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그러라고 태어난’ 돼지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식용으로 가장 많은 양을 소비하는 동물은 돼지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국민 1인당 평균 27kg정도의 돼지고기를 소비했는데, 식당에서 고기 1인분이 평균 200g 정도이니 이는 무려 130인분에 해당되는 양입니다. 모든 국민들이 이 정도의 고기를 소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돼지를 키워야 하는걸까요?
가축으로서 돼지의 삶은 크게 모돈과 비육돈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두 경우 모두, 특정한 목적을 위한 사육이라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모돈은 일반적으로 어미암퇘지를 말하는 것으로 번식을 목적으로 사육하는 돼지이고 비육돈은 말 그대로 ‘고기’의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육하는 돼지인 것이죠.
어떤 돼지의 생명이든 그 시작은 어미로부터 비롯되므로 일반적인 양돈 -전체 돼지 사육의 99.5%에 해당하는 방법- 에서의 모돈의 삶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모돈의 삶은 단순합니다. 임신이 가능한 순간부터 죽기 전까지 오직 임신과 출산만을 반복하는 삶이지요. 모돈은 스톨(stall)이라고 부르는 감금틀 안에서 살아갑니다. 이 틀은 모돈의 몸에 딱 맞게 제작된 것으로 폭 70cm, 높이 120cm, 길이 190cm 정도의 철봉입니다. 폭이 기껏해야 어른 팔 길이 정도이기 때문에 돼지들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커녕 좌우로 30도 정도밖에 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모돈의 공간인 임신사는 이런 스톨 수십 혹은 수백 개가 가득 차있는 공간으로 그야말로 공장을 연상시키는 곳입니다.
모돈이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자다가 일어나 파이프에서 나오는 사료를 먹고 살이 찌는 것 뿐입니다. 스톨 안에서의 움직임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근육량이 떨어지고 발굽이 웃자라 기형적인 모양이 되기도 하며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많은 경우 관절이 손상됩니다.
모돈은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첫 임신을 하게 됩니다. 축산 농가에서는 편의상 모든 모돈의 임신 주기를 맞추고자 발정 유도 주사를 놓고, 선별된 종돈(웅돈)의 정자를 받아와 인공수정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작업자들은 임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웅돈을 앞에 데려다 두고, 모돈의 엉덩이 위에 걸터 앉아 모돈의 흥분을 유도합니다. 그리고 모돈의 생식기에 50cm 정도의 플라스틱 관을 삽입하고 정액을 투입합니다. 사람에 의한 강제 임신인 셈입니다.
이렇게 4개월의 임신 기간을 거쳐 새끼를 낳은 뒤 24일 정도 후에 다시 임신을 위해 새끼와 이별합니다. 새끼는 아직 젖을 먹을 기간이지만 수유 기간을 줄일 수록 재임신이 가능하므로 수유는 최소한의 기간 동안에만 이루어집니다. 이런 주기로 모돈은 1 년에 2회~2.5회 가량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데 대략 7산 정도가 되면 도살됩니다.
투입한 사료 대비 산자 수가 떨어지거나 유산율이 높아진다는, 결국 생산 비용 계산에 따라 타산이 맞지 않다고 판단되는 순간까지가 모돈이 누릴 수 있는 삶의 기간이 됩니다. 그래도 3년 가까이 사는 셈이니 고작 6개월 남짓 살다가 가는 비유돈의 삶보다는 낫다고 해야할까요?
모돈이 살아가는 공간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세상에 발을 디딘 자돈(새끼돼지)의 삶도 녹록치 않습니다.
공장식 밀집 사육에서 동물 복지와 관련해 가장 이슈가 되는 ‘꼬리 자르기’, ‘이빨 자르기’, ‘거세’ 는 대개 생후 일주일 안팎으로 실시됩니다. 꼬리와 이빨 자르기는 밀집 사육 과정에서 호기심 많은 돼지들이 상대의 꼬리를 물어 상처와 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거세는 ‘웅취’ 라고 부르는 수컷 특유의 비린내를 줄이고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행합니다.
이빨과 꼬리 자르기는 주로 니퍼를 이용해서, 거세는 대개의 경우 맨손으로 이루어지는데 세 작업 모두 일반적으로 마취 없이 이루어집니다. 동물의 복지를 이야기하는 단계로 가기 전에 맨손으로 살아 움직이는 동물의 멀쩡한 장기를 뜯어낸다니, 그 동물의 고통이 어떨지부터 상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육 과정에서 지나치게 야위었거나 약간의 결함이라도 보이는 자돈은 철저하게 도태됩니다. 도태의 이유는 역시 투여되는 사료 대비 예상되는 고기 생산량이 적기 때문이고, 도태의 과정은 바닥이나 벽에 던져 죽이거나 죽을 때까지 방치하는 단순한 행위로 이루어집니다. ‘도태’ 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거창하다고 느껴질 정도이지요.
살아남은 자돈들은 포유자돈, 이유자돈, 육성돈의 단계를 거쳐 비육돈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비육돈은 한 공간에 여러 마리를 밀집 사육합니다. 법으로 정해진 단위 면적당 사육 기준은 비육돈의 경우 마리당 0.8제곱미터인데요. 이 크기는 일반 가정집 방문 절반 정도의 크기이고 한 평당 16~17마리로 계산됩니다.
한 평에 16명의 사람이 함께 먹고 싸고 자는 것을 상상해 본다면 이해가 쉬울까요?
당연히 이 공간은 소음과 악취가 가득합니다. 야외가 아닌 돈사는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내부는 암모니아 냄새로 가득하고 발밑이 뚫려있지 않은 경우 돼지들은 자기가 싼 똥을 밟고 다니며 그곳에 누워 잠을 잡니다.
