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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익국어 May 04. 2022

함께 성장할 것이다.

내가 되고자 하는 '국어' 교사상은 무엇인가?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내게 있었던 가장 큰 이벤트는 서울 소재 남고 'B고등학교'에 시간강사 출근을 하는 것이었다. 정교사들보다 늦게 출근하고 빨리 퇴근하는데도 출근하는 것이 은근 부담스러웠다. 어떻게 사람이 8시 10분까지 출근을 한담? 그동안 백수같이 지냈던 나의 생활 패턴을 반성한다. 아, 백수같은 게 아니라 지금 내가 백수군.


솔직히 요근래 공부 의욕이 이상하리만치 사라지면서, 교직이 아닌 다른 진로를 조금씩 기웃거려 보기도 했었다. 임용시험은 이제 솔직히 두렵다. 올해도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벌써부터 들기도 한다. 군필이 된지 1개월도 되지 않은 현 시점, 교단 앞에 서 본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과연 나는 교사가 어울리는 사람이 맞을까 하는 회의감이 더 잦아졌다. 그래서 B고등학교의 시간강사직을 수락했다. 이유는 단순했는데, 남고였기 때문이다.


남고. 나는 남고 출신이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사랑하고, 나를 지도해 준 담임 선생님들과도 연락을 하지만, 내 모교의 교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빡빡한 두발규정, 반강제 야간자습, 대단히 만연한 체벌과 인신공격, 핸드폰은 적발 즉시 압수.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내 모교가 '남고'였기 때문이라 으레 짐작해 왔었다. 그래서 교사가 된다면 가급적 남고는 피하고 싶었다. 나는 누군가를 카리스마 있게 휘어잡을 자신도 없고, 휘어잡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매너리즘에 빠져 자극이 필요한 이 시점, 나는 내가 제일 두려워했던 남고에 (잠깐이지만) 국어 교사로 출근하기로 했다. 의외로 내겐 큰 시도이자 도박이었다. 임용시험 공부에 박차를 가하는 자극제가 될수도, 영영 이 시험과 이별하게 될지도 모르는 동전을 던진 셈이다. 가르칠 교과목은 - 국어 교사들이 가장 성가셔한다는 - 작문, '설득하는 글쓰기' 단원이었다.


학교는 내 예상보다 정말 많이 바뀌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 아직 10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와 아이들이 다니는 고등학교는 10년으로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괴리가 있었다. 복장도 두발도 각자의 개성이 있었고, 자습 중 스마트폰/태블릿을 사용하는 것은 예사였다. 에어팟 같은 무선 이어폰은 거진 삼할의 학생들이 쓰고 있었다. 학생들이 출결에 프리한 것도 흥미로웠다. 학생은 출석부에 결석이 찍히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교사는 출석부에 마킹을 하는 것에 부담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내 모교의 은사님들을 여기 옮겨놨다면 다들 고혈압으로 쓰러졌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모습들이 참 예뻤다.


기성세대들이, 나의 은사님들이 주장했던 것들은 허상에 불과했다. 후드를 쓰고 있든, 교복을 입고 있든, 그들은 균등하게 내 말에 집중해 주었다. 스마트폰을 뺏기지 않는 아이들은 무절제함에 물들지 않았다. 오히려 대학생들보다도 스마트폰과 공부의 밸런스를 잘 잡았다. 책상 서랍에 폰을 비굴하게 깔아 두고 '길건너 친구들'이나 하던 나의 과거와는 많이 달랐다. 그들은 필요할 때 스마트폰으로 구글링을 하고, 쉬고 싶을 때 유튜브를 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앞에서 내가 떠들 때면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이어폰을 뺐다.


엎드려 자는 친구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일어나 달라고 부탁을 건네면, 그 친구들은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가능한 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더 미안할 지경이었다. 만만한 선생 시간만 골라서 자던 내 모습, 교사가 학생 머리를 쳐서 잠에서 깨우는 내 모교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심지어 그 친구들은 B고의 운동부 친구들이라, 나의 '설득하는 글쓰기'가 입시에 그닥 필요하지 않은 친구들이었다.


수업 역시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나는 전공책으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를 달달 외운 게 전부였는데, 요새 아이들은 그 설득 전략을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B고등학교의 아이들은, 고등학교 시절의 나보다, 명백히 뛰어났다. 협동 작문적 요소를 섞은 '설득하는 글쓰기' 수업이었기에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토론이 지나치게 격화되어 내 말이 잘 들리지 않으면 자기들끼리 조용히 하라고 타박도 하더라. 그럴 필요 없는데. 나는 너희가 토론을 열심히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데, 싶었다.


아침 출근이 어려웠단 얘기를 위에 했었다. 오늘은 심지어 지하철 연착으로 지각까지 할 뻔했다. 어제 PT까지 다녀와서 다리엔 모래주머니를 단 느낌까지 들었다. 그런데도 아이들 앞에서는 힘이 넘쳤다. 곧 있을 체육대회 축구 대진표 얘기, (이상하게 굉장히 집착하는) 내 나이 맞히기, 고루하지만 그래도 내가 너무나도 잘 알려주고 싶었던 '설득하는 글' 얘기까지. 수업 시간 50분이 한 순간도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들 앞에서 내 목소리가 쭉쭉 뻗어나가는 게 느껴질 때마다 내심 많이 신기했다. 노래방에서도 그렇게 안 되던 건데. 내가 교실에서, 칠판 앞에서 이렇게 신나 있었구나.


그리고 동시에 부끄러웠다. 고등학교 시절 어렸던 내가 부끄러웠고, '저거 핸드폰 뺏어야 하나'를 잠시나마 고민했던 교사인 내가 부끄러웠다. 아이들은 세대가 거듭할수록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것이 지능과 같은 인지적 능력이든(이를 플린Flynn 효과라고 한다. 교육학은 이럴 때나 도움이 된다), 책임감과 예의와 같은 정의적 능력이든 말이다. 그 성장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가 - 기성세대가 - 아이들을 섣불리 우리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펼치는 주장은 일반적으로는 타당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이 늙어버린 우리와 같다고 가정하는 것은 어쩌면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맞고 자랐기에, 우리가 핸드폰을 겼기에, 지금 아이들도 그러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타당성을 재고해 보아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아이들에게 배울 점을 찾는 교사가 되고 싶다. 어차피 과목도 국어다. 아무도 틀리지 않는 교실을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교과다. 아이들이 맞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항상 염두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내가 틀렸다면, 아이들을 통해 그것을 고쳐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야 나도 성장하고, 내 말을 듣는 학생들도 더불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완벽에 도달할 것이라는 이상주의적 주장을 펼치는 게 아니다. 단지 아이들 앞에서 덜 부끄러운 교사가 되고 싶고, 과거의 나와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를 나누는 교사가 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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