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 번째 소란
제가 사장님의 귀한 외동딸이어도 이런 식으로 대하셨겠어요?
글쓴이. 외동딸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용돈을 받으면서 살면 그게 다 빚 같았다. 내가 벌어서 부모님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데 돈을 써야지. 이걸로 학원비에도 보태야지. 결국, 친구들과 노는데 알바비를 다 써버렸지만 나는 늘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얼른 경제적으로 내 몫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졸업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어야 어른인 것 같았다.
1. 내가 나름 만만하게 봤던 것이 편의점 알바였다. 그래서 종각 근처 편의점에 자리를 구했다. 법적으로 1년 이상 일하는 것을 기준으로 3개월의 수습 기간을 둘 수 있었다. 그런 기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수습을 이유로 최저임금보다 몇백 원 낮은 시급을 받았다. 내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지. 원래 바로 졸업한 사람들은 잘 안 써주잖아, 였던가. 그래도 편의점 알바를 구한 게 어디야, 였던가. 어쨌든 기억나지 않을 어떤 이유로 인해 최저보다 낮은 임금을 감수하고 알바를 구했다. 들어오는 물류를 체크하고, 로또를 팔고, 담배 수량을 체크했다. 들어온 물건들을 창고에서 정리하고, 술 먹고 온 손님이 잼을 깨 놓고 몰래 도망간 자리를 치웠다.
업무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바쁠 때는 혼자 일하기 벅찰 정도로 몰렸던 기억이 난다. 그럭저럭 일을 하고 있었고, 그만두기 한 달 전에 식대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미 그걸 모른 채로 폐기만 먹으며 5개월을 일했다. 전달받지 못했던 식대 얘기, 최저임금보다 낮게 받았던 시급. 그만두는 날에 원하는 만큼 물건을 골라가라는 사장님의 말에 받지 못했던 임금 오만 원치의 물건을 쓸어왔다. 그날 동네 공원에서 친구들과 파티를 했다. 사장님이 그날 밤에 문자로 연락했다. 너무 과하다며 가져간 금액만큼 월급에서 깐다고 했다. 월급만 까 봐라, 바로 노동청에 신고 들어간다. 화이트보드에 노동법을 빼곡하게 적었다. 사장도 찔렸는지 급여는 정상적으로 들어왔다. 이게 내 첫 알바의 기억이었다. 편의점 털어올 때 사실 나도 쫄렸다. 너무 쫄려서 급여가 나올 때까지 노동법이 적힌 화이트보드를 매일 한 번씩 보고 잤다.
2. 다음 알바는 빵집 알바였다. 대중교통을 타지 않으면 구할 수 있는 알바가 별로 없는데 동네에서 알바 공고가 떴다. 일을 못 한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고 근 한 달 동안 눈칫밥 알차게 먹으며 배웠다. 미들로 시작해서 마감으로 옮겨갔고, 오픈도 여러 번 해봤다. 마감에서는 빵이 팔린 자리들을 메꾸고, 빵을 포장하고, 음료 제조하며 빵을 팔았다. 케이크를 비롯한 빵들의 유통기한을 체크했다. 내가 일한 곳은 케이크 밑바닥에 유통기한이 적혀있었는데, 그걸 확인하려고 몇만 원짜리 케이크를 들었다 놨다 하려니 처음엔 손이 떨렸다. 동네 가게라 진상도 꽤 많았다. 동네 가게면서 손님은 또 엄청나게 많았다. 커피머신 마감부터 온갖 설거지와 청소, 마감일 거리도 많았다.
사장님이 빵집을 인수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내가 일했다. 매출이 점점 증가하는 게 보였다. 손님이 한바탕 몰리고 나서 매출을 보고 놀라는 일이 잦았다. 나는 6개월 정도는 평일 마감 주 3일, 합쳐서 18시간을 일했다. 일주일간 총 15시간 이상 근로했고, 약속한 근로일에 모두 출근했으며, 계속 근로하기로 예정된 경우에 주휴수당을 법적으로 받을 수 있다. 가게가 꽤 잘되고 있음에도 주휴수당은 받지 못했다.
사장님이 주지 않는 추가적인 임금을 내가 먼저 물어볼 수 없었다. 나는 몸을 쓰는 알바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고, 작은 실수를 자주 하는 편이라서 내가 받아야 할 정당한 것들을 요구할 수 없었다. 주휴수당을 말하면 일도 못 하는 애가 돈이나 더 받으려고 한다며 나를 비난할까? 정말 나는 일을 잘하는 편이 아닌데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스트레스가 쌓였고, 15시간 이내로 주말만 일하게 되었을 때도 그 스트레스는 계속 남아있었다.
