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었다. 그래, 맞다. 오후 8시부터 10분간 소등하는 행사로도 유명한 바로 그 날이다. 남산 타워 불이 꺼지고, 밝게 빛나던 빌딩 숲이 한순간에 어두컴컴해지며 지구가 원래의 상태를 되찾는 날. 고요했던 지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날.
환경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으로서 지구의 날 소등 행사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오후 8시가 되기를 기다린 후 10분이 아닌 15분 동안 불을 끄고 있었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10분만 할 수도 있었지만, 평소 밤늦게까지 불을 켜고 있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5분을 추가해 15분간 끄고 있었다. 누가 신경이나 쓰겠냐마는 남들보다 전기를 많이 썼던 내가 10분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10분. 짧다면 짧은 시간이고 무언가 하기에는 모자란 시간이다. 이런 10분에 대해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불을 끄고 있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켜놓고 있는 시간은 그보다 월등히 많은데 고작 10분 동안 그러고 있는 게 진짜 지구를 위한 일이냐고.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가 불을 끄고 있는 시간보다는 불을 켜고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10분간의 소등이 끝나고 나면 다시 불을 켜고 우리는 일상을 살아갈 테니까. 불을 끄고 있던 10분의 시간을 잊어버린 채 환하게 빛나는 밤을 영위할 테니까. 이런 활동들이 누군가에겐 위선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진짜 환경을 생각한다면 더 ‘적극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쏘아붙일 수도 있겠다. 집에 틀어박혀서 불을 끄니 마니 할 게 아니라 밖에 나와 당당히 큰 목소리를 내면서 “나는 이런 신념을 보인다. 나의 신념에 동참해주길 바란다.”라고 소리쳐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진짜 지구를 생각하는 일, 환경을 돌보는 일 아닐까? 라면서.
이런 질문을 생각할 때마다, 주변에서 위와 같은 말들을 들을 때마다 자주 무기력해지곤 한다. 그래, 내가 이런 걸 하는 게 정말 의미가 있는 행동인걸까? 이런 작은 일이 무슨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일까? 하는 허탈감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혼자 하는 것은 정말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 개개인은 연약하니까. 엇나가기 쉽고 이정표가 없으면 하릴없이 헤매며 불안이 없어도 불안을 만들어내는 존재로 머물 뿐이니까. 살짝 툭 치면 부러지는 나뭇가지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가장 중요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우리는 함께잖아. 같은 날 같은 시각 모두가 똑같이 행동한다는 것은 홀로 행동하는 것과 다른 양상을 띤다. 우리의 행동은 개별적이지 않다. 그 순간만큼은 같은 방향, 같은 속도로 달린다.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흐름은 견고하다. 쉽사리 흔들리지 않으며 무너지지 않는다. 작은 나뭇가지를 수십, 수백 개 모아 부러뜨리려하면 절대 쉽게 부러지지 않는 것처럼. 함께 할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을 지정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쉽게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혼자 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함께 한다면 그것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음을, 그 순간 만들어지는 연대의 힘은 그 어떤 힘보다도 강함을 만천하에 보여주면서 말이다.
이번 행사는 '이 순간만큼은 우리 함께 해보자'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것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씩 떠올려보자’라는 의미도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다.
'하루 10분씩 불끄기', '안 쓰는 플러그 뽑아놓기', '쓸데없이 켜져 있는 불 소등하기', ‘저전력 제품으로 교환하기’ 등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역시 누가 볼 때는 하찮은 일일 수도 있다. ‘겨우 그런 걸로 뭐가 되겠어?’ 한두 번으로 끝나면 이 역시 하찮은 일에 머물고 만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아주 작은 일도 오랜기간 끌고 가면 먼 미래에 봤을 때 대단한 일이 된다. 세상의 큰일은 작은 일부터 시작된다고 그러지 않던가. 큰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허나 작은 일을 오래 끌고 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지구의 날은 우리에게 그런 것을 말해주고 있다. 10분부터 시작해 나가보자고. 10분 이후의 삶을 상상해보자고. 10분의 진정한 의미는 단지 10분이 아니라고.
우린 짧다면 짧은 이 10분 동안 함께 하는 모든 이들과 하나가 되며 환경을 위한 습관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보면 결코 짧지 않은 10분이다. 결국 우린 이 10분을 통해 거대한 일을 해낸 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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