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북서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김지수

24-12 아름동 북서클

by 오트리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표현, 음미하고 싶은 내용들을 두서없이 옮겨 적어본다.


자네가 비우지 못하니 찻물이 넘치지. 네가 차있어서 말이 들어가질 못해. 마음을 비워야 영혼이 들어갈 수 있다네. -26쪽


내가 계속 쓰는 건 계속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말 마음에 드는 기막힌 작품을 썼다면 머리 싸매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을까 싶어. 글을 쓴다는 것은 앞에 쓴 글에 대한 공허와 실패를 딛고 매번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29쪽


인터뷰가 뭔가? inter. 사이에서 보는 거야. - 44쪽


내 말과 생각이 남아 있다면 나는 그만큼 더 오래 사는 셈이지 않겠나. - 49쪽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했지. 인간은 세 가지 부류가 있다네. 개미처럼 땅만 보고 달리는 부류. 거미처럼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사는 부류. 개미부류는 땅만 보고 가면서 눈앞의 먹이를 주워 먹는 현실적인 사람들이야. 거미부류는 허공에 거미줄을 치고 재수 없는 놈이 걸려들기를 기다리지. 뜬구름 잡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학자들이 대표적이야. 마지막 꿀벌이네. 개미는 있는 것만 먹고, 거미는 얻어걸린 것만 먹지만, 꿀벌은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스스로의 힘으로 꿀을 만들어. 개미와 거미는 있는 걸 gathering 하지만 벌은 화분을 transferring 하는 거야. 그게 창조야. 작가는 벌처럼 현실의 먹이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야. 발 뻗는 순간 그게 꽃가루인 줄 아는 게 꿀벌이고 곧 작가라네. - 55-56쪽


철창 안에 있던 동물원 호랑이가 철창을 나와 나한테 덤벼 들고 있어. -60쪽


보통사람은 죽음이 끝이지만 글 쓰는 사람은 다음이 있어. -61쪽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말라고. - 64쪽


늙으면 한 방울 이상의 눈물을 흘릴 수 없다네. 노인 점점 가벼워져서 많은 것을 담을 수 없어. 눈물도 한 방울이고, 분노도 성냥불 획 긋듯 한 번이야. 엉엉 소리 내어 울고 피눈물을 흘리는 것도 행복이라네. 늙은이는 기막힌 비극 앞에서도 딱 눈물 한 방울이야. -69쪽


역사는 많이 알려진 것만 기억하네. - 69쪽


지혜로운 시작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 81쪽

운명론이란 힘껏 노력하고 지혜를 끌어모아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거야. -83쪽


세상은 대체로 실력대로 가고 있어. 그래서 나는 금수저 흙수저 논쟁을 좋아하지 않아. 노력해 봐야 소용없다는 자조를 경계해야 하네. - 86쪽


럭셔리한 삶.... 나는 소유로 럭셔리를 판단하지 않아.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네.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럭셔리지. - 153쪽


인생은 파노라마가 아니야. 한 커트의 프레임이야. 한 커트 한 커트 소중한 장면을 연결해 보니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거지. - 158쪽


세상을 생존하기 위해서 살면 고역이야. 고생까지도 자기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해내면, 가난해도 행복한 거라네. - 179쪽


끝없이 쓰는 것이 행복인 동시에 갈증이고 쾌락이고 고통이야. 어찌 보면 고통이 목적이 돼버린 셈이지. - 191쪽


상처 때문에 버려졌지만 상처를 가진 자가 활도 가지고 있는 거라네. - 193쪽


삶의 고통은 피해 가는 게 아니야. 정면에서 맞이해야지. 고통은 남이 절대 대신할 수 없어. 오롯이 자기 것이거든. 상처와 활이 하나가 됐을 때는 아무도 끝내지 못했던 그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거야. 인생을 해결할 수 있는 거라네. - 195쪽


보들레르(1857년)의 시를 가지려면 그의 상처도 같이 가져야 하는 거라네. '마농 레스크'라는 소설에도 유럽에서 창녀, 깡패, 죄수들을 배에 태워 미국으로 쓸어 보내잖아. 그렇게 해서 남은 사람들로 살아가면 그게 건전한 사회인가? 아니라네. 반면 미국은 그런 쓰레기 취급받던 인간들이 함께 모여 성장해 간 거야. 상처와 활을 동시에 가졌기 때문에 신대륙에서 새로운 종교, 정치, 문화가 끓어오를 수 있었던 거야. 암상당한 대통령이 대체 몇 명인가? 선거할 때마다 가장 꼴통짓을 하는 게 미국이야. 그러나 그게 미국의 힘이고 희망이라네. 미국보고 엉망이라고 하는데 그 엉망진창이 어마어마한 힘이라네. - 197쪽


리더는 사잇꾼, 너와 나의 목을 잇는 사람들 - 274쪽


형님이 놓고 간 책, 대학생이 보던 한자투성이 세계문학전집을 읽었어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상상으로 단어를 익혔고요. 당시 사전도 없으니. 어릴 때 어려운 책을 읽으면 상상의 언어능력이 발화돼요. 모든 문제를 어원으로 접근한다고요. 어원은 화석과 같아서 고고학자처럼 언어라는 화석 조각을 찾아 거대한 공룡을 그려요. 모든 게 어린 시절, 독서의 힘이었어요. -313쪽


공감이 가장 큰 자본이지요.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즐거움, 공감이 사람을 불러 모은 것. - 316쪽


어느 날 문뜩 눈 뜨지 않게 해 주소서. 내가 갈피를 넘기던 책, 내가 쓰던 차가운 컴퓨터.... 그 일상에 둘러싸여 눈을 감고 싶어요. - 319쪽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침대에서 깨어 눈 맞추던 식구, 정원에 울던 새, 어김없이 피던 꽃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 돌려보내요. 한국말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죽는다고 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 320쪽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마지막 'END' 대신 꽃봉오리를 하나 꽂아 놓을 거라고 했다. 피어 있는 꽃은 시들지만 꽃봉오리라면 영화의 시작처럼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을 테니, 끝이란 없어요. 이어서 또 다른 영화를 트는 극장이 있을 뿐이지요. - 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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