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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그리 Nov 02. 2018

내가 홍보하고 싶은 것에 대하여

홍보 새내기의 사리사욕

어린 시절 내 책장에는 <세계위인전 전집>이 늘 꽂혀 있었다. 나는 그 책들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새로운 사람들의 생애를 읽고 있노라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마틴 루터 킹' 목사였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던 탓에 '목사'라는 직업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책에 실린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이 어린 나에게도 퍽 감동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에 꽂히면 그것에만 몰두하는 성격 탓에, 나는 마틴 루터 킹 위인전을 수십 번은 넘게 읽었다. 어린 시절 위인전을 읽었던 데에 이어 나중에는 말콤X 와의 비폭력 논쟁, 마틴 루터 킹의 저서 등을 찾아보곤 했는데 정작 얼마 전 마틴 루터 킹과 관련한 인물 중 내가 정말 모르고 있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코레타 스콧 킹 (사진 출처: 슬로우뉴스 http://slownews.kr/54017)


바로 코레타 스콧 킹이었다. 마틴 루터 킹의 부인이라는 사실 외에는 알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코레타 스콧 킹은 매우 열성적인 페미니스트인데다 여성 인권 운동가였다. 여성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보수적이었던 마틴은 코레타에게 집에서 가사와 양육에 충실하기를 바랐지만 코레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코레타는 여성, 게이, 레즈비언의 인권을 소리 높여 외쳤고 이에 대해 수만명 규모의 청중 앞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 나는 처음 마틴 루터 킹을 읽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코레타의 삶에 전율을 느꼈다.


페미니스트의 삶은 어떤 걸까.
여성 활동가의 인생은 어떨까. 


지금까지의 나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했고, 주변의 여성 활동가들은 너무 투명하고 생생하게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페미니스트로서 여성주의 활동을 하다가 국회의원, 장관을 지낸 여성들도 있었지만 내가 궁금한 건 삶의 모습이었지 그들이 맡은 직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물음에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당당히 '코레타 스콧 킹'이라고 말한다. 나는 코레타처럼, 누가 뭐라든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소수자의 소수자까지도 직시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


자신의 활동에 있어 롤모델을 갖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20대까지 내 롤모델은 가자지구에서 반전 시위를 하다가 사망했던 레이첼 코리였다. 그녀는 현장주의자였고, 20대까지는 나도 레이첼을 본받아 가능한 집회 현장에 많이 참여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후 내가 결혼과 출산을 하게 되면서 현장 이외의 곳에서 연대하는 방법이 절실해졌다. 더 이상 레이첼은 내가 따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고, 그러던 중 코레타를 만났다. 그녀는 결혼이나 출산, 육아를 하면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여성이 자신의 롤모델 여성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코레타 스콧 킹도 마틴 루터 킹에게 가려져 제대로 조명된 인물이 아니다. 얼마 전 소천하신 고 김희숙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부고를 접한 뒤 김희숙 선생님의 생애를 갈무리해 페이스북에 게시하려고 했는데 이게웬걸, 아무리 열심히 온라인을 뒤져도 김희숙 선생님의 탄생연월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신속히 올려야 하는 부고라서 급한 대로 선생님의 생애에 대한 짧은 기사를 찾아 내용을 게시했지만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와 관련된 기사는 태어난 날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고 장준하 선생님과 결혼한 날짜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장준하 선생님이 기획한 <사상계>의 모든 실무를 도맡아 한 건 김희숙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김희숙 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을까. 영화 <1987>을 보면 여성 활동가의 모습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여성은 주연인 김태리 단 1명에 불과하고, 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남성으로만 그려진다. 하지만 실제로 1987을 주도했던 국본의 주요인사 30%는 여성이었고, 1987 6월 항쟁에서 국면을 전환시킨 굵직한 사건 역시 여성들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다만 "역사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을 뿐".


그래도 희망적인 건, 가려진 여성의 역사를 발굴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몇 달 전 자주 접속하는 소셜 펀딩 사이트에 들렀다가 <파란여성> 프로젝트를 발견했다. 대학생 친구들이 모여서 여성민주열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한다고 했다. 프로젝트의 취지에 매우 감화되어 나는 홀린 듯이 펀딩을 하고, 혹시 카드뉴스 컨텐츠를 같이 기획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다행히 <파란여성>팀이 흔쾌히 수락했고, 그렇게 우리의 첫 카드뉴스 <1987 : 싸우는 여성들>이 탄생했다. 여기에서 민가협의 삼베 투쟁, 최루탄 반대 시위, 경찰 성폭력 대책위 등 1987을 전후하여 일어난 여러 여성 운동을 다루었다. 페이스북 컨텐츠로 발행하여 총 좋아요 415개, 공유 116회를 달성했는데 아주 걸출한 성과는 아니지만 내게는 하나하나의 마음이 모인 소중한 숫자였다.



카드뉴스 타이틀 이미지. 카드뉴스 전체는 여기에서. http://www.kdemo.or.kr/notification/cardnews/page/1/post/2


물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6월 항쟁 국면에서 있었던 여성들의 투쟁을 개괄적으로 다루다보니 아무래도 개별 항쟁의 내용을 구체화하지 못했다. 당초 목적이었던 '롤모델'을 부각시키지 못했던 것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나중에는 이러한 회고들을 모아서 계속해서 <싸우는 여성들>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하고 싶다. 이우정 선생님, 이태영 변호사, 고정희 시인, 박영숙 전 한국YWCA 사무총장 등 한국 근대사를 이끌었던 다양한 여성 인물들을 널리 알리고 싶다. 


역사는 늘 고정되고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영역같아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여성주의의 시각을 갖게 된 후엔 여전히 발굴될 것이 산더미같은 미지의 땅으로 보인다. 이 역사를 채취하고 알릴 때, 여성들이 모두 지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싸움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심리적인 지지를 받았으면 한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기곤 하니까. 나는, 바로 그런 힘을 홍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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