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팍한 심리 공략하기
개인 세무회계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긱 워커(Geek Worker)들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준 삼쩜삼. 종합소득세 신고 및 환급 대행 서비스로 불과 출시 2년 만에 누적 가입자 1,000만 명, 누적 환급액 2,400억 원 돌파라는 로켓 성장을 일궈낸 거친 스타트업인데요. '긱 워커들을 위한 세무회계'라는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을 개척해낸 그 도전 정신이 인상 깊어 분석하게 되었어요.
삼쩜삼이 포착한 문제
오늘의 긱 이코노미에는 심각한 세금 리터러시 문제가 있다.
개인 세무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탓에,
사람들은 세금 관리의 복잡성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전문 세무대리인을 고용하기에는 그 비용 장벽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삼쩜삼이 제시한 솔루션
위의 문제를 간편 세금 조회 및 환급 서비스로 해결한다.
삼쩜삼 덕분에 본인에게 돌려받을 돈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사람들까지 숨은 돈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렸어요. 하지만 기존의 시장을 파괴하고 혁신한 기업들이 겪어야 했던 신고식을 삼쩜삼 역시 피할 수 없었어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감'.
숨을 돈을 찾아 신이 난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거 사기 아니야?'라고 되묻는 사용자들도 꽤나 많았어요. 로톡이 변호사협회와, 그리고 강남언니가 의사협회와 마찰을 빚었던 것처럼 삼쩜삼 역시 한국세무사회 및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의 갈등을 피할 수 없었어요.
구글에 삼쩜삼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이하 개보위), 한국 회계사회를 함께 검색하면 그간 해당 기관들과 빚어온 갈등을 설명하는 기사들이 나오는데요. 개보위 관련기사는 약 7,970개, 한국 회계사회와 관련된 기사는 약 14,500개가 조회되고 있어요(2022년 10월 기준).
삼쩜삼은 이들로부터 과잉 정보 수집이다, 불법 세무인 알선이다, 과장 광고로 인한 소비자 조롱이다 등의 주장으로 뭇매를 맞아야 했는데요. 이러한 갈등들이 표면 위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개인 블로거들도 삼쩜삼의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포스팅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주요 내용은 삼쩜삼을 이용해 환급금을 조회만 하더라도 자동 세무대리인 수임이 되며 이는 곧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꼭 국세청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해임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천만 날치기 서비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답니다.
그렇다면 삼쩜삼은 정말 불법일까요?
삼쩜삼은 개보위 및 한국세무사회와 많은 법정 공방을 오갔는데요. 개보위와의 공방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한국세무사회의 고발은 모두 무혐의로 판정이 났어요. 사실 개보위의 의견도 고객의 데이터를 남용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개인정보 수집의 목적과 파기에 대한 규정을 제대로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요 쟁점으로 삼고 있어요. 삼쩜삼 측에서도 조회 및 환급 과정에서 요구되는 개인정보는 기능에 꼭 필요한 최소 사항이며 안전하게 암호화되어 처리한다고 설명하고 있고요.
직접 세무사무소를 찾아가서 전문인에게 의뢰를 한다고 할지라도 그 정도의 개인정보는 건네주어야 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세무사무소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줄 정보를 웹/모바일로 건네는 것엔 왜 이토록 민감해할까요?
그 이유를 파보기 위해 실제 삼쩜삼 사용자들을 인터뷰해보고 만들어본 어피니티 맵에서 관련 페인 포인트를 추려보았어요. 기본적으로 세무회계라는 것이 자격증을 가진 전문인과 공인된 기관에서만 처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진행하는 세무'라는 그 개념 자체에서 거부감을 느낀 사용자들이 많았어요.
눈에 띄는 의견으로는 온라인상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위험성과 피해에 대한 인식이 낮은 60대의 부모님께는 더욱이 이 앱을 추천치 않을 거란 의견이었는데요. 그 의견을 준 인터뷰이가 덧붙이길, 본인은 인터넷상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되면 어떻게 대처하고 2차 피해를 막아야 할지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디지털 리터러시가 낮은 부모님은 최악의 경우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피해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이외에도 신생 스타트업이라서, 공인 회계 기관이 아니라서, 브랜딩이 너무 옷가게 같아서(광고가 무신사 같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등의 이유도 있었어요. 이를 토대로 문제 정의를 해보면 다음과 같은데요:
문제 정의
IT기술을 이용한 간편 세무 서비스가 익숙지 않은 소비자들은 스타트업이 개발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개인정보가 처리되는 것을 불안해한다.
