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시장에는 김밥 집이 서너 군데 있다. 그중 내가 애용하는 곳은 나리네 김밥이다. 밥통에서 금방 푼 따끈한 밥을 김 위에 펼치고, 비닐봉지에 담겨 있는 당근, 부추, 우엉, 달걀, 단무지 등 여러 속 재료를 넣고 만 김밥을 은박지에 싸서 준다. 젓가락도 필요 없이 한 손에 쥐고 먹으면 웬만한 체인점 김밥보다 맛있다.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 두 분이다. 키 크고 마른 분이 떡볶이, 튀김, 순대를, 작고 통통한 분이 김밥을 맡고 있다.
상호에서 보듯, 주요 인기 메뉴는 김밥이다. 점심시간 전이나 저녁 무렵처럼, 운 나쁘면 앞에 주문이 밀려 15분 이상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이름난 맛 집이 대개 그렇듯이 이 사장님들의 목은 꼿꼿하고 어깨에도 힘이 들어가 있다.
이사 와서 처음 나리네 김밥집 앞을 지날 때가 기억난다. 사람이 유난히 많은 것을 보고, 김밥 내용물에 눈길을 주면서 가격을 물었다.
“뭘 물어? 벽에 다 쓰여 있구먼...”
“네?”
“아이참, 저기 벽에 쓰여 있다니까. 자꾸 묻네.”
간단히 한마디만 하면 될 텐데, 퉁명스러운 말투로 면박을 주니 민망했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줄을 서서 김밥 한 줄을 맛봤다. 나는 천재의 괴팍스러움에 관대한 편이다. 불친절한 맛 집도 불쾌함을 감내할 정도로 뛰어난 맛 집이라면, 난 그 태도가 자신만의 자존심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대개는 그렇게 뛰어난 천재나, 그렇게 뛰어난 맛 집이 아니면서 거들먹거려 꼴불견이긴 하지만.
나리네를 몇 차례 드나들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이 밀릴 때는 김밥을 네 개 단위로 싸서 한꺼번에 써는 데, 그중 항상 밥이 모자라 빈약한 게 내 손에 쥐어진다는 것. 그리고 통통한 김밥이 건네지는 사람을 보면, 언제나 생글거리며, 주인아주머니들과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렇다, 나리네 아주머니는 사람을 차별하고 있었다. 빈부도 미모도 아니고, 친밀도를 기준으로. 어느덧, 나리네 집 앞에 서면, 나는 인사 잘하고 입이 가벼운 사람이 되었다. 내 김밥이 통통해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여름휴가철이 지난 어느 날, 시장에 들어섰다가 초입에서 키 작은 아주머니의 안 그래도 큰 목소리를 들었다. 가냘픈, 키 큰 아주머니 목소리에도 웃음꽃이 폈다. 김밥을 기다리는 손님과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들으니, 두 분이 휴가 동안, 10박 12일 미국 여행을 갔다 왔단다. 패키지에 모든 옵션을 넣어서. 헬기 타고 알래스카에 내린 뒤, 크루즈선 탄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행복한 얼굴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김밥으로 정말 많은 돈을 버셨나 보다 생각했다. 정말 좋았겠다고, 나는 부러운 티를 팍팍 냈다. 미국은 태평양 건너편에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내게는 정말 부러운 일이었다. 김밥을 다 쌌는데도,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그 후로, 나는 거의 한 달간, 나리네에 갈 때마다 미국 여행 이야기를 꺼냈고, 그때마다 아주머니들은 마치 처음 얘기하는 것처럼 신이 나서 자세히 얘기했다. 다음 손님이 와서 우리 얘기에 끼어들면, 나는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아주머니들의 행복한 기분이 내게 전염되어 집에 와서도 오랫동안 기분이 좋았다.
한동안 빼곡히 들어 찬 냉장고를 비우느라 일부러 장을 보지 않았다. 드디어 냉장고에 빈자리가 생기고 가족들이 묵은 음식에 물렸을 즈음 나는 다시 시장에 갔다. 휴일도 아니었는데 나리네 가게 문이 닫혀있었다. 셔터에는 아파서 쉰다며, 일주일간 문을 닫는다는 쪽지가 붙어있었다. 어디 많이 편찮으신가? 두 분 모두 나이가 드신 편이라 큰 병이 아니길 바랬다.
나리네 김밥 집 문이 열린 것은 약속한 일주일이 훨씬 지나서였다. 멀리서 조리대에 놓인 알록달록한 김밥 재료가 보였을 때 반가워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본 풍경은 예전의 익숙한 그림이 아니었다. 떡볶이 국물을 뒤적이고 있는 큰 아주머니 옆에서 김밥을 말고 있는 사람은 작은 아주머니가 아니라, 키가 큰 젊은 여자였다. 김밥을 말고 있는 손놀림이 왠지 시원찮게 보였다. 오랜만에 문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게는 썰렁했다. 작은 아주머니가 편찮으신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큰 아주머니가 언짢고 불편한 표정이라 말을 건네기가 어려웠다. 짝꿍 중에 한 분은 안 계시고, 다른 한 분은 불행해 보이니 내 마음도 우울했다. 그 뒤로도 드문드문 나리네 가게는 문이 닫히고, 아파서 쉰다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큰 아주머니도 편찮으신 건가? 저러다 영영 문을 닫게 되는 건 아닐까?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외출했다 늦은 저녁 장을 보러 시장에 들른 날, 여느 때처럼 김밥집 앞을 지나가는데 설핏 큰 아주머니 옆에 선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키가 작고 통통한 몸체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작은 아주머니였다. 반가웠다. 그런데 그동안 아팠던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근 이 개월의 부재 끝에 나타난 그녀는 남의 가게에 선 것처럼 어색해 보였다. 원래 마른 편이었는데 그동안 더 핼쑥하진 큰 아주머니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마치 싸웠다가 선생님께 혼나고 억지로 화해한 친구처럼 두 사람은 널찍이 떨어진 채 정면을 향해 데면데면하게 서 있었다.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그 무거운 분위기를 깨트릴 만한 발랄함이 내게 없었으므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자 나는 더 이상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가게에 들어가,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히 김밥을 주문했다. 그리고 슬그머니 두 분의 눈치를 봤다. 그분들 얼굴에서는 이미 굳었던 표정이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두 달 전처럼 우스갯소리도 하고, 처음 온 손님에게는 퉁명한 말투로 툭툭 면박을 주기도 했다.
김밥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져 왔다. 굳이 묻지 않아도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랜 세월 함께 일을 하고, 먼 해외여행까지 함께 다녀왔을 때, 두 분은 친형제보다 더 가깝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방심하고 있을 때,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한 사람의 마음을 헤집었을 테고, 마음이 상한 사람은 또 상대를 헤집었을 것이다. 비록 두 달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끝내 헤어지지 않고 화해를 한 두 분의 용기와 기다림에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만났던 사람을 인생 끝까지 모두 안고 갈 수 없기에 우리는 삶의 길목에서 많은 사람들의 손을 놓는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절대 놓지 말아야 할 손이 있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순수함이 있다면 그 순수함만을 모아 만든 사람, 친구지만 정신적 스승 같은 그런 어른스러운 친구였다. 그런데 내가 그 소중한 친구의 손을 놓아버렸다. 헤어질 당시에는 그 친구에 대해 서운함만 가득했는데,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보면, 헤어진 이유가 얼마나 사소한 것이었는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날 지경이다. 지금은 연락이 끊겨 어디에 있는지 모를 그 친구가 문득문득 생각나고 그립다.
다시 나란히 선 두 분이 전에 없이 더 정겨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