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계 학술대회 시즌에 즈음하여

by OTXP

바야흐로 국내 학회들의 춘계학술대회 시즌이다. 연구 분야가 겹치는 학회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연구자도 그에 따라 다수의 학회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다. 국제 학회에는 없는 국내 학회의 독특한 논문 발표 세션의 운영 방식이 하나 있다. 발표 논문마다 토론자를 미리 지정하여, 발표 후 논문에 관한 comments를 토론자가 제안하는 것이다.


학술대회 운영을 하면 일단 적정 수 이상의 발표 논문을 모으는 것도 일이고, 그렇게 모인 논문의 토론을 적절한 연구자에게 요청하는 것도 일이다. 나아가서 연구자 입장에서는 들어오는 토론 요청에 응하는 것도 일이다. 춘계, 하계, 추계 이렇게 1년 3회의 학회가 진행된다. 몇 년 전 국내 학회 학술위원장을 맡았을 때 논문을 모으고, 일일이 토론을 요청하고 … 바빴더랬다.


내일 진행되는 학술대회에서 토론을 맡아 가게 되었다. 맡은 논문을 읽어보고 토론을 준비하는 중이다. 서울 지역 대학에 있는 친한 동료 교수가 자신의 석사 학생과 함께 쓴 논문인데, 흥미롭다. 나와 한국에서 석사를 함께 했던 동료로 흥미로운 주제의 논문을 다양하게 만들어 발표하는, 연구에서 매우 prolific 하다. 관심사를 연구로 만들어 내는 것은 연구자로서는 대단한 추진력이 아닐 수 없다. 부럽다.


10년 조금 넘은 국내 학계 활동을 통해 체득하게 된 토론자의 역할은 이렇다. 청중들을 위해, 논문의 내용을 간략하게 한 번 정리해 준다. 그리고 논문의 공헌도에 관해 발표자에게 힘이 되는 격려의 조언을 제공한다. 더불어,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지적하여 논문이 더 발전될 수 있도록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비판적이기보다는 건설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학술대회에서의 논문 발표와 그에 관한 토론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는 “논쟁”이라 여겨질 수 있다. 주제에 관한 흥미를 높이기 위해 이런 견해 저런 견해 간의 흥미진진한 설전으로서의 건설적 논쟁 말이다. 그런 기대가 틀렸다 할 수는 없지만, 학술대회는 토론의 장 이상으로 교류의 장이라는 사실에 더 힘을 주고 싶다는 게 내 견해다. 연구자와 학자들은 대체로 이런 견해를 유지하는 편이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내 분야는 나의 견해가 대다수의 견해다.


연구하겠다는 사람의 수가 줄고 있는 현실에서 볼 때, 지도 교수와 함께 자신의 논문을 학회에서 발표하는 대학원생은 귀하고 기특하다. 국내 학계에 한정해서 보자면 더욱 그렇다. 이런 국내 학계에 유학을 와서 연구를 수행하고 논문을 발표하는 석박사 유학생들은 더욱 그렇다. 친절하지 못한 비판과 지적으로 그들의 노력을 무참하게 만드는 일을 적절하다 할 수 없지 않겠나?


나는 학술 활동을 “대화 conversation”으로 보는 관점에 십분 백분 동의하는 쪽이다. 좋은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조건은 결국 인간관계의 시작과 진행과 유지에 관한 상식적인 수준의 조건에서 시작된다. 그렇기에 일단, 학술대회라는 장이 있으면 일단 와서 서로 만나면 좋겠다. 만나서 서로 안부를 묻고, 만나서 좋고 반가운 마음을 전하고 … 그게 학술대회의 가장 핵심적 기능이 아니겠나.


그래서 나는 토론 요청이 들어오면 거의 대부분 수락하는 편이다. 오랜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학회 나들이도 하고 그 빌어먹을 놈의 AI는 우리 학계에서 어떻게 포용할 수 있을지에 관한 전문가들 이야기도 들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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