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엄마 때문이야"다.
엄마 때문에 콤플렉스가 생겼고, 엄마 때문에 공부도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못했단다.
억울했다. 나를 닮아 어깨가 좁으니 붙는 옷보다는 루스 핏을 권했고, 키가 작고 머리가 크니 긴 머리보다는 짧은 머리를 권했을 뿐이었다. 아이 말로는 스스로 깨닫기 전에 엄마가 자~알 일깨워줘서 평생 어깨가 좁고 머리 크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리게 됐고 그 때문에 위축됐다는 것이다.
내게는 대학생 때 치렁치렁한 긴 머리에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다가 선배가 머리만 걸어 다니는 것 같다고 하는 바람에 홍당무가 된 기억이 있다. 내 아이에게는 미리 잘 코치해줘서 이런 수모를 피하게 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정말이지 억울했다.
그래도 나의 경우는 약과다. 내 친구는 "엄마 때문에 내가 이렇게 우울한데, 엄마가 즐거우면 안 된다"는 딸 때문에 모임에 제대로 참석하지도 못한다. 친구의 딸은 조금씩 폭력까지 쓰더니 최근에는 지 엄마를 입원하게까지 만들었다. 처음 맞았을 때 펄펄 뛰며 고소하겠다고 했던 친구는 점차 간헐적인 폭력과, "엄마 때문에"라는 지속적인 폭언에 점점 길들여져 지금은 그저 체념 상태로 사는 것 같다. 친구 딸은 어릴 때 왕따를 당했고 그 때문에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다.
물론 왕따를 당했다고 모두 친구 딸과 같이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잘 극복하고 성인이 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모가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들은 모두 오은영 박사나 개통령 강형욱 (방송을 볼 때마다 개를 키우는 것과 아이를 기르는 것이 얼마나 흡사한지 놀라곤 한다)처럼 결단력과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도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을 뿐 이전에는 우리 모두 딸이었다. 딸로서 각기 다른 배경과 스토리를 가지고 성장했고, 그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그 기억이 긍정적이라면 부모와 비슷하게, 부정적이라면 반대로 아이를 양육했을 것이다. 어쩌다 아이의 폭력 대상이 된 친구는 동성 자매 사이에 낀 둘째로 태어나 항상 부모 사랑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 이를 보상하려는 듯 하나뿐인 딸에게는 더 할 수 없는 사랑을 베풀었다. 사랑을 베풀었는데 돌아온 것이 폭력이라니. 사랑에도 절제와 규율이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대가는 너무나 컸다.
나의 또 다른 친구는 둘째로서 받은 설움을 환갑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해소하지 못해 구순의 노모에게 음식을 해갈 때마다 화를 터트리곤 한다. 두 사람의 관계가 날로 악화일로를 걷다 보니 최근 이를 보다 못한 동생이 나서 최근 두 사람의 만남을 최소화했다고 한다. 이걸 보면 "엄마 때문에"는 엄마로서 사는 한 죽을 때까지 받아야 할 천형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지는 않다. 오은영 박사나 개통령 강형욱도 문제아는 부모 또는 보호자 책임이라고 매번 못 박듯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친구의 어머니는 어릴 적 상처 받았다는 친구에게 "그랬냐고 미안하다고" 한 번이라도 위로해주시면 될 것을 "니가 원래 그랬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다."라고 딱 잘라 말씀하시는 통에 친구의 부아를 돋우기만 하고, 딸에게 휘둘리는 친구는 "내가 이런 것은 모두 엄마 탓이다"라는 딸의 가스 라이팅을 강하게 거부하지 못하기에 여전히 딸과 씨름하고 있다.
엄마 탓이라는 말을 들어도 나는 자식 낳은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잘 키워서가 아니라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내 이름으로 이룬 것이 너무나 보잘것없기 때문에 엄마라는 이름 뒤에 은근슬쩍 숨고 싶어서다. 내가 먹여서 키운 구체적인 결과물 뒤에 말이다.
하지만 친구들을 보면서 자식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내가 두 친구들이 겪은 트라우마를 피하고 큰 트라우마를 만들지 않은 것은 내가 동성 자매에 낀 둘째로 자라지도 않았고 그런 둘째를 낳지도 않은 덕, 순전히 운 덕분이다. 단순히 둘째라는 조건뿐만 아니라, 육아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걸림돌이 존재한다. 불화하는 부부관계, 가난, 질병... 그 무수한 장애를 극복하고 세상에 바르게 설 수 있는 인간으로 길러내는 일,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자랄 때는 엄마 탓을 해보기도 하고, 엄마가 되어서는 '엄마 탓'이라는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미움의 관계로 발전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 탓이라고 말하면서도 엄마도 하나의 불완전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연민의 눈길로 바라볼 수 있고, 엄마 탓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식에게 사과를 구할 수 있다면 되지 않을까? 덧붙여 자식을 사랑하되 엄격함을 잃지 않고, 부모라고 우등한 위치에서 강압하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고 말한다면... 여전히 교만한 생각일 것이다. 그만큼 육아는 돌출변수가 많은 모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