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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Sep 10. 2020

당일배송 한 번이라도 써 본 적 있는 사람 접어

열세 번째 소란


총알배송은 노동자의 육체를 후벼 파는 노동착취에서 비롯된다.


 인터뷰. 현정-봉봉, 월넛




130번째 노동절을 이틀 앞두고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물류창고 화재로 수많은 비정규직 물류 노동자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해당 물류창고는 이미 수차례나 안전과 관련된 경고를 받은 상태였다. 예견된 사고였으며, 인재인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폭주하는 배송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한 택배노동자들,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없이 일하는 물류업계 노동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수없이 존재한다.


 한편,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수개월째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거리'를 메우는 것은 가장 취약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이 되었다. 총알배송과 새벽 배송이라는 편리한 서비스 뒤에는 몇 배로 무거운 짐을 지게 된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13번째 소란은 물류센터 노동을 경험한 봉봉과 월넛의 이야기.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봉봉 : 여러 곳의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지난겨울을 보낸 봉봉입니다.


월넛 : 성인이 된 후로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해오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A물류센터에서 단기 알바를 한 월넛입니다.



- 물류센터 아르바이트가 힘들기로 유명한데 지원하신 이유가 있나요?


봉봉 : 음, 그냥 돈이 필요해서 했어요. 물류센터 아르바이트가 돈을 많이 주는 건 아닌데, 주간조는 익일 지급, 야간조는 일 끝나고 당일 지급이라 빨리 돈 벌기에 좋아서요. 근데 절대 돈을 많이 주는 건 아니에요. 일하는 시간에 따라 다른데 보통 일급으로 7~8만 원 줘요. 아마 계산해보면 딱 줘야 하는 최소한을 주거나 거기서 아주 조금 더 혹은 조금 덜 줄 거예요. 하지만 그 최소한이라도 주면서 별다른 경력 없어도 되고,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고, 빠르게 입금되는 곳이 없어서 하게 되었어요. 


월넛 : 저도 같은 이유에서 하게 되었어요.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왔지만 ‘물류센터 알바는 아르바이트비보다 병원비가 더 많이 든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진입장벽이 있었어요. 새벽 시간대에 출퇴근하는 게 걱정되고 자신 없기도 했고요. 그런데 먼저 해본 친구가 괜찮다고 같이 하자고 해서 해보니까 하루 정도는 할 만하더라고요. 그 뒤로 친구랑 같이 가기도 하고 혼자 몇 번 더 가기도 했어요.



- 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월넛 : 갈 때마다 다른 일을 했어요. 가장 처음 간 곳은 C기업의 냉장창고였는데 거기는 물류센터가 엄청 크고 사람도 정말 많았어요. 원래 포장이나 피킹, 입고 이렇게 직무를 정해서 일을 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날은 물량에 비해 사람이 많았는지 저한테 어떤 직무를 딱 시키는 게 아니라 박스 정리를 시켰어요. 근데 그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여기저기서 생긴 빈 박스나 바구니를 찾아서 넓은 물류센터를 계속 돌아다녀야 했고, 찾으면 그걸 주워서 바구니는 필요한데 갖다 주고 박스는 뜯어서 버려야 했어요. 앉을 공간도, 쉴 시간도 없는데, 직원들은 알바가 잠깐이라도 일을 안 하고 있으면 일하라고 재촉했어요. 종아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추운데, 참고 쉴 틈 없이 일해야 해서 정말 큰 로봇 속 하나의 톱니바퀴가 된 기분이었어요. 그다음에는 냉동식품을 다루는 A기업의 b센터에서 포장을 했는데 상대적으로 일이 쉽게 느껴졌어요. 물건을 얼음팩과 함께 박스에 넣어 포장하는 일이었는데 적당히 몸도 움직이고 쉬는 시간도 많이 줘서 일할 만했어요. 근데 거기도 물량이 미친 듯이 쏟아진 날 가서 포장했을 때는 정말… 죽을 뻔했어요. 


봉봉 : 센터마다 하는 일이 달라요. 그중 제 적성에 가장 맞는 일은 C기업 d센터의 포장 업무였어요. 포장대에 서있으면 물건을 갖다 주시는 분이 있어요. 서서 기다리고 있으면 물건을 하나씩 갖다 주시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물건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적어도 두 세 개씩 갖다 주시는데, 저는 그걸 미친 듯이 포장하는 거예요. 그분들은 물건 갖다 주시는 일만 하시니까 물량이 많을 때는 제 옆에 꽉 찬 바구니가 열몇 개씩 쌓이죠. 그 바구니에서 물건들을 꺼내 알맞은 박스나 포장지에 넣고 택배 송장을 붙인 후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요. 그 센터는 물건의 바코드를 찍으면 어떤 크기의 박스나 포장지를 사용하고, 어떤 송장을 붙어야 하는지 모니터에 다 나오기 때문에 바코드 찍고 지시하는 대로 하면 되는 게 다른 곳보다 편한 점이었어요. 몇 시간 동안 서서 포장만 하는 거라 무릎도 아프고 손가락도 아프지만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말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할 만했어요.