자연환경에서 돼지는 생활 공간과 배변 공간, 식사 공간 등을 구분한다고 하는데 다른 본능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본능은 발휘될 여지가 없습니다. 돼지는 또한 땀샘이 퇴화해서 몸이 쉽게 뜨거워지기 때문에 야생에서는 진흙에서 목욕을 자주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는 배설물을 몸에 발라서라도 열을 식히려고 합니다. 아마도 ‘돼지 같은 놈’ 이라는 오명은 아마도 이렇게 인간이 제한해 놓은 악조건 속에서 탄생한 것일 겁니다. 먹이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서열도 생기게 되고 크고 작은 싸움도 일어납니다. 지속적인 공격으로 개체가 사망하거나 크게 다치는 경우도 생기게 되구요.
야생 돼지는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코로 땅을 파헤치며 먹을 것을 찾는 데 씁니다. 동물 복지 농장에서는 돼지들이 이런 행동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짚, 나무 조각, 톱밥, 가죽끈 같은 보조물을 제공합니다. 이렇게 물고 씹을 수 있는 장난감을 주면 돼지의 공격성도 감소합니다.
유럽 연합은 2003년부터 모든 돼지에게 의무적으로 가지고 놀 수 있는 공이나 쇠사슬 같은 장난감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어린 돼지들의 꼬리물기도 예방하고 정형행동과 같은 이상행동들도 줄일 수 있는 것이지요.
아무튼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생후 180일 정도가 되면 돼지의 몸무게는 110~120kg이 되고 출하에 다다릅니다.
비좁은 돈사에서 살던 돼지는 도축장으로 옮겨질 때 비로소 신선한 바깥 공기를 쐬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도 평범하지 않습니다.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돼지를 돈사 밖으로 몰기 위해 사람들은 귀를 힘껏 잡아당기거나 전기봉이나 플라스틱 몰이채로 물리력을 가합니다.
그러면서 돼지의 몸에도 크고 작은 상처가 생기게 되지요. (참고로 현행 동물보호법에서는 운송 과정에서 전기봉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동물 복지 축산은 사육 과정 뿐 아니라 둥물의 운송, 도축 과정에서도 동물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동물을 도축장으로 운송할 때에는 동물이 상해를 입지 않고 급격한 체온 변화나 호흡 곤란을 겪지 않도록 적절한 구조를 갖춘 동물 운송 전용 차량을 이용해야 하지만 현재의 축산 현실에서 이 같은 방법의 실현은 요원해 보입니다.
도축 과정에서 돼지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전기도살법(전살법)보다 이산화탄소 마취법을 권장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이산화탄소 마취법으로 도축이 가능한 곳은 여섯 곳에 불과합니다. 또 수천만 마리 가운데 몇 마리가 이산화탄소 마취에 의해 도축되는 지에 대한 통계도 없습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산화탄소 마취보다 전살법을 선호하는 이유는 전자의 시설을 짓는 데 비용이 더 들고 전자의 방법으로 도축하였을 때 부산물의 품질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방법이 돼지에게 고통을 줄여주는지 알면서도 그들을 생명이 아닌 상품으로 보는 관점 때문에 우리는 이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도축 방법 역시 동물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고 않고 인간이 계산하는 효율성에 기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장식 축산으로 사육하는 돼지의 짧고 고단한 삶에 대한 글을 쓰면서 예전에 방문했던 자연축산 농가의 돼지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싸는 곳을 구분하여 생활하며 풀과 발효사료를 먹고 자라는 그 돼지들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호기심을 보이고 곁에 와서 냄새를 맡았습니다. 장난꾸러기 같이 흙장난을 하며 뛰어다니는 새끼 돼지들은 집에 데려가고 싶을 만큼 귀여웠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사는 돼지들이 우리나라에 1%도 채 되지 않는다는 목부님의 설명을 듣고나서는 그들이 삶이 더 가치있게 느껴졌습니다.
지난 10년간 전국 양돈장의 수는 10%이상 감소한 반면 사육두수는 15%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는 단위 면적당 사육두수는 더욱 늘어난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공장식 축산 농장과 동물 복지 인증 농장의 가장 큰 차이는 ‘단위 면적 당 사육두수’ 입니다.
한마디로 행동반경을 조금 더 확보해서 그만큼의 자율성과 좋은 환경을 보장해주는 것이지요.
단위 면적 당 사육두수를 줄이면 매출은 당연히 현저하게 줄어들게 됩니다. 사육두수를 유지하면서 면적만 늘린다면 새로운 축사를 지어야 하구요. 사육의 전과정을 통해 보았을 때 많은 수의 돼지들이 상품성과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도태되고 기타 각종 질병으로 사망합니다. 하지만 동물 복지 농장의 돼지는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면역력이 강하기 때문에 일반 공장식 축산 농장에 비해 낮은 사망률과 유산률의 통계를 보입니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 속의 돼지들은 하나같이 푸른 초원을 뛰노는 행복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고, 고깃집과 마트의 정육 코너에서는 방긋방긋 웃고 있는 돼지가 우리를 반깁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어서까지 현실을 배반한 거짓된 모습으로 그들을 만납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자연상태에서 본능에 따라 고통받지 않고 사는 것이 당연한 상식으로 교육받으면서 말이지요.
동물복지의 논의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시작점은 가축을 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입니다.
돼지를 상품으로 보았을 때 공장식 축산은 가장 이상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돼지를 생명으로 본다면 현행법에서 인정하는 동물복지 축산은 그들을 위한 최선은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배려는 될 수 있습니다. 축산 동물의 삶은 그 끝이 ‘고기’ 라는 명백한 한계를 가지지만 아무리 그렇게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을 함부로 다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육식을 위한 동물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고민하는 일은 우리와 같은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