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페친
페이스북은 매년 그녀의 생일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바로 며칠 전이었다.
그녀에 대해서 사실 아는 게 별로 없다.
고양이를 좋아했다는 사실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정도.
그리고 아주 상냥한 사람이었다는 것.
페이스북 어떤 페이지에서 어떤 글에 댓글을 남기다가 페친을 맺고
서로의 게시물에 댓글을 달아주는 관계였다.
그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댓글은 늘 반가웠다.
특이점이 없는 평이한 말들이었음에도 어딘지 모르게 다정했다.
포근하고 따뜻한 일상적인 인사들이 나를 보드랍게 토닥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말을 예쁘게 못한다. (혹은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직설적이고, 때로는 공격적이다.
원래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인간관계에서 좋은 말로 시작해서 좋은 말로 끝맺음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지, 매몰참의 효율성이 얼마나 높은지 깨닫고나서는
점점 더 그렇게 진화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녀의 착한 댓글들이 주는 다정함에 묘하게 감동했던 전투적인 나는
착하게 말하는 방법, 다정하게 말하는 것의 중요함을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녀가 매일 달아주는 댓글의 일상적인 상냥함은
어디서 긁혔는지도 알수없는 상채기들에 조심조심 호호 불며 약을 발라주는 기분이 들게했다.
나도 가끔 다정한 말을 해봐도 좋겠다 싶은 마음이 생길만큼.
그녀가 나를 만나러 공방에 온 적이 있다. 딱 한번 만났다.
악수를 했을 때 잡아본 그녀의 손은 차갑고 땀에 젖어 있었다.
웃는 얼굴로 인사했지만 많이 긴장한 것 같았고 그게 꽤 마음에 걸렸다.
그 차갑고 젖은 손은 우울증을 앓고 있던 그녀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다정했고, 늘 긍정적인 글을 쓰던 그 사람은
아마 자기가 입은 상처를 상대에게 줄까봐 겁이 났던 것 같았고
부정적인 감정에 지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애를 썼던 것 같다.
손에 식은땀을 쥐고 살아야 할 정도로.
어느날 그녀의 친구와 연인이 그녀가 스스로 떠나갔음을 알리는 게시물을 올렸다.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 놓은 적도 없고 그저 인사만 남기던 나의 다정한 친구는 그렇게 떠났다.
따지고 보면 별 관계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작업을 하며 여러날 눈물을 흘렸다.
실제로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렇게 울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스스로도 어이없을 만큼 너무 많이 슬펐다.
죽을만큼 힘든 시간을 버티며, 필사적으로 다정했던 그녀가 애처로워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꽤 오랜 시간 기억했고
당사자는 읽지 못할 타임라인을 게시하며 다정한 그녀를 그리워했다.
나도 그랬고.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 그녀를 잊고 살지만
'다정한'이라는 단어가 생각날 때는 늘 그녀가 생각난다.
나도 살아생전의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다정한 사람이었더라면 좋겠다.
지금은 그 사람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늘 손이 따뜻하고 뽀송하고 보드라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