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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린 May 22. 2022

더 나은 선택, 당신은요?

군인, 군악대장 가족입니다만

“들어갔는데 왜 인사를 안 해요? 그 선생님, 인사 교육 좀 잘 시키세요.

한 번만 더 이런 일 있으면 가만 안 둘 거예요. 민원을 넣든가 해야지.”


아파트 단지 내 있는 어린이집은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린다. 50명 안팎 수용하는 어린이 집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눈이 수 백 개. 카더라 통신이 간혹 뉴스가 된다.  어린이집에 볼 일이 있어 들렀는데 선생님이 뭔가 일이 있었는지 인사를 못 했던가 보다. 사람 오는 데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노발대발, 어린이집을 들었다 놨다 한다. 한 번만 더 이런 일 있으면 민원을 넣겠다 말겠다까지.


한 번은 새 학기 시작을 준비하며 자신의 아이를 맡아줄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노발대발한다. 선생을 갈아치워라 마라 테이블을 내리치고 벽을 때리며 울분을 토한다. 안 그래도 귀한 내 새끼, 이사 다니게 하는 환경에 몰리는 것도 안타까운데 어디 저런 선생을 쓰면서 내 자식한테 죄책감 들고 미안하게 만드느냐가 이유다. 우르르 대여섯 명이 몰려가 원장을 앞에 앉혀 놓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결국 자신의 마음에 드는 선생님으로 바뀌게 한 후 그녀의 스토리는 영웅담이 되어 아파트 단지를 떠 돈다. 함께 동행했던 하지 않았던 다양한 의견이 오르내린다. ‘그 사람이 어린이집 선생 마음에 안 들어해서 따졌더니 바꿨잖아.’, ‘가만 안 둬.’ ‘어린이집 원장이면 다야?’, ‘그 선생님은 왜 그래?’ ‘저 집 아이들하고 계급 가지고 차별하는 거 아니야?’, ‘누구 집 애만 편애한다는데?’ ‘그러기만 해, 아주. 가만 안 둬. 마음에 안 들면 민원을 넣든가 해야지’


내 아이를 믿고 맡기는 데 매사 관심을 갖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기본적인 예의라는 게 있을 거다. 사람 대 사람이고 내 아이와 함께 하루를 보내는 선생님인데 마치 자기 부하직원 다루는 양 건네는 말에 거침이 없다. 똑바로 하라는 둥, 일 처리 알아서 잘하라는 둥. 갑작스레 들이닥쳐 화장실을 점검하거나 애들 교육 프로그램에 이걸 들여라 저걸 들여라 지시사항까지. 자신의 의견이 들어지지 않으면 ‘이 어린이집 이상해.’로 귀결되는 답이 정해진 마무리.


한편으로는 나 역시 내 아이를 맡기는 부모로서 이들의 태도가 알 것 같다. 군인의 자녀이기에 이사를 다니는 게 염려스럽고 아이들 적응 문제가 마음에 걸린다. 이사 다닐 때마다 아이의 교육과 양육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이왕이면 잘 되었으면 좋겠고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적응이나 변화에 좋은 쪽으로 풀리기만을 바란다. 또 한편으로는 이사를 다니는 게 군인의 숙명인데 저렇게까지? 하는 생각도 든다. 후로도 각 지역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 등 여러 군데 보내봤지만 저 때의 그들 인상은 여전히 각인될 정도이니 말이다.


달리 생각하면 '변화가 잦은 환경, 계급이 있는 특수한 상황' 수긍하는 시간이 단축될수록 감정은 정돈되고 취할 행동은 민첩해진다. 그에 따른 어른의 대처 행동이 중요하지 어느   특별한 장소만의 탓은 아니지 않을까. 어린이집에 감정을 푼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철저히 개인의 시선  판단되는 계급 이미지는 표출되는 행동을 보면   있다. 위에서 누른다 느끼는 대로 타인을 은근히 까는 행동. 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돌려주려는 심보.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남편 계급대로 판단할 거라는 피해의식. 아빠 닮았다는 말을 계급에 이입시켜하는 오해. 어디까지가 객관적이고 주관적인지 모호한 경계선에서 이렇다  결론도 없이 마구잡이 식으로 공동된 의견인 것처럼 포장된다.


부모의 자세는 아이가 보고 배운다. 그림자까지 닮을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모든 걸 다 잘해 주고 싶고 제일 좋은 환경에서 교육해 주고 싶은 마음은 백 번 이해한다. 세상엔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고 그중에 우리 아이 아빠 직업은 군인이다. 직업 특성상 가장 염려되는 부분이 이사와 적응과 교육이라면 이 상황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깨어 있고 싶다.


미래의 불안이나 내면의 감정을 외부로 쏟아내는 것보다 스스로를 돌보며 부모인 내가 솔선수범 하는 방법을 취하련다. 아이에게 군인이라는 역할은 일부분일 뿐, 엄마 아빠의 웃음, 함께 하는 시간, 포근한 부모의 품 속을 더 반기며 좋아한다. 함께 하는 내적 자양분이 풍부하다면 그때그때의 적응은 부모와 더불어 잘해 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어떤 어른의 모습으로 비칠지 어떤 어른으로 살고 있는지의 여부는 나의 선택이다.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하는 아이들의 시선에 부모는 어떤 이미지로 남게 되는지가 중요하다.




계급 문화와 특유의 환경이 내포되어 있는 군인가족 지점에서

개인성이 강한 내가

더불어 살아가며 성장하는 일상을 담습니다.

보편성과 개인성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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