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아버지와 카라반 여행

by 라셀

여행을 떠났다. 여행객 조합이 모녀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고 부녀자, 아버지와 딸, 아들이었다.

그들의 평균 나이는 거의 70이며, 컨셉은 카라반 여행이었다.


처음 동생이 카라반을 샀다고 했을 때, 아직 초등학생인 늦둥이를 포함 자식 넷을 두고 있어, 가족여행용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동생은 낚시 좋아하는 아버지와 한 달간 천천히 해안을 돌며 여행을 하고 싶어 구입했다고 말했다. 나는 철없던 막둥이를 효자로 만든 세월의 힘에 놀랐다.

내가 이 여행에 끼게 된 것은, 내가 아버지와 강릉으로 여행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동생이 거꾸로 남쪽 여행을 하자며 나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여행 일정을 잡자, 각자의 배우자와 자식들은 그들만의 사정으로 사양을 하는 바람에 (어쩌면 끼고 싶지 않아 핑계를 댔는지도 모르지만) 의도치 않게 구순 아버지와 늙은 자식 둘의 애틋한 여행이 되어버렸다.

동생은 경산에서 출발하여 오전 아홉 시부터 내리 다섯 시간을 운전한 뒤, 서울에서 내려오는 나를 부안 터미널에서 픽업했다. 우리는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고 변산반도로 이동했다. 도중에 많은 파킹장과 캠핑장이 있었지만 동생은 그냥 지나쳐 해안선을 따라 내달렸다. 해지기 전에 주차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오랜 시간 주행 후, 드디어 차에서 내렸을 때 그의 까다롭고 고집스러운 면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서 있던 곳은 뒤로 이차선이 지나기는 하나 차량 통행이 거의 없고 널찍한 갯벌과 해안선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였다.

동생이 본체와 트레일러를 분리하고, 트레일러 수평을 맞추고, 내부를 사용하기 편하게 세팅하는 데에 또다시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해는 수평선 가까이 이르자, 빠른 속도로 떨어지지 시작했다, 일몰을 놓칠세라 주위에 차들이 모여들고 사람들은 해지기 직전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드디어 카라반에 앉아, 커피를 앞에 두고 코스모스와 갈대 너머로 해 저무는 바다를 바라보니 그동안 녹슨 줄도 모르고 살았던 가슴속이 벌렁거렸다. 노을은 해가 수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자 더욱 붉게 타올랐다.

점심을 그저 그런 해물탕으로 때운 우리는 맛있는 저녁을 먹기로 했다. 구순의 아버지는 조금만 걸으면 힘들어해서, 떠나기 전 우리는 눈과 입이 즐거운 여행을 하자고 말해둔 터였다.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해안선을 한참 달린 후, 동생이 차를 세운 곳은 바닷가 허름한 횟집이었다. 희미한 조명 아래, 남루한 행색의 사람 몇이 가게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자꾸 뒷걸음치는 나를 못 본 척 동생은 수족관 쪽으로 걸어가 물고기를 열심히 살폈다. 그리곤 커다란 참돔 한 놈을 골라 주인과 가격을 흥정을 했다. 식탁에 앉아서야 동생은 허름해도 낚싯배와 횟집을 함께 운영하는 이런 집에서야말로 진짜 자연산 회를 맛볼 수 있다고 입을 뗐다.

먹어보면 서울에서 먹는 양식 회와는 질이 다르다고 장담하던 주인이 내 온 하얀 접시에는 아무 장식 없이 인절미처럼 두껍게 썰린 회만 가득했다. 화려한 쯔키다시는 커녕 곁들여 나온 것은 참기름 향이 진하게 풍기는 막된장과 바구니에 수북한 상치뿐이었다.

입에 넣으니 두툼한 회 한 점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씹으니 떡처럼 쫀득하고 고소했다. 우리는 소주를 주문했다. 체질상 술을 못하는 아버지와 달리 우리는 안주가 있으면 언제나 술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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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가게 앞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와 우리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 안주인이 식사를 내왔다. 그들과 지인인지, 주인 남자가 동석했다. 테이블이 가까운 탓에 자연히 서로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그들은 옛날 함께 배를 탔던 사이인 듯했다. 주인도 우리의 대화를 들었는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분이 남매이신가요? 우리는 겸연쩍게 웃었다. 우리가 생각해도 이 나이에 독신도 아닌 처지에 아버지와 남매가 단출하게 놀러 나온 게 이상하긴 했다. 나랑 나이가 갑장인 주인은 자신의 장인과 아버지가 비슷한 연배인 것을 알고 돌아가신 장인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일을 하듯 매일매일 걸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장인처럼 아파트에 갇혀 창밖만 바라보다 돌아가신다고 열을 올렸다. 그러면서 내일 꼭 직소폭포와 내소사까지 걸어 올라가셔야 한다고 덧붙여, 우리를 기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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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주인 간에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동생과 나는 우리끼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생은 새삼스럽게 육십인 내게 왜 평생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는 대학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그리로 가지 않았는지 물었고, 나는 뜬금없이 살아보니 인생에서 역경이 꼭 필요하더라고 대답했다. 또 동생은 전에 내게 전화한 일을 평생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슨 전화?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은 전화를 동생은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자책하고 있었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보니 생전 전화하지 않는 동생에게서 처음으로 받은 전화가 떠올랐다. 당시 조금 서운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잊어버린 걸 보면 별 일 아니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우리는 술이 들어가면서 평소 검열하고 삭제하는 모든 낯 뜨거운 말들을 술술 쏟아냈다. 술잔이 비워질수록 데면데면했던 관계가 점점 애틋하고 뜨거워졌다.

