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24의 The Moment

더 모먼트(2026)

*이 글은 영화 'The Moment'(2026)의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R1280x0.jpg The Moment(2026)


트렌디한 영화 제작사 A24 + 씨네필로 유명한 아티스트 Charli xcx + 앨범 Brat의 글로벌 흥행
=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려 탄생한 훌륭한 기획 상품


최근 가장 인상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 영화사 A24는 영화 배급/제작사로는 드물게 충성도 높은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더 랍스터’(2015), ‘레이디 버드’(2017), ‘미드소마’(2019) 등 독립영화계의 화제작을 꾸준히 선보였으며,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문라이트’(2016)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를 통해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후 ‘시빌 워: 분열의 시대’(2024), ‘마티 슈프림’(2025) 등 제작비가 높은 대형 영화로도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여기에 영화 사운드트랙 사업까지 본격적으로 확장하려는 듯 A24 Music을 만들며 전방위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A24가 이번에는 Charli xcx의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Brat”(2024)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투어 다큐멘터리나 콘서트 필름이 아닌, 모큐멘터리(mockumentary, 혹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긴 하다.


1349016982566.jpg (출처: 엑스포츠뉴스)


2012년 추석 특집 예능 ‘시간을 달리는 TV’에 출연해 초성이 같은 가수 PSY를 패러디한 박신양의 예능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나와 동년배. 인기, 실력, 인성 중 인성을 화끈하게 포기한 캐릭터로 등장했던 박신양. 그가 이걸 찍게 된 이유는 죽을 때까지 알 수 없겠지…


모큐멘터리라는 장르적 특성을 고려할 때, 주요 배역에 실제 셀러브리티들을 등장시키는 선택은 꽤나 영리해 보였다. 라이브 영상의 촬영감독 요하네스(Johannes Godwin) 역을 맡은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본인 역할로 등장한 카일리 제너, 그리고 Charli xcx의 노래 ‘360’의 가사 “I’m so Julia”의 주인공 줄리아 폭스까지. 우리가 얼핏 봐도 알아볼 수 있는 얼굴들이 얼토당토 없는 역으로 등장할 때마다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가 아닌 모큐멘터리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킨다.


영화적으로도 현실감을 살린 유머러스한 대사와 강렬한 네온사인 스트로크 효과 그래픽은 인상적이었다. 다만 이 영화의 주인공이 실존하며 현재도 활발히 활동 중인, 말하자면 상품성이 높은 아티스트라는 점에서 오는 한계 역시 분명했다. 캐릭터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 없다는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캐릭터를 더 과감하게 날려버렸다면 극적으로 훨씬 더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자체보다도 이 작품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나 프로모션 전략이 훨씬 흥미로웠다. 영화 속에서 꽤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하는 brat 카드를 실제로 판매하기도 했고(현재는 솔드아웃이다),


Howard Stirling f.png (출처: https://howardstirling.com/)
the moment.jpg 영화 공식 포스터
image.png (출처: eastlondonlines)

Brat 앨범 커버 색상을 그대로 사용해 타이틀만 적어 넣은 포스터는 물론이고, 런던 쇼디치의 벽에는 “this is movie promo btw(근데 이건 영화 홍보야)”라든지 개봉 후에는 “have you seen it yet(그거 봤어?)” 같은 카피만 새겨 넣은 단순한 홍보 방식을 택했다. 심지어 영화 제목이나 개봉일조차 적어두지 않는 담대한 선택까지 감행한다. 그러나 Brat 앨범을 아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영리한 프로모션이다.


Charli_XCX_-_Brat_(album_cover).png Brat(2024) 앨범 커버


정작 이 모든 현상을 만들어낸 앨범 커버는 돈을 아끼려고 대충 만들었다고 아티스트 본인이 직접 밝히기도 했다. 일단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받는다더니...


영국 출신 아티스트에, 영화의 주요 로케이션 역시 대부분 런던 시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획을 실제로 구현해 낸 주체가 미국 기업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문화 기획을 통해 돈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방식에서는 여전히 미국을 따라갈 자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기획이라 브런치에서 한 번 다뤄보고 싶었다. 앞으로 A24가 또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영화를 전개해 나갈지 기대된다.


다음으로 기대하고 있는 A24의 작품은 최근 트레일러가 공개된 공포영화 'Backrooms'다. 작품 수가 늘어나면서 완성도의 편차는 어느 정도 피할 수 없게 되었지만, 주제 하나만큼은 정말 기막히게 골라낸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바이럴 됐던 영상을 만든 유튜버가 감독을 맡는다고 한다. 북미에서는 5월 말 개봉 예정이다.



영화 The Moment는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극장 개봉이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마지막으로 영화 속에서 Charli xcx가 울부짖듯 외치던 대사를 한 번 읊어보며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BRAT! SUMMER! FOREVER!



글쓴이 : 런던의 D

런던에서 영화 주변을 기웃거리며 살고 있다. 한국에서 영화 홍보마케팅 일을 했으며 영국에서 미디어와 관련한 짧은 공부를 마쳤다. 현재는 영화제, 영화관 등 영화 관련된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