조금 더 자세히 파볼게요. 왜 사람들은 삼쩜삼이 개발한 디지털 플랫폼에게 선뜻 개인정보를 맡기고 싶지 않아 하는 걸까요?
1. 사람들은 오프라인 상의 개인정보 유출 위험성보다 온라인상의 개인정보 유출 위험성을 더 경계하기 때문이에요. 온라인의 경우 그 피해의 범위가 빠르게 확장될 수 있고 범죄 발생 빈도 자체도 높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연예인의 사생활 사진 유출 등 각종 온라인 범죄에 대한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되는 점도 한몫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2. 사람들은 삼쩜삼을 두 살짜리 신생 스타트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사실 삼쩜삼을 만든 회사는 자비스앤빌런즈로 이들은 8년 동안 세무회계 업계에서 입지를 다져온 기업이에요. AI 경리 서비스인 자비스로 오랫동안 소규모 사업자를 도와 각종 세무 업무를 대행한 경험이 있는 회사인데 사람들이 그걸 대부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어요.
3. 사람들 눈엔 삼쩜삼이 '그럴싸'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세무사무소에서는 선뜻 건네줄 정보를 디지털 플랫폼에선 건네주길 주저하는 이유는 버젓한 사무실, 정장에 넥타이, 그리고 벽에 걸린 자격증이 없기 때문이에요. 난생처음 만난 홍길동 씨여도 그가 세무사 사무실에 정장과 넥타이 차림으로 앉아있고 그 벽 뒤로 자격증까지 걸려있다면 홍길동 씨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하는 건 당연한 인간의 본능이에요.
이 영상에서는 두 남자가 형광색 조끼를 입고 각종 유료 장소에 관리자인 척 무단 입장하는 상황을 보여주는데요. 형광색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들이 관리자일 것이라 착각, 매표소를 그냥 지나쳐가게 둬요. 실제로 동물원이나 테마파크에 돈을 내지 않고 당당히 걸어서 숨어 들어가는 데 성공한답니다. 이처럼 '어떻게 보이느냐' 또한 신뢰도를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예요.
위의 내용을 기반으로 다양한 인사이트를 도출해볼 수 있겠지만 저는 결국 '브랜딩'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해요. 브랜딩이라는 게 어떤 색깔을 메인으로 잡을지, 어떤 폰트를 앱에다가 사용할지 등의 외적인 것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일을 이렇게 잘하니까 믿으셔도 돼요'라고 홍보하는 것 또한 브랜딩의 중요한 일부거든요. 유아인 배우로 브랜드 이름을 알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내실을 알리는 부분에선 부족함이 있었다고 봐요. 삼쩜삼의 경우 모회사인 자비스앤빌런즈가 세무회계 산업의 경력직급 기업이라는 점을 충분히 자랑했어야 했어요. 자랑을 안 하니까 사용자들 눈엔 '그럴싸'하지 않은 앱으로 남았고 온라인 세무대행 서비스의 편리함보다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성을 더 먼저 그리고 더 크게 인지하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어디서 자랑할 기회를 찾아야 할까요? 제가 찾은 기회의 땅은 바로 모바일 앱 온보딩이에요. 온보딩은 사용자에게 프로덕트에 대한 정보 전달, 사용법 안내, 브랜드 인식 강화 등을 할 수 있는 아주 귀중한 기회예요. 때문에 그 온보딩 과정을 조금이라도 더 흥미롭게 만들려고 많은 기획자와 디자이너들이 고군분투한답니다. 금융/세금 업계에 있는 다른 모바일 앱들의 온보딩을 한 번 살펴볼까요?
자산 관리 앱인 핀트(Fint)와 삼쩜삼의 대안제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홈택스의 모바일 온보딩 캡처본인데요. 보시는 바와 같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이를 이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해서 보란 듯이 자랑하고 있어요. 비단 자랑의 목적뿐 아니라 처음 프로덕트를 접하는 고객에게는 짧고 쉬운 UX로 한눈에 프로덕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이기도 해요.