- 체력적으로 엄청 힘들었을 것 같아요.


봉봉 : 일하고 집에 오면 항상 뻗어서 아무것도 못 했어요. ‘피킹’이라는 포장 전 단계에서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의 바코드를 찍고 바구니에 담는 일을 했을 때는 넓은 센터를 8시간 동안 카트를 끈 채로 돌아다녀야 해서 다리가 너무 아팠어요. 또, 제조사나 거래처에서 받아온 물건 박스를 뜯어서 제품을 검수하는 일도 했는데, 몇 시간 동안 서서 무거운 박스를 내리고 까야해서 팔이 엄청 아팠어요. 이걸 ‘까대기’라고 불러요. 이게 입고 단계에서 하는 일이고 입고 다음 피킹 전 단계에서 물건을 진열대에 채워 넣는 일도 했는데, 이건 업체마다 한 사람에게 할당하는 구역의 넓이가 다르더라고요. 당연한 얘긴데 좁은 구역을 맡으면 그래도 할 만하고, 넓은 구역을 맡으면 진짜 힘들어요. 넓은 구역을 맡았는데 감시하고 재촉하는 직원도 있으면 정말 날아다녀야 해요. 까대기 전 단계에서 막 배송받은 물건들을 계약직분들이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리면 분류해서 모아 놓는 일도 했는데, 그게 체력적으로는 가장 힘들었어요. 하고 나서 어깨가 뭉치고 정말로 삭신이 쑤셨어요.


월넛 : 냉동식품 포장을 하면서 근육도 뭉치고 드라이아이스를 만지다 보니 손바닥이랑 손가락 피부가 까지기도 했어요. 근무지에서 장갑을 주는데, 그게 얇고 송장 떼는 것도 불편해서 알아서 좋은 장갑 챙겨가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또 직무가 엄청 다양해서 갈 때마다 다른 일을 하게 되고 하루에도 직무전환을 여러 번 하게 되거든요. 근데 어떤 곳에서는 매니저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 관리자분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만 어떤 곳은 처음 하는데 일을 따로 안 가르쳐줘서 눈치껏 옆의 노동자분들께 배워야 해서 혼란스러웠어요. 그러면 누구한테 배우느냐에 따라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저는 배운 대로 일을 했는데 나중에 다른 분한테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욕먹었을 때 진짜 서러웠어요. 물량이 많은 날 가면 진짜 힘든 게, 바구니 빼다가 냉동식품 포장하다가 또 상자 나르다가 진열하고 뛰어다니고… 하루에만 몇 가지씩 일을 해야 해서 몸이 힘든 건 말할 것도 없고요. 매니저분들은 빨리 하라고 재촉하면서 험한 말을 하기도 해서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요. 


봉봉 : 업무시간에 열심히 일하는 것은 동의하지만 사람을 너무 극한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처음 가면 안전 교육을 해야 하거든요. 교육 내용에는 보통 작업장에서 뛰어다니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돼요. 그런데 제가 간 곳 중에 한 곳은 안전교육도 안 했고, 거기 직원분들은 빨리 일하라고 엄청 쪼아서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최저시급에 가까운 돈을 받으려고 위험을 감수하고 일하는데, 그 업체는 인터넷에서 보니 안전 관리 철저하게 한다고 광고하고, 높은 수익을 올리는 미래가 밝은 기업이라고 뉴스도 나고 그래서 참… 어이없었던 기억이 나요.




-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또 있었나요?


