 전철을 밟지 말아라.
애초부터 완벽한 사람이 어딨겠냐만, 안 아플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면 아프지 않고 스무스하게 넘어가라.
그리고 겸손해야 한다. 겸손하면 자다가도 하늘에서 떡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