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동화 (1)
바람의 꿈은 작년 제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쓴 동화입니다.
휘이잉-
하얀 바람 한 가닥이 구름을 보고 말했어요.
“나도 구름이 되고 싶어!”
그러자 분홍 바람 한 가닥이 와서 말했어요.
“정말? 나도 그래. 너는 왜 구름이 되고 싶니?”
하얀 바람은 대답했어요.
“구름이 부러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데 구름은 눈에 보여. 아래로 내려가면 구름이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 나도 예쁜 구름이 되고 싶어.”
분홍 바람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어요.
“휴, 우리도 구름이 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분홍 바람의 말을 듣고 하얀 바람이 소리쳤어요.
“그거야! 혼자서는 힘들겠지만 ‘우리’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바람들이 한 가닥, 한 가닥 모이다 보면 실들이 얽히듯 구름이 될 거야. 마치…… 솜사탕처럼!”
분홍 바람이 신이 나서 빙글빙글 돌며 대답했어요.
“좋아, 당장 해보고 싶어!”
그렇게 하얀 바람과 분홍 바람은 서로 하나가 되어 같이 하늘을 누비며 다녔어요. 그러다 노란색 바람 한 가닥을 만나 하나가 되었어요.
“노란색 바람아, 우리와 같이 구름이 되지 않을래?”
“좋아, 재밌을 것 같아!”
그 다음에는 하늘색 바람과, 초록색 바람과, 보라색, 주황색, 빨간색 바람과…….
어느새 바람들은 예쁜 솜사탕 구름이 되어 있었어요.
구름이 된 바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어요.
“우리는 이제 예쁜 구름이야!”
한 가닥, 한 가닥, 마치 솜사탕처럼 얽힌 구름은 정말 예뻤어요.
다른 바람들도 그렇게 되고 싶을 만큼 말이에요.
바람들이 솜사탕 구름에게 다가와 말했어요.
“너희처럼 예쁜 구름이 되고 싶어. 우리도 받아주지 않을래?”
“그래!”
솜사탕 구름은 더 커지고 알록달록해졌어요.
그러자 다른 바람들도 와서 말했어요.
“나도 구름이 될래.”
“나도…….”
“나도!”
솜사탕 구름은 더 예뻐지고 싶었어요.
그래서 찾아온 바람들과 모두 하나가 되기로 했어요.
“우리 모두 하나가 되면 더 예뻐질 거야. 같이 구름이 되자!”
이제 솜사탕 구름은 더 크고 알록달록해졌지만 조금 무거워졌어요.
시간이 지나자 지친 구름 한 가닥이 말했어요.
“난 이제 다시 바람이 되고 싶어.”
다른 구름들도 다시 바람이 되고 싶어 했어요.
“어? 나도…….”
“나도!”
이제 구름이 된 바람들은 구름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어요.
“어? 왜 이러지?”
하지만 구름이 된 바람들이 서로 벗어나려고 하자, 가닥들이 엉키기 시작했어요.
예뻤던 색이 뒤죽박죽 섞여서 얼룩덜룩 먹구름이 되어 갔어요.
“다들 그만해!”
“끼야악!”
“어떡해!”
구름들은 점점 무서워졌어요.
“이대로 못 돌아가면 어떡하지?”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슬퍼하는 구름들 사이에서 한 구름 가닥이 말했어요.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마지막에 네가 들어오지만 않았다면…….”
“뭐? 그렇게 따지면 우르르 몰려와서 구름이 된 저 가닥들이 더 잘못한 거 아냐?”
“무슨 소리야! 그렇다면 애초에 구름이 되자고 한 가닥이 잘못했지!”
구름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어요.
하얀 가닥은 마음이 불편했어요.
‘모두 내 탓일까?’
그러는 사이에 솜사탕 구름은 먹구름이 됐어요.
먹구름이 된 바람들은 다른 구름들과 흘러가고 있었어요.
싸우던 구름들은 어느 순간 환한 느낌이 들었어요.
“빛이야!”
멍하니 빛을 바라보던 먹구름은 이상함을 느꼈어요.
빛이 너무 가까워지고 있었거든요.
뜨거울 정도로 말이에요.
“이상해, 너무 더워.”
“녹을 것 같아.”
“뜨거워!”
구름 가닥들은 점점 녹았어요.
땀을 뚝뚝 흘리며 소리를 질렀죠.
“끼약!”
“살려줘!”
“무서워!”
버티던 한 구름 가닥은 떨어지고 말았어요.
그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구름 가닥들은 녹아서 떨어졌어요.
바람들의 꿈은 솜사탕 녹듯 사라졌어요.
“으아아!”
마지막으로 하얀 바람 가닥이었던, 하지만 지금은 색을 잃어버린 가닥이 비가 되어 떨어졌어요.
색을 잃어버린 가닥은 슬픔에 잠겼어요.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무서워. 괜히 나 때문에…….’
비가 되어 떨어지는 느낌은 너무나도 무서웠어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어서, 어떡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어요.
비가 된 가닥은 그저 떨어졌어요.
아래로, 아래로, 더 아래로…….
톡.
비는 어딘가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앞을 바라보니 온통 파란색뿐이었죠.
