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홍보 담당자다.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헥헥) 기관의 홍보 담당자로서,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하면 자극적이지 않고 무해하면서도,
재미와 흥미를 일으킬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처음 이 고민을 하게 된 건, SNS 채널에 게시할 카드뉴스를 만들면서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특성상, 우리는 시위를 주제로 콘텐츠로 만드는 일이 많다.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 특별 집회를 소개할 정도(..)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시위 사진을 카드뉴스에 쓰려고 했는데, 막상 카드뉴스에 쓰자니 사진에 찍힌 시위자의 얼굴이 너무 또렷하게 잘 보였다. 게다가 그 시위는 최근에 있었던 #METOO 관련 집회였다. 사진은 사용 허락 받았지만 시위자의 얼굴이 너무 잘 보이는 사진을 쓰기는 망설여졌다. 내가 그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내 얼굴이 (심지어 여성단체도 아닌) 다른 단체의 시위 카드뉴스에 나오는 건 꽤 불쾌한 일로 여겨질 것 같아 고민하다가 결국 그 사진을 빼기로 했다.
그 이후에 나는 또 다시 카드뉴스를 만들었다. 이번에 만든 카드뉴스는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유태인 학살을 추모하는 기념시설을 소개하는 게 목적이었다. 기념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다보니 자연스럽게 유태인 학살을 골자로 스토리라인을 만들었는데, 만들어놓고 카드뉴스에 적합한 이미지를 찾다보니 나도 모르게 총, 칼 등 살인 무기를 중심으로 카드를 만들고 있었다. 나 스스로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완성된 카드뉴스 초고를 검토하던 중 함께 이 카드뉴스를 기획한 다른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학살이라는 이야기 자체도 끔찍한데,
칼 이미지까지 더해지니 너무 자극적인 것 같아.
듣고보니 그 말이 맞았다. 그 이후 우리는 원래 선택하려 했던 총기 사진을 버리고, 죽음을 의미하는 다른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물결 하나 없이 흐르는 조용한 강 사진과 빈 신발 사진 등을 찾았었는데, 아래 이미지가 채택됐다. 이미지가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자극적인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죽음에 대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었다.
일을 하면서 점점 더 윤리적인 홍보에 대한 고민은 쌓여간다. 이 고민을 혼자 하긴 어려워서, 주변의 비영리단체 홍보 담당자들을 모아 윤리적 홍보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작은 단톡방을 만들었다. 이 모임을 여는 것은 빠띠의 '찐찐쩐'이 앞장서주었다. 지금은 약 7개 단체의 비영리단체 홍보 담당자들이 모여 소소한 실무 고민과 팁을 나누는 방으로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사실 비영리단체는 홍보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홍보는 돈이라고 하지 않는가. 사람들을 빵빵 터뜨리는 재밌는 영상, 이목을 끄는 이벤트 등을 기획하려면 모두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 없는 돈이라도 일단 때려박고 귀가 솔깃해지는 말들로만 포장해도 사람들의 클릭을 부르기에 모자랄 판에, '윤리'라니.
그래도 우리 기관이 홍보하는 것은 명확하기 때문에, 나는 결국 윤리를 놓을 수가 없다. 물론 지금 당장 내 앞에 놓인 것은 우리 기관의 새로운 사업이나 행사 홍보이지만, 결국 내가 홍보해야 하는 것은 민주화운동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우리 기관이 추구하는 민주주의라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SNS 타임라인을 흩뜨리거나 자극적인 이미지로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기관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소소하고 무해한 홍보를 연구하려고 한다. '윤리적인 홍보'라는 이름 자체가 모순을 품고 있을 지라도, 그 (불)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 지금 내 일의 일차적인 목표다.
+덧. 위에 언급된 카드뉴스 전체는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