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떠나기로 했다

겨울, 아이 셋과 함께 제주에 다녀오다.

by OurSlowBlooms


나는 종종 일을 크게 저지른다.

빨간대문과 넓은 마당이 인상적이었던 제주 숙소


작년 남편의 여름휴가, 남편의 이모 댁이 있는

제주로 휴가를 다녀왔다.

작은 마당을 낀 단층 주택은 너무나 예뻤고,

그 안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이모 댁에 머무르며 제주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젊은 시절 자주 갔던 그 섬이

어느새 더 특별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는 내내

어떻게 또 제주에 갈 수 있을까 궁리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같이 갈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남편은 연차가 없었고, 늘 회사에 바빴다.

아이들의 겨울방학은 너무 길고,

함께 떠나기엔 여건이 맞지 않았다.




나는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무엇에 홀린 듯 제주 숙소를 덜컥 예약해버렸다.


아이 셋을 데리고 혼자 여행을 떠난다니

‘무모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특히 그 중 한 아이가 중증 자폐를 가지고 있으니,

그 걱정은 거의 정답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떠나기로 했다.

아니,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었고

나는 매일 같은 장소 그 자리에만 서 있었다.


남편은 매일 회사에 있었고

나는 여름방학 내내 매일

“안돼”, “뛰지 마”, “소리 지르지 마”를 반복했다.

소리 지르는 아이를 말리고,

뛰는 아이를 나무라며

울고 있는 내 마음은 안아주지 못한 채.


그렇게 여름 방학 동안 내 안의 하루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그 여름방학,

제주에서 돌아오자마자 숙소를 예약했다.


내게 필요한 건 한 가지 조건뿐이었다.

넓은 마당과, 어느 정도 높이가 있는 울타리.

시내와 조금 떨어진 조용한 곳.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뛰고 떠들어도

괜찮은 곳이면 좋겠다.

그게 다였다.




짐을 싸는 새벽,

아이들 옷 한 벌, 한 벌. 개어 넣고

여행 준비물 체크리스트를 보면서

나는 거실에 잠깐 멈춰 앉았다.

혼자서 주택에서 자야하는데 잠이 올까?

아이는 낯선 환경에서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그런 걱정들을 계속 꺼내다가 다시 넣었다.


가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니까.


눈내리는 제주집 마당에서 썰매타는 건우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에게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잘했어.

정말 정말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