월넛 : 혼자 갔을 때 만난 중년 여성 노동자분이 기억에 남아요. 2인 1조로 두 조 총 4명이 한 포장라인에서 일을 했는데 십일 이상 출근하시면서 그 라인을 진두지휘하시는 분이셨어요. 그때 저한테 자꾸 일이 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 라인에서 저 빼고는 다 친해 보였어요. 근데 뭐 어쩔 수 없으니까 그냥 묵묵히 일했죠. 그러니까 그 노동자분이 저보고 ‘그렇게 일하면 안 된다. 어느 공장에 가서든 너무 일을 잘해도 안 되고 너무 못해도 안 된다. 뺀질거리는 사람이 순진하게 일하는 00 씨 같은 사람에게 일을 몰아줄 거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좀 당황스러웠는데 그분은 혼자 서툴게 일하는 제가 신경 쓰여서 하신 말씀 같아요. 그 계기로 말 트고 친해졌고, 그분이 제 식사도 챙겨주셨어요. 그때 일 한 곳이 식사 제공을 안 해주는 곳이어서 근처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해결하거나 도시락을 싸가야 했거든요. 저는 도시락을 준비 못 했는데 그 노동자분의 차량으로 이동해서 그분이 싸오신 밥을 함께 먹었어요. 밥 먹으면서 저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이렇게 몸 상하는 일 하지 말고 전문직해”라는 말씀을 계속하셨던 기억이 나요. 또 “아는 언니랑 같이 아르바이트 신청을 하는데 그 언니는 항상 안 된다”라고 하시면서, 모집공고 상에는 연령 무관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나이순으로 걸러서 알바를 뽑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나요.


봉봉 : 작업장마다 분위기가 정말 달랐어요. 서로 누가 누군지 모르고 남 신경 안 쓰는 분위기인 곳도 있었고, 적은 인원을 뽑는데 같은 사람들이 자주 와서 알바들끼리 친목이나 텃세가 심한 곳도 있었어요. 또, 식사 제공이 안 되는 곳도 있고 밥이 맛있기로 유명한 곳도 있는데요, 몇 시간 동안 육체노동을 하면 배가 엄청 고파요. 밥이 맛있기로 유명한 곳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거의 다 고기반찬이었어요. 예전에 고기를 안 먹는 친구랑 같이 일하러 간 적이 있거든요. 그때 친구랑 간 곳의 식당에서는 고기를 안 먹는 사람도 든든하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밥이 맛있기로 유명한 곳은 정작 고기반찬을 빼면 메뉴가 정말 별로 없어서 식사하면서 같이 올 뻔했던 친구 생각이 났어요. 다들 힘들게 일하고 와서 식사하는 거고, 먹고 또 일해야 하는데 누군가는 맘껏 식사할 수 없다면 억울할 거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월넛 : 아, 또 기억나는 일이 있어요. 정해진 시간만큼 일 하고도 물량이 많이 남은 날엔 연장근무를 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2시간 연장근무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연장근무 2시간이 지나면 퇴근 시간이 됐다고 알려줘야 하잖아요. 근데 퇴근 시간 됐다고 말 안 해줘서 제 시간이 끝난지도 모른 채 다음 타임 노동자분들이랑 일을 했어요. 무임금 추가 노동을 한 셈이고, 하마터면 셔틀을 놓칠 뻔했죠. 그 작업장은 휴대폰을 내지 않는 곳이었고, 퇴근 공지 문자를 보내주긴 했는데 일하면서는 휴대폰을 볼 수가 없잖아요. 그때 정말 어이없고 화났어요..



- 소중한 경험을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있나요?


봉봉 :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총알 배송은 실제로 노동자의 육체를 후벼 파는 노동착취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몸이 정말 많이 상했거든요. 야간조로 일하니까 생활패턴이 바뀌고, 피곤해서 코피도 자주 나고 그랬어요. 한창 많이 다닐 때는 매일 세 끼를 푸짐하게 먹는데도 살이 빠졌어요. 단기 알바일 수밖에 없는 게 지속 가능한 일이 절대 아니에요. 단기간 저의 건강을 팔아서 돈을 버는 느낌이었어요. 갈 때마다 이제 다시는 안 해야지 하고 다짐하는데… 돈이 급하면 또 할 것 같아요.


월넛 : 일 자체는 정말 고되지만 하다 보니 좀 재미있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어서 계속 지원했던 것 같아요. 좀 특이한데, A물류센터 출퇴근길 셔틀을 탔을 때 창밖으로 보이는 출퇴근 길의 풍경을 좋아했어요. 어디 놀러 가는 것 같기도 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실제로 일은 절대 그렇지 않아요. 몸이 정말 박살 나요. 퇴근 직전에는 체력이 바닥이라 정신 놓으면 다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제 다시는 안 가려고요… 단기로 세게 돈 벌고 싶으면 한 번쯤 할 만해요. 근데 체력이 약한 분들은 안 하시는 걸 추천드리고, 휴일/주휴 수당 안 주는 곳도 있으니 임금 꼭 제대로 확인하고 가라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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