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잠이 오지 않아 무심히 SNS를 넘기다 친구의 게시물을 보았다. 휴가를 맞아 할머니 댁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친구. 올린 풍경마다 주름진 앙상한 손이 등장한다. 어딘지 낯익은 시골 풍경에 마음을 뺏겼다. 어느새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내일은 할머니와 무엇을 할지, 무얼 먹을지 고민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할머니와 일상을 만들어가는 친구에게 은근히 질투가 났다.
할머니께 사랑을 받기만 한 터라 직접 나물 반찬이며, 할머니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대접하는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부러웠다. 친구는 여러 개의 반찬을 솜씨 좋게 준비했다. 음식마저 그 친구를 닮아 정갈하면서도 당찬 구석이 있다. 친구와 달리 나는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으니 할머니가 살아계셨어도 내 음식을 좋아하셨을지는 모르겠다.
만약 내가 할머니께 요리를 해드린다면 소고깃국을 끓여 드리겠지. 할머니는 우리가 가는 주말이면 항상 한 솥 가득 소고깃국을 끓이셨다. 문밖에서부터 할머니의 국 냄새가 진동했다. 어릴 때는 매번 먹는 소고깃국이 싫었다. 신기하게도 한술 뜨면 또 맛있어서 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 뚝딱 먹었다. 그러면서도 할머니 몰래 부엌에 들어가 국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했다. 속으로 ‘한 번만 더 먹으면 다른 국을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할머니는 끓여놓은 국이 다 떨어지면 내 손을 잡고 장에 가셨다. 다른 곳에는 시선도 안 주시고 고기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언니와 내가 먹을 과자만 하나씩 사 주셨다. 그게 좋아 할머니 손을 잡고 고기를 사러 가곤 했다. 그렇게 고기를 사 오면 할머니는 다시 부엌에서 소고깃국을 끓이셨다. 아침에 먹은 소고깃국보다 무가 조금 더 단단하고 콩나물이 아삭아삭하지만 또다시 소고깃국이다. ‘차라리 콩나물국을 끓여주시지’하며 투덜거렸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외할머니와 달리 할머니는 어쩐지 무서웠다. 멀리서부터 반겨주시는 할머니지만 말수가 워낙 적으시고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셨다. 그런데도 할머니의 함박웃음이 가끔 생각난다. 입을 가리시면서 눈을 찡긋하시던 그 소녀 같은 웃음을.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홀로 5남매를 키우셨는데 웃을 때만큼은 세상의 힘듦은 전혀 모르는 천진한 웃음을 지으셨다. 그 웃음을 이제 우리 고모에게서 본다.
할머니와 똑 닮은 우리 고모. 나에게 고모는 그립고 포근한 존재인데, 아빠에게도 고모는 특별하다. 할머니가 집을 비우시면 터울이 나는 고모가 아빠를 돌봐주었기에 아빠에게 고모는 엄마와 다름없었다. 고모가 시집가던 날 몰래 기차에 숨어 시댁까지 따라갔던 이야기, 방학이면 고모네에 머물면서 지냈던 이야기 등 고모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빠의 어린 시절을 들으면 그때의 아빠가 귀여워 꼭 안아주고 싶다.
우리가 자라면서도 고모네는 여름휴가철이면 자주 들렀다. 그때마다 고모는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옥수수를 큰 쟁반이 수북하도록 쪄주셨다. 그걸 먹다 보면 밥 생각이 없는데도 고모는 또 저녁을 한 상 가득 차리셨다. 배불리 먹고도 고모의 손맛 덕분인지 끼니마다 언니와 나는 반찬 투정 없이 고모가 해준 밥을 잘도 먹었다.
지금도 고모는 할머니와 꼭 닮은 음색과 모습으로 우리를 반기신다. 눈이 반달이 되셔서는 온다고 힘들지 않았냐며 한 상 가득 반찬을 차려내신다. 하나 다른 게 있다면 고모는 소고깃 국은 끓이지 않으신다. 그 이유가 어쩌면 고모도 나처럼 할머니의 소고깃국을 원 없이 먹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없는 살림이지만, 자식들이 오니 귀한 소고기를 국에 넣어서라도 먹이고 싶은 할머니의 사랑이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