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ine, I'm aging
요즘 바흐를 많이 듣는다. 자기 전에도, 일어난 후에도.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나,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가 원룸에 가득 찬다.
20대 때는 실험적인 음악을 많이 들었다.
제임스 블레이크나 에이펙스 트윈 같이 전파상 무드도 즐겼고
뉴에이지도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심플 이즈 더 베스트-라고 클래식으로 돌아왔다.
왜 하필 클래식이냐?
음악에 대한 과몰입이 없기 때문이다.
도파민 팡팡 터지는 음악들은 나를 현재가 아닌
공상의 세계로 데려다준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여행을 하는 셈이다.
여행 참 좋지.
하지만 요즘의 내게 필요한 건 규칙.
두 발을 딛고 있는 이 자리를 인지하고
현실을 왜곡 없이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를 자주 듣는 이유는,
기도 상태에 들어가는 문을 열기 때문이다.
기도의 보편성이 어떤 측면에서는 기복을 바라는 행위로 전락해 버렸는데,
기도는 흡사 명상과 같다고 생각한다.
기도는 내가 여기 있음을 먼저 자각하고,
나아가 두 발을 딛는 이 현실을 바로 보고
스스로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직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니까.
요즘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나의 습이 나를 자꾸 규칙으로부터 흔들어 놓는다.
그간 삶의 방식이 관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현재는 집중에 맞춰야 하는 시기니 어려울 수밖에.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간 삶에서 회피했던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것들이 와르르 몰려온 것이니,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
(미사 드릴 때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다. 고뇌의 근본을 반성에서 찾는 행위)
뭐, 여튼!
사념은 집중으로 와해시킬 수 있다.
요즘 그 훈련을 하고 있다.
주어진 것에 전념하는 준비 자세로는
먼저 눈을 뜨는 게 우선이라는 걸 기록한다.
(자고 일어나서 눈을 뜨는 그런 거 아니다?)
언젠가 다시 혼돈에 취해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내가 이 글을 읽는다면
흐트러진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을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