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탁스를 아시나요?
왜 난 이베이에서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는 구식 DSLR을 구매하게 됐을까?
문득 시간이 지나면 지금 이 순간이 그리워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좋았던 기억들은 어렴풋한 이미지로 뇌리에 평생토록 남는다. 안타까운 건 사진이나 카메라를 좋아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남은 선명한 증거물이 손에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낭만적이고 의미 있는 순간들을 그때 100%로 느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여행지에 와서 사진을 찍느라 그 시간을 허비하는 게 한심하다고 느꼈었다. 지금 생각하면 오만한 판단이었다. 셔터를 누르며 돌아오지 않을 그 찰나를 포착하고 다른 이들과도 공유하는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나의 방식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감히 했으니 말이다.
여자친구는 처음에 DLSR 카메라를 구입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뭐, 요즘 스마트폰이 너무 잘 나오니까 굳이 무거운 기계 덩어리를 들고 다니는 건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의 타고난 반항아 기질(다른 말로 홍대병)은 남들과 똑같은 사진을 찍어 남기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난 현지 이베이에서 밤새도록 카메라를 검색했다.
처음에 본 카메라들은 대부분 미러리스였다. 카메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투박하고 큰 카메라들은 DSLR인데, 요즘은 더 작고 몇 배는 똑똑한 미러리스들이 시장을 장악한 지 오래됐다. 가장 인기가 많은 소니 카메라들을 검색하니 금액대가 최소 100만 원은 넘었다. 거기에 렌즈까지 구매한다면 예상보다 너무 큰 지출을 하게 될 터였다. 게다가 앞서 말한 '홍대병'까지 발동한 것이다. '굳이 나까지 소니 카메라를 사야 할까?' 내 초점은 자연스럽게 현재는 구시대 유물이 된 DLSR로 향했다.
펜탁스라는 회사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많을까 싶지만 현재는 활발하게 카메라를 만들고 있는 곳은 아니다. 다만 예전에는 필름카메라를 아주 잘 만드는 것으로 유명했고, DSLR시대만 하더라도 나름의 팬층이 두터운 회사였다고 한다. 내가 이 카메라를 구입한 이유는 디스플레이 픽셀이 나갔다는 이유로 렌즈 포함 77파운드(한화 약 15만 원)라는 아주 합리적인 가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카메라 스펙에 대해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실, 누구도 궁금하지 않을 거란 걸 안다. 구구절절 화소가 어떻고, 오토포커스가 어떻고, 그런 것들은 신경 쓰기 시작하면 지갑만 얇아진다.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욕망 즉, '휴대폰 카메라와 다른 사진을 찍는다' 그것 하나뿐이었고 이 사진기는 이를 완벽히 충족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의 느낌은 필름 사진에 가깝다. 여자친구와 여행을 갈 때 일회용 코닥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는데, 필름이 주는 그 감성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점은 물론 필름 특유의 빛바래고 차분한 색감도 있겠지만, 디지털의 날카로움과는 대비되는 그 흐리멍덩하고 몽환적인 느낌이 나는 참 좋았다.
펜탁스는 필름 카메라를 잘 만들던 명성 때문인지 뭔가 필름스러운 색감을 만드는데 최적화된 느낌을 줬다. 그에 더해 발매된 지 십수 년이 지나 현재의 스마트폰보다 선명하다고 말할 수 없는 화질은 내가 선망하던 '필름스러움'을 잘 반영했다. 이 카메라는 모두에게는 아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완벽한 카메라였던 것이다.
다음 사진들은 내가 개인적으로 나만의 필름스러움을 잘 구현했다고 느낀 사진들이다. 기회가 되면 어떻게 이 사진들의 룩을 만들어 냈고, 각 사진들이 지닌 사연들도 소개해 볼 수 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