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정확히는 2011년 5월 25일, 전 세계 유명인사들이 대거 서울 한 자리에 모였다. SBS에서 주최하는 서울디지털포럼의 기조 연사와 토론자로 참석한 것이다. 주제는 ‘초연결시대.’ IT계의 거물과 CNN 간판 앵커 래리 킹도 대한민국 수도를 찾았다. 공간의 개념이 파격적으로 짧아지고, SNS와 1인 미디어의 보급으로 정보가 끊임없이 오가는 세상, 기술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일상이 주된 이야깃거리였다.
행사장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한 연사가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니콜라스 카였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쓴 작가이자 IT계에서도 정평이 난 인물이다. 그는 정보‧기술 예찬 일색이던 연사들과는 달리 사고력을 저하시키는 원흉으로 범람하는 정보를 꼽았다.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에 두뇌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창의적이고 깊이 있는 사고가 어려워졌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챗GPT의 등장으로 IT업계는 퀀텀 점프를 하고 말았다. 기계가 생각한다는 개념이 아직은 낯설지만, 인공지능은 통번역이나 창작 분야에서 전대미문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람이 글을 옮길 때는 ‘초벌번역’이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AI의 도입으로 초역의 개념이 허용되는 시대가 왔으니 시간이 단축되는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존 번역기와는 차원이 다른, 이를테면, 기계가 아니라 전문가에 준하는 사람이 옮긴 것 같은 품질을 무한정 생산해 내니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니콜라스 카의 충고는 시대를 초월한다. 휴대폰의 등장으로 전화번호를 일일이 외우는 수고에서는 벗어났으나, 그만큼 머리 쓰는 일이 줄어든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제는 창작도 인공지능을 등에 업어 ‘손을 대지 않고도 코를 풀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이를 마냥 좋아할 수 있을까?
창작자란 본디 자신만이 내놓을 수 있는 작품으로 승부를 걸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으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일진대 기계가 떠먹여 주는 작품으로는 어디에 내놓을 데도 없다. 예컨대, 교보문고의 전자책 등록 사이트에는 책을 등록할 때 인공지능의 손을 빌렸는지 여부를 표시하는 확인란이 있다. ‘이 책은 인공지능이 만든 거예요’라는 딱지를 책에 붙이고 파는 격인데 인공지능이 막 출시되었을 때는 호기심으로들 샀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한물간 지 오래다.
창작을 위한 수단으로 쓸 때도 문제가 아주 없지는 않다. 이른바 가짜뉴스, 가짜정보를 서슴지 않고 알려주는 ‘할루시네이션’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설령 해결되었다손 치더라도 기계를 마냥 믿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저런 주제로 글을 써줘”라는 프롬프트 명령어를 입력하면 순식간에 글 한 편이 뚝딱 나온다. 몇 번 이용해봤는데 글이 썩 나쁘지는 않더라. 영어를 한글로, 한글을 영어로 옮겨 보기도 했다. 직장에서 촌각을 다투는 작업이라면 부득이 쓰겠지만 시간이 넉넉하면 구태여 쓰지는 않을 것 같다. 블로그에 한 마디, 한 꼭지를 남기더라도 AI가 가져다 준 글을 기록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인공지능은 시를 어떻게 쓸까’하는 호기심에 재미삼아 올리는 사람은 있어도 말이다.
최첨단 인공지능의 ‘작품’에는 나다움이 없기 때문이다. 글을 나답게 쓰고, 언어를 나답게 옮기고, 그림을 나답게 그려야 제맛이다. 글을 아무리 잘 써줘도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닌 탓에 거리감과 이질감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나는 이렇게 안 쓰는데?’
외국어를 옮길 때는 아직 우리말에 익숙지가 않아 고쳐 써야 한다. 물론 아무리 읽어도 무슨 소린지 모를 때는 저자 대신 뜻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긴 하다.
결국에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내 실력을 업그레이드하는 수단으로 쓸 것인가, 노력과 수고를 덜어주는 노예로 부릴 것인가. 영문을 한글로 옮기든, 글을 쓰든, 한글을 영어로 옮기든, 인공지능은 저 나름대로 패턴이 있다. 자주 쓰다 보면 패턴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쯤이면 사람의 소행인지 AI의 소행인지 눈치채는 소비자나 독자는 널려 있을 것이고 앞으로는 삼척동자도 이를 감지할 것 같다. 본디 세상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기술은 인간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배가 많이 고플 텐데)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렴, 넌 얼마든 그럴 수 있잖아(놀고 싶을 텐데, 고민하지 말고 챗GPT로 과제를 제출하렴).” 돌이 떡이 되는 순간, 니콜라스 카의 말마따나, 인간은 기술의 노예가 되고 창작의 수준은 퇴보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