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시간이 멈춘 뒤에도

돌봄의 끝이 아닌, 이어짐의 시작

by OurSlowBlooms


이번 글은 그 이후의 시간,
〈돌봄의 틈을 메워주는 나라〉가
‘지금 이 순간의 복지 공백’을 이야기했다면,
부모의 시간이 멈춘 뒤에도 계속되는
돌봄의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아이의 성장은 어느 순간 멈춘 듯하다.

가르쳐도, 반복해도,

어제의 행동이 오늘도 그대로다.


선생님과 주변 사람들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잖아요.


위로하지만,


나는 안다.

이건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멈춰 있는 구조 속에서

아이의 시간이 고여 있기 때문이라는 걸.




지금의 복지는 ‘현재형’이다.

활동지원, 바우처, 특수교육 서비스까지

모두 부모가 존재한다는 전제로만 작동한다.


보건복지부의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은

아직도 대다수 지원을 성인기 이전까지만 고려한다.

제도는 여전히 ‘부모의 체력’과

‘가정의 희생’을 믿고 있다.




학교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교육청은 매년 인력 충원을 약속하지만,

현장의 비율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한 명의 특수교사가

여섯 명의 아이를 맡는 1:6 체제,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아이를

동시에 지도해야 하는 상황.

그 속에서 ‘맞춤형 교육’은 이상으로만 남는다.


발달 단계가 모두 다른 아이들을

하나의 교실 안에 두고 가르치다 보면

정작 가장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뒤로 밀린다.

그 사이, 부모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만

시간은 흘러가고

아이의 발달은 멈춘 자리에서 맴돈다.


이 구조가 지속된다면

미래에 대한 불안은 더 단단해질 뿐이다.


지금도 이런데,
앞으로는 과연 나아질 수 있을까?


그 질문이 가슴속에서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자라난다.




루게릭병 전문 요양병원이 개원했다는 뉴스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왜 중증 자폐나 발달장애인을 위한

전문요양병원이나 장기거주시설은 없는 걸까.

언제까지 우리는 ‘가족의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돌봄을 감당해야 할까.




나는 내 아이를 ‘맡기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이 아이가 사람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 마음이 바로

‘평생 돌봄 복지’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돌봄이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사회의 시작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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