그럼 삼쩜삼의 온보딩 과정을 한 번 살펴볼까요?
핀트와 홈택스는 '자산 투자', '세금 조회' 등 프로덕트가 제공하는 기능을 큰 폰트로 설정하고 가장 시선이 모이는 곳에 배치함으로써 서비스 자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에 중점을 맞추었어요. 반면 삼쩜삼의 온보딩에서 가장 눈에 띄는 카피는 '223,490원으로 에어팟 프로 결제 중' 이죠. 삼쩜삼이 제공하는 핵심 기능--환급 신고와 연말정산 절세는 전체 화면 중 가장 작은 폰트 사이즈로 지정되어 있어요.
이는 물론 의도된 바예요. 삼쩜삼은 2030 유저 폭을 확대하기 위한 스케일업 전략으로 '공짜 소고기'와 같은 쉽고 재밌으면서도 이목을 확 잡아끄는 카피를 많이 사용했어요. '삼쩜삼이 환급 서비스를 제공해서 참 좋아요'라고 호소하기보다 '여기서 공짜 돈 타서 소고기 먹었다, 너도 해봐!'의 홍보 전략을 펼친 것이고 실제로 그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어요.
일관된 톤을 유지하고 '간편함'이라는 삼쩜삼의 가장 큰 강점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온보딩을 생략하다시피 했다고 보이는데요. 온라인상으로 개인정보를 건네주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가지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이런 좋은 목을 놓칠 수는 없어요.
문제 정의 (다듬어진 버전)
IT기술을 이용한 간편 세무 서비스가 익숙지 않은 소비자들은 삼쩜삼을 통해 개인정보가 처리되는 것을 불안해한다. 서비스를 뒷받침하는 기술, 데이터 보호 규정, 모회사의 이력 등의 신뢰도를 줄만한 정보를 충분히 전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설
삼쩜삼 모바일 앱 온보딩에 서비스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사항, 뒷받침하는 기술,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회사의 노력 등을 공지하여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면 조회/환급 퍼널에서의 이탈률이 감소할 것이다.
위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선 비교군으로 사용할 온보딩 화면을 제작하여 A/B 테스팅을 진행해야 해요. UX Writer와 디자이너의 역할이 막중한 업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유저 스토리
As: 삼쩜삼을 처음 이용하는 유저로서
I want: 온보딩 과정에서 단순 홍보 카피가 아닌 서비스와 회사에 대한 정보를 보고 싶다
so that: 그 정보를 바탕으로 프로덕트를 이해한 뒤 그에 대한 신뢰도를 정하기 위해서
위의 유저 스토리를 수행하기 위한 백로그로는
- CX 팀으로부터 VOC를 공유받아 자주 묻는 질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정리하기.
- 위를 기반으로 온보딩에 게시하고 싶은 정보 정리하고 컨펌하기.
- 구체적인 마이크로 카피 작성하기.
- 와이어프레임으로 온보딩 플로우 재구성해보기.
- UI 팀에 그래픽 아셋 요청하기.
- 프로토타입 및 실 페이지 제작.
- 테스트 기간과 인원 설정하기.
- 데이터 분석 툴로 A/B 테스팅 셋업 하기.
등이 있을 텐데요. 목적이 정식 기능 출시가 아닌 A/B 테스팅을 통한 가설 검증이므로 신중하게 진행하기보다는 신속한 리듬으로 불필요한 리소스 낭비를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해요. 테스트 이후 나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설이 옳다고 검증되면 조회나 환급 신청 절차에도 비슷한 방법을 적용하여 약간의 진지함을 묻혀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얄팍해요. 작은 한 끗 차이로 싸구려 프로덕트도 고급 유료 프로덕트처럼 보이게 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죠.
오늘은 온보딩 개편을 통해 '우리가 이렇게 대단한 일을 대단한 기술로 대단하게 이루어 냅니다'라고 자랑하는 가설에 대해 적어보았는데요. 늘 기능에 관한 이야기만 하다가 심리적인 측면에서의 분석을 해보니 새롭고 또 재밌네요. 앞으로 이런 글을 더 많이 찾아보고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감사합니다.
출처
Sneaking in EVERYWHERE for FREE (Yellow Vest Experiment)
1년 만에 740만 명이 쓰는 서비스를 만드는 마케팅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