둥실둥실 떠다니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휩쓸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분명한 건 계속 가라앉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발버둥도 쳐 봤지만, 그럴수록 더 깊게 가라앉았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앞은 어두워졌고, 힘은 빠져서 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이제 주위는 너무나도 고요했어요.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았죠.
비는 포기하는 법을 배웠어요.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세상이 온통 새까맸어요.
어둡고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이 싫지는 않았어요.
조금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비는 계속 이곳에 있고 싶었어요.
그때, 멀리서 작은 빛 하나가 비에게 다가왔어요.
“안녕?”
빛이 비에게 인사했어요.
비도 빛을 마주보며 인사했어요.
“안녕.”
“너는 누구야?”
빛이 비에게 물었어요.
비는 고민했어요.
대답하기 어려웠거든요.
처음엔 바람이었고, 그다음에는 구름이었고, 비가 되어 떨어진 가닥은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어요.
이곳이 어디인지조차 모르고 있었죠.
대답이 없자 빛은 다른 질문을 했어요.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됐어?”
이건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입을 떼려고 하자, 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내뱉으면 그게 진짜 사실이 될 것 같았거든요.
어쩌면 마주하기 싫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이번에도 비는 대답하지 못했어요.
빛은 끈기 있게 기다리다가 다른 질문을 했어요.
“내 이야기를 해도 될까? 오랫동안 혼자 있어서 외로웠거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어.”
비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빛은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나는 원래 하늘에 떠 있는 별이었어. 반짝반짝 빛났지. 모두의 부러움을 받았지만 난 항상 혼자였어. 그게 너무 싫었어. 나는 함께이고 싶었거든.”
비는 조용히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느 날은 아래를 봤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었어. 나는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지. 하지만 그곳에는 별이 없었어. 나중에서야 알게 됐지만, 내가 본 건 별이 비친 바다였어. 지금 우리가 있는 곳 말이야.”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비는 말했어요.
“슬프겠다. 친구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도 없었잖아.”
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어요.
“아니, 슬프지 않아. 이번 일로 나만 하늘에 외롭게 떠 있던 게 아니구나, 깨달았거든. 그리고 나는 여기서 더 빛나는 별이 될 수 있었어. 그거면 충분해.”
비는 이야기를 듣고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겼어요.
생각에서 깬 건 어떤 소리를 듣고 난 후였어요.
우우웅-
그건 아주 커다란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였어요.
비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어요.
그리고 엄청 큰 고래와 눈이 마주쳤어요.
비는 아주 커다랗고 투명한, 검은색 눈동자를 보게 됐어요.
비는 그 속에 비친 ‘나’를 봤어요.
거기에는 텅 비어버린,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있었죠.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지 않은 것처럼 말이에요.
비는 믿을 수 없었어요.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죠.
“내가 왜 이렇게 된 거야?”
그때 고래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아주 잔잔한 목소리였죠.
“이유는 찾지 않아도 돼.”
비는 고래의 말이 이상했어요.
이유를 찾아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고래는 이어서 말했어요.
“모든 일에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어. 중요한 건 너야. 널 마주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때 잘 생각해 봐. 네가 누구인지,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비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났어요.
퐁퐁퐁,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죠.
붕 뜨는 느낌 같기도 했어요.
비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어요.
그리고 점점 위로 올라갔어요.
어느새 비는 햇살을 받으며 둥실둥실 떠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어요.
비는 바다가 하나가 되고도 어떻게 사이좋게 지내는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바다에게 물었어요.
“바다야, 바다야.”
촤아아-
“왜 불렀니?”
“너네는 어떻게 그렇게 사이좋게 잘 지내?”
비는 바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바람들이 모여 솜사탕 구름이 되고, 솜사탕 구름이 먹구름이 된 이야기를요.
바다는 비의 이야기를 듣고 말했어요.
“우리는 다르지만 같아. 똑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그 아픔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서로를 알 수 있어. 그렇게 하나가 될 수 있지.”
비는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어요.
바다는 계속 말했어요.
“여기는 너처럼 비가 돼서 떨어진 바다도 있고, 오랜 여행을 하다 온 바다도 있어. 햇살에 녹아서 스며든 바다도 있고, 악어의 눈에서 빠져나온 바다도 있지. 우린 다 다르지만 모두 각자 아픔을 가지고 있어.”
비는 이제 깨달았어요.
고래의 눈에서 본 것도 ‘나’라는 사실을요.
비는 바다가 되었던 거예요.
어떤 모습으로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거죠.
바다가 된 비는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그리고 생각했어요.
‘나는 바람이 되고 싶어. 다시 바람이 돼서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내 이야기를 싣고 다닐 거야. 그리고 휴식이 필요한 모든 것들에게 선선함을 선물해야지.’
바다는 하늘에 두둥실 뜨기 시작했어요.
너무 가벼워져서, 떠다니던 바람과 같이 날아갔어요.
이제 바다는 다시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기도 하고, 나뭇잎을 연못에 띄우기도 하며, 바람개비를 돌리기도 하는 바람이 되었어요.
그리고 바람은 ‘나’를 사랑하게 됐어요.
사랑할 줄 아는 바람이 되어서, 이야기를 싣고 다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