분기별로 사장님은 여행을 갔다. 못 보던 스카프가 생겼고 브랜드는 에르메스였다. 가게는 여기뿐만 아니라 한 군데가 더 있었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때문에 사장님의 지인은 인건비 감당 못 해서 공장 문을 닫았다며 토로하셨다. 하루 매출이 떨어지면 죽는소리를 했다. 매출은 갈수록 느는데 사장님의 인성은 나날이 안 좋아지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제는 기억도 안 나는데, 그게 못내 기분 나쁜 말이라 집 오는 길에 계속 곱씹었던 기억이 난다. 가게에 가끔 놀러 오는 사장님의 외동딸은 당찼고 재밌었다. 나는 그 언니와 재밌게 대화하면서도 언니와의 관계를 자꾸 비꼬게 되었다. 이 언니가 여기서 일한다고 하면 주휴 수당을 챙겨줬을까? 화기애애한 관계도 비틀어서 생각하는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기분 나쁜 질문을 혼자 곧잘 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부터 일하기 시작한 내 친구는 오픈/미들 대타를 다 뛰면서 15시간 이상을 일했다. 명절에도 거의 다 나갔고, 7일 연속으로 일하던 날로 있었다. 나보다 더 일을 잘했고, 더 긴 시간을 매니저급으로 일했다. 그러나 주휴수당은 받지 못했다. 그걸 들은 지인은 드럭스토어를 뛰면 훨씬 적은 시간을 일해도 더 많이 받았을 거라며 한 소리를 했다고 한다. 착한 게 문제일까. 가끔 나도 그 친구를 보면서 생각했다. 왜 착한 게 문제여야 하나.
꽤 오래 일한 덕분에 사장님의 추천으로 본사의 장학금까지 받았다. 받은 돈이 내가 받지 못한 주휴수당보다 조금 더 많았다. 그동안 주휴수당을 받지 못한 나를 합리화할 순 있었지만 계속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오래 일한 만큼 나름 정이 들었던 매장이었다.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을 따지지 않으면서 마음 편히 일하고 떠들고 웃고 싶었다. 친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했다. 사장님은 오래 일했다고 친구와 나의 월급을 몇백 원 더 올려주셨다. 그거면 좋은 사장님이라고 생각하셨겠지.
3. 빵집을 그만둔 뒤에 마음 편하게 주휴수당을 안 받고 15시간 이내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으로 종로 쪽 알바를 찾았는데 사장님들이 면접에서 쿨했다. 최저임금 챙겨준다. 우리 가게에서 오래 일한 사람 많다. 그런데 교육비는 못 주고 시작한다. 그건 당연한 것이고 이해하시죠? 사장님들이 말씀하시는 게 쿨하다 못해 정신의 어느 한 편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뉴스에서는 최저임금이 확 오른 것 때문에 있던 일자리도 줄이는 마당이라고 했다. 카페는 신입을 잘 뽑는 편이 아니라고 했다. 카페 일이 너무 배워보고 싶었고, 교육비를 안 주는 카페에 일자리를 구했다. 일한다고 하니 면접 본 당일에 뽑았다. 거의 밤을 새우고 면접 두 개를 연속으로 봤던 탓에 다음날 카페에서 일하겠다고 한 게 약간은 후회도 됐다.
빵집에서 음료 세네 종류 만들어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라서 실수도 많이 했다. 금방 적응할 줄 알았는데 자꾸 실수하고 혼나느라 자존감은 급격하게 낮아졌다. 하지만 점점 적응하다 보니 이 상황이 우스웠다. 코로나 한창일 때 사람을 줄여 놓고, 슬슬 매출이 정상으로 돌아갈 때 카페가 처음인 내가 혼자 못 한다고 혼나는 상황이 말이 안 됐다. 원래 정상 매출에는 미들 타임에 사람 두 명을 쓴다. 이제 토요일 미들에는 사람을 더 쓸 때도 됐다. 그런데 앞 타임 사람이 교대할 때 사람 많으면 뒷사람이랑 같이 일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손님 많으면 더 일하고, 손님 적으면 인건비 아끼게 알아서 퇴근하란 소리다. 참고로 이 사장님은 카페 근처에 본인 소유의 건물이 있다.
그러면서 사장님은 모든 알바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전에 사장님은 내부 일을 잘 모르고 알바들이 알아서 근무 시간대로 다 조정하고 열심히 한다고 말한 적 있다. 그래서 알바생에게 자율성을 많이 주는구나 싶어서 대타를 구해 놓고 여행을 간다고 얘기했다. 그러니까 근무하러 온 날에 사장님에게 먼저 물어보지 않고 통보했다고 5분을 혼났다. 참,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혼내는 이유를 늘어놓고 배운 만큼 배운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고, 기본을 알라고 했을 때 속으로 비웃었다. 이제는 혼나도 자존감이 안 깎인다. 그냥 나는 부모님이 귀하게 기른 외동딸이라 한 소리 듣는구나, 내가 귀여운 탓이구나, 한 귀로 흘려듣고 밀려드는 음료 주문을 몰아쳤다.
법적으로 시작이 안 좋은 데는 과정도 안 좋았다. 이게 내 알바 경험담의 교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류 알바도 뛴 적이 있었다. 단기로 돈을 빡세게 벌 수 있어도 일이 너무 힘들고 야간 뛸 때는 시간대도 바뀌어서 고생했다. 그런데 마음이 편했다. 근로 계약서를 쓰고, 일한 만큼 시급을 주고, 교육하는 시간이라며 혹은 처음 왔다며 시급을 깎지 않았다. 당연한 것들을 받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 있구나.
사장님들은 가끔 자식 이야기를 하셨다. 그 이야기에 사회성을 써가며 즐겁게 맞장구치면서 속으로 몇십 번을 물었다. 제가 사장님의 귀한 외동딸이어도 이런 식으로 대하셨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