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틈을 메워주는 나라

by OurSlowBlooms


나는 늘 시간에 쫓긴다.

하교 후 센터에서 치료를 하고 오면 거의 저녁시간이 된다.
아이 셋 저녁을 먹이고, 집안일을 조금 하다 보면
벌써 재워야 하는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중증 자폐인 첫째 아이를 위해
5분 정도라도 가정에서 맞춤학습을 시켜주기가 어렵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이
반년이 되고, 일 년이 되면
끝없는 죄책감이 나를 뒤덮는다.


그런데 가끔 문득 생각한다.
이건 부모의 인내로 버티기엔
너무 구조적인 문제가 아닐까.


방학이 되면 하루아침에 돌봄이 끊기고,
학교마다 다른 기준 때문에
아이의 지원 서비스가 달라진다.

보조교사 한 명이 여러 아이를 동시에 돌보다 보면
정작 도움이 꼭 필요한 아이는 기다려야 한다.
‘1:1 맞춤 교육’이라는 말은 교과서 속에만 남아 있다.


교육철학자 이돈희 교수는 『교육정의론』을 통해 말했다.
“교육복지는 단순한 공짜 배포가 아니라,
정의로운 교육의 출발이어야 한다.”


그에 따르면 교육복지란,
모든 교육 대상자에게 교육적 욕구를 충족시킬 기회와
자아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유의미한 학습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주장은 내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우리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은 모두 다르다.
아이가 필요로 하는 조건이 같을 수 없는데,
제도는 여전히 모두에게 같은 길을 강요하고 있다.


내가 바라는 복지의 방향


여러 조사에서도 이런 현실은 드러난다.
한국장애인부모회(2021)에 따르면,
현행 활동지원 제도에 대해
“신뢰하기 어렵다”는 응답이 많았다.


또한 육아정책연구소(2012) 조사에서는
부모들이 “보육기관 내 치료·교육 서비스 확대”와
“전문 보조인력 확충”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결국 부모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돌봄의 공백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
“행정이 조금만 더 우리 쪽으로 다가와 달라.”


1. 치료비 지원 확대와 급여화


발달장애인이나 자폐성 장애인을 키우다 보면
사실 돌봄보다 더 무거운 것은 매달 쌓이는 치료비의 무게다.

발달지연 아동 가정의 치료비는 월 100만~400만 원에 이르며,

언어·놀이·감각통합 치료를 병행하는 경우
한 달 200만~300만 원을 지출하는 사례도 흔하다.

하지만 정부의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는
소득과 지역에 따라 월 17만~25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치료비의 극히 일부만 보조받는 구조다.

이 금액의 차이는 고스란히 가정의 부담이 된다.

경제적으로 버티기 힘든 부모일수록
치료 횟수를 줄이거나, 아예 포기하게 된다.
그 사이 아이의 발달은 멈추고, 부모의 불안은 깊어진다.


언어치료도 병원에서 받을 때
1회(30분)에 약 7만 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중 대부분 실비 지원을 받지 못해 본인 부담으로 치료한다.

나라에서 건강보험을 적용해 이 부담을 덜어줄 수는 없는 걸까.


2. 특수교육 내 1:1 맞춤형 지원 확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보조교사의 수를 늘려 한 아이에게 한 명의 손길이 닿게 했으면 한다.

이돈희 교수가 말한 것처럼
각자의 아이가 ‘유의미한 학습 경험’을 쌓을 수 있기를 바란다.


특수아동의 부모들은
모든 것을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과 죄책감 속에 산다.
더 열심히 가르치고 싶고, 치열하게 살고 싶지만
현실은 문제행동 하는 아이를 보육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이 무기력함과 죄책감은 과연 개인만의 문제일까?


3. 찾아오는 행정 복지 시스템


부모가 해당 복지를 받기 위해서류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국가가 스스로 해당 복지를 신청하고 알려주는 구조가 필요하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 복지정책을 제대로 알지 못해 혜택을 놓치거나,
기한을 넘겨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4. 방학 중 돌봄 및 교육프로그램 운영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기는 방학이다.


학교의 문이 닫히면,
그나마 있던 배움의 기회도 멈춘다.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한 자폐아동들에게 이 시간은 퇴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학교 문이 닫혀도 배움이 멈추지 않게,
국가가 학교 안에 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해
오전만이라도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5. 스포츠 바우처 확대 및 활동 지원 강화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며
사회성과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스포츠바우처는
매년 예산 문제로 지원 나이가 줄고,
승마 서비스는 2년 이상 이용 불가로 제한되어 있다.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고 자신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런 예산은 확대되고 줄이지 말았으면 한다.


6. 장애아동·부모 동반 요양 제도 신설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최선을 다해 키웠지만 아이가 혼자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을 때
그 부담을 다른 자식들에게 남겨야 한다는 두려움이다.

외국에서는 부모가 늙거나 병들면
장애아의 나이를 부모와 동급으로 보고
함께 요양원에서 생활하도록 국가가 지원한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분리’가 아닌 ‘함께’를 전제로,
부모와 아이가 함께 돌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었으면 한다.


돌봄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아이의 나이가 늘어도,
부모의 돌봄은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제도는 여전히 숫자로 끊기고,
행정은 조건으로 나뉜다.


이돈희 교수가 강조한 것처럼,
교육복지와 교육정의는 단순한 균등히 아니라,
각자의 필요와 잠재력에 맞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나는 거창한 복지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아이와 부모가 조금 덜 버겁게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원한다.
그게 돌봄의 시작이자, 사회의 품격이라고 믿는다.


“돌봄의 틈을 메워주는 나라.”
그 문장이, 언젠가 실제 정책 이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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