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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May 04. 2024

#.34 몸

Imagine, I'm aging

"죽기 전까지, 이 한 몸 다 쓰고 죽으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 탄식과 함께 이 악-물고 내뱉은 한 마디였다.

나는 취미로 유도를 했다. 2022년 가을에 처음 도장에 나간 뒤 두 달 만에 7, 8, 9번 갈비뼈가 나갔다. 3개월을 쉬고 다시 재개. 한 달을 나갔지만, 프로젝트에 파견되면서 쭈욱-쉬다가 이번 4월 중순쯤 3개월치 수련비를 결제했다. 그런데 아뿔싸. 인생이란 기묘하다. 이번에 다시 유도장에 복귀한 첫날, 자유대련을 하면서 깃 잡기를 하다가 오른쪽 엄지를 부딪혀서 다치질 않았던가? 잦은 야근으로 일주일을 못 나간 그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노동절을 앞두고 도장에 나갔다가 기어이 일이 나고 말았다.

골프 치다가도 갈비뼈가 나간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다. 그런 재수 없는 일이 있긴 있구나, 나는 골프를 좋아하진 않으니까-라고 생각했는데, 어이없게도 나는 손가락이 골절됐다. 왼손 약지.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문제는 역시 자유대련이다. 유도는 결국 소매와 깃 등을 잡고 상대를 제압하는 운동인데,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깃을 잡혔을 때 뜯어내는 방법을 배운다. 근데 나의 대련 상대 녀석이 과하게 깃을 뜯어내면서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 손가락이 심하게 붓더니 멍이 들기 시작했다. 얼음찜질을 했음에도 손가락이 시렸다. 집에 들어와 자는데 오한이 들었고, 나는 노동절에 정형외과에 갔다.


Chapter.1 무심하게

의사 선생님은 인상이 좋았다. 마치 귀한 탕약을 달이는 은둔형 고수 같았고, 당장 머리를 맑게 하는 백차 한 잔을 가져다주며 인생을 논할 것 같았다. 그러나 선생님은 무심했고, 무심함이 오히려 나를 안정시켰다.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얘기하자던 선생님이 말했다.


- 골절이네요? 굵게 벌어진 곳 말고 실금 간 곳 보이죠? 여기 벌어졌으면 수술이었어요. 다행이죠?

- 아... 선생님, 이거 별일 아닌 거죠?

- 예에, 뭐 한 달 정도?


이전 연인은 내게 늘 손가락이 예쁘다고 했다. 왜, 그 말이 떠올랐을까. 그 말을 떠올리곤 뼈가 붙으면 조금 더 투박한 손이 될 수 있으려나-하고 나를 위로했다. 나는 내 손이 과거 나의 고생을 잊어버리듯 굳은살 없이 새살을 틔워내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손에 땀이 많아 굳은살이 다 벗겨지고 만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나는 손가락이 부러지면서 멈춰버린 일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분산된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겠다고 긍정했다. 아니, 시바- 얼마나 좋은 일이 있을라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요즘 힘든 일들이 많다. 직장에서도, 일상에서도 정리되지 못한 것들이 많았는데... 발산하는 에너지를 다시 내면으로 수렴할 기회가 생겼다. 다시 한번 외친다. 위기는 곧 기회.

노동절에 만난 오랜 친구는 내게 로또를 사라고 했다. 사실 전날 이천 원어치 샀는데 어떻게 숫자가 하나만 맞을 수 있어? 나에게 복이란 늘 사람이었다. 신이시여, 얼마나 귀한 사람을 보게 하시려고 제게 이런 일을?


Chapter.2 하트 브레이크 말고 '바디 브레이크'

신 얘기가 나와서 말하는데, 최근 절두산 성지에 갔었다. 나는 기도하거나 합장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걸 좋아한다. 의도야 어찌 됐건 그때만큼은 누구도 악의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붕대 감은 손가락을 데리고. 한 바퀴 돌고 한강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몸이 주는 지혜에 대해 생각했다.

최근 나는 감정적으로 폭주하고 있다. 감정을 낭비하고 있다. 사소한 일들에, 말에, 행동에 감정을 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리하지 않아도 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에너지를 쏟기 위해 내 인생에 중요한 일들(하기 싫음에도 기어코 해내야 하는 일들)을 뒷전으로 미뤄두고, 쉽고 재밌는 것들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낭비하며 질주하는 에너지에 브레이크를 건 게 '몸'이다. 몸이 다치면서 나는 내가 그간 감정적 판단으로 벌인 일들에 대해 곱씹게 됐다. 그리고 그 일들이 어떻게 내게 돌아오는지,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정리하게 됐다. 몸의 지혜다. 몸은 머리가 결론 내지 못한 결론을 한 방에 정리해 버린다.


Chapter.3 몸의 사람

몸에 대해 생각하면서, 의지와 정신의 힘을 강조하는 사회를 되돌아보게 됐다. 이상적이며, 이상을 좇지 못하는 삶을 질책하는 듯한 메시지들. 희망에 고문당하는 사람들. 미래를 저당 잡히고, 현실을 쉽게 흘려보내는 사람들. 인간사 이야기 속에 위대한 것들을 일으켜낸 수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그들도 생리적 현상 앞에서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정신으로써 몸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게 아닐까.

아는 형이었다가 아는 누나가 된 친구가 떠올랐다. 기어코 주민번호 뒷자리를 2로 바꿔내며 현실을 직면해 온 사람. 자신의 의지로 몸을 바꿔내는 행위 속에서 숭고함을 본다.


# 마무리 

시인 랭보의 이야기를 읽은 적 있다. 유랑하는 삶. 랭보는 자신의 가능성을 열기 위해 하나의 울타리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했고, 울타리가 만들어질 때마다 그곳을 떠났다. 내가 랭보를 떠올린 건, 맨 처음 썼던 문장처럼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회복하면 다시 일어서 유도장에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겐 명징한 목표가 있다. 그것들은 <데미안>을 빌어 알을 깨고 나가는 것이기도 하고, 안주하지 않는 자세를 고수하는 나의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이 삶을 기어코 살아내야 한다면, 다치고 깨져도 외려 겁먹지 않는 삶을 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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