회 접시가 비워지자, 곰국처럼 하얗고 뽀얀 지리탕이 나왔다. 비린 맛이 전혀 없고 진한 국물이 사골육수처럼 구수했다.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했다.

내일 새벽 낚싯배를 타기 위해 예약하려고 모여들던 사람들이 줄어들고, 식사하던 손님도 모두 자리를 뜨자 슬슬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반 솥 이상 남은 국과 밥 한 공기를 포장해서 나왔다.


그런데 차 앞에 서자, 갑자기 난감했다. 누가 운전석에 앉아야 할지 몰라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동생은 혼자서 거의 소주 두 병을 비운 상태고, 나도 다섯 잔은 마셨고, 안경 없이는 밤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대리운전을 부르자고 했지만 늦은 밤 시골구석에서 우리를 대리해 운전해 줄 기사는 없었다. 동생이 한다면 음주 운전이었고, 아버지와 나는 2종 보통이라 11인승 승용차를 몰면 무면허 운전이었다. 음주 운전과 무면허 운전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우리는 무면허 운전을 선택했다. 비록 1종 면허는 없지만, 아버지는 50년 이상 무사고 베테랑이었기 때문이었다. 동생은 운전석 옆 자리에 앉아 아버지의 운전을 도왔다.

“네,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 “에헤이 아버지, 지금 차가 오른쪽으로 쏠렸잖아요. 좀 더 왼쪽으로.” “네네 좋아요 딱 좋습니다.” “아 그런데 지금 속도가 너무 느리잖아요, 시속 60km는 가줘야죠.” “아아, 아버지 속도 늦추세요. 이번엔 너무 빨라요.” “자, 상향등 켜시고... 이젠 끄시고. 좋습니다.”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소리를 질러댔다.

한 20분을 달려 무사히 카라반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을 때, 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아~가 무슨 말이 얼마나 많은지. 아이고 시끄러버서...” 서울에 와서 아이들에게 이 얘기를 전했더니 평소 동생 모습을 아는 아이들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며 웃어댔다.

동생은 소파를 펴서 잠자리를 만들고, 그 위에 아버지와 내가 같이 누웠다.

피곤했던지 금방 잠이든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는 높았다, 낮았다 불규칙했고, 어릴 적 듣던 할머니의 쌕쌕거리는 천식 소리도 닮아 있었다.

밤에 두세 번 일어나 가습기에 물을 보충한 동생 덕분에 나는 한 번도 깨지 않고 꿀잠을 잤다.

아침은 내가 만들어 온 호박 수프와 삶은 밤으로 때우고, 우리는 전날 횟집 주인이 추천한 대로 물 빠지는 시간에 맞춰 채석강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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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기슭에 만든 책 모양의 띠와 바닷물에 잠겼다가 드러난 바위에 다닥다닥 붙은 따개비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뭔가 싱거운 여행코스였다. 언제나 비슷비슷한 여행이었을 아버지를 위해 색다르고 신나는 뭔가가 필요했다. 바닷가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여러 대의 보트가 눈에 띄었다. 필요 없다는 아버지와 딱히 끌리지 않는 표정의 동생을 보면서도, 나는 거금을 주고 30분짜리 모터보트를 예약했다. 하지만 모터보트 앞머리에 동생과 나란히 앉은 뒤, 보트가 출발하자 금방 후회가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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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보트는 마치 잔돌이 구르는 비포장 길을 달리는 트럭처럼 쉴 새 없이 파도 위를 통통거리며 튀어 올랐다. 허리가 아픈 아버지의 척추가 걱정되었다. 뒤돌아보니 아버지는 바닷바람이 시원한 듯 흡족한 얼굴이었다. 모두 만족한 이벤트였다. 배에서 내려 구명조끼를 벗을 때, 어떤 남자가 아버지를 보고 대한민국 대표 할아버지라며 엄지 척 치켜세웠다.


카라반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라면을 넣은 참돔 지리탕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오후에는 직소폭포와 내소사를 갔다. 아버지는 직소폭포 가는 길목에 있는 실상사에서 멈추었지만, 횟집 주인의 충고를 기억하셨는지 내소사는 끝까지 걸어가는 용기를 내셨다.

그날 아버지가 걸은 걸음 수는 6000보가 넘었다.

우리는 저녁으로 산채비빔밥을 먹고 반주로 막걸리 딱 한잔씩만 했다. 카라반까지 아버지에게 또 운전을 시킬 수는 없었다. 다음날엔 식도락 여행답게 풍천장어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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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새벽, 우리는 세찬 비바람 소리에 일찍 잠에서 깼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었지만, 차가 부서질 듯 비가 쏟아지고 침대가 흔들려 언덕배기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강한 비바람이 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급기야 천정에서 빗물까지 뚝뚝 흘러내리자 우리는 아쉽지만 모든 계획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동생은 바람 때문에 우산도 쓰지 못한 채 뒷정리를 하고, 본체와 트레일러를 연결하느라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그래도 부안에서 장어 대신 먹은 점심은 나쁘지 않았다. 생활의 달인에 출연했던 주인장이 만든 삼선짬뽕에 든 해산물은 푸짐했고, 국물은 시원했다. 빗줄기는 가늘어져 있었지만, 우리의 여행은 이미 끝이나 있었다. 우리는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로 마무리를 한 후 헤어졌다.

저녁에 우리가 다녀온 여행기가 단체 카톡에 올라왔다.

거기엔 보트 타는 아버지와 내소사를 올라가는 아버지, 비를 맞으며 트레일러를 연결하는 동생의 모습이 빼곡히 담겨있었다. 다음에 또 가자는 동생의 카톡에 나는 신나요 이모티콘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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