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시, 글래스고?

by 오토히

한국에서 많이 알려진 도시는 아니지만 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도시로 규모 면에서는 수도인 에든버러를 압도한다. 스코틀랜드의 수도이지만 에든버러에는 지하철이 없고 작게나마 글래스고에는 지하철이 존재한다. 서울 2호선과 같이 순환선으로 짧은 노선 때문에 놀림을 받곤 하지만 뭐,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다.

IMG_2030.jpeg
IMG_2029.jpeg
글래스고 지하철과 시민들, photo by Yuni


글래스고는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에 매우 번성한 도시로 무역과 조선업으로 많은 부를 축적했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내 조선업이 사양되면서 도시도 쇠퇴의 길을 걸었고 이후 불안정한 치안과 마약 문제로 안 좋은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당시에 조선업으로 급부상하던 나라는 다름 아닌 한국이었다. 우리가 번영을 맞게 될 때 지구 반대편에서는 정반대로 빈곤이 찾아온 것이다.


실직자들이 늘면서 도시는 활기를 잃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그 과정에서 불법 약물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에서 마약의 성지로 불렸다고 한다. 물론 현재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인식이 좋지는 못한 것 같다. 길에서 약에 취해 있거나 대마를 흡연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을 살아본 사람의 입장으로 글래스고는 그다지 살기 빡빡한 도시는 아니다. 사람들도 친절한 편이고 삶의 태도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런던의 삶이 훨씬 윤택할 것 같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비싼 물가와 불안정한 치안으로 긴장하고 있다 느꼈다. 런던의 소매치기들은 현지인, 관광객 가릴 것 없이 지갑과 휴대폰을 훔친다. 런던에 사는 한 학생은 한 달에만 두 번 아이폰을 도난당했다고 한다. 반대로 글래스고에선 아예 소매치기가 없다고 볼 순 없지만 위험성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당연히 한국처럼 테이블에 소지품을 놓고 화장실을 다녀올 순 없지만 말이다.


글래스고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바로 공원이다. 집 근처 'Glasgow Green' 공원에 가면 여유롭게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대단한 일이 아닐지라도, 공원에 가서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거나 강아지들을 데리고 산책하는 즐거움을 안다는 건 인생에서 참 중요한 일이다.


재밌는 건 이 모든 일들이 한국에서도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누구도 막은 적 없고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나는 이러한 작은 일상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을까? 아마도 경쟁으로 치열한 일상 속에서 그런 여유를 보기 힘들었는데 누구에게도 잘 보일 일 없는 머나먼 타지에서 마음이 풀어진 걸 수도 있다. 반대로 이곳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똑같이 느끼려나.




조용하고 느린 일상을 찬미해 보기 위해, 난 낡은 SLR 필름 카메라를 들고 공원으로 갔다. 피사체에 정확히 초점을 맞추고 조리개와 셔터 속도를 수동으로 조정하여 숨을 참은 채 신중하게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현상해서 받아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간격과 기다림이 마침내 사진을 받아봤을 때 느끼는 행복감을 극대화시켰다. 아래는 내가 촬영한 그 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도 아니고, 아름답기로 소문한 공원도 아니지만 나에게는 최고로 가치 있는 사진이다.


글래스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도시에 대한 무궁한 자부심의 근거도 같은 지점이 아닐까? 경쟁할 필요도, 최고야야 할 이유도 없다. 때로는 우리가 생긴 그대로도 괜찮은 것이다. 머나먼 타향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를 조금씩 배워간다. 왜 그토록 어려웠는지, 무엇이 그렇게 스트레스고 마뜩잖았는지, 한 걸음 떨어져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마치 신기루 혹은 착시와도 같은 신기한 경험이다.

2241B29C-176A-4914-833D-5782E27038B7_1_105_c.jpeg Glasgow Green, photo by OTO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