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끝난 큰 아이와 함께......
“어휴! 힘드시겠어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집 사정을 아는 지인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다. 그 말속에 걱정을 해주는 따뜻한 위로의 마음이 전해져 온다. 나는 딱히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잘 몰라 겸연쩍은 듯 그저 씩 웃기만 한다. 뭐라고 고맙다는 내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 집 사정이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정작 그렇게 힘든 것도 없고, 왜 힘든지도 몰라 그럴 때마다 약간 당황스럽다. 그렇다고 “아뇨, 힘든 것 하나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저 씩 웃는 것으로 걱정을 해주는 고마운 마음에 호응한다.
두 살 터울 세 명의 아이가 어쩌다 보니 올해 모두 시험이라는 관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연초만 하더라도 아무 생각도 없다가, 시험이 다가오는 하반기가 되자 상황이 그렇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했다. 첫째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사회 진출을 위한 시험을, 둘째는 편입이라는 또 다른 도전을, 셋째는 고3으로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다. 입시생 한 명만 있어도 온 집안이 난리라고 하던데, 두 명도 아닌 세 명씩이나 되니 오죽하겠냐는 것이 우리 사정을 아는 지인들의 생각일 것이다.
힘들겠다는 주변의 말을 들을 때마다 적잖이 죄책감을 느낀다. 힘들어야 하는 데 힘든 것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좀 무디기도 해서 부모로서 뭔가를 해야 하는데 정작 해야 할 것을 행여 안 하고 있는지 계속 자책을 해본다. 그런데, 문제는 게을러서, 무책임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닌, 뭘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입시생 부모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세 명의 아이가 힘들게 공부하고, 본인의 중요한 시기인 줄은 알겠는데 부모로 뭘 따로 더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우리가 할 일이란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고, 학교 앞에서 생활하는 큰 아이에게 제때 찬거리 준비해서 간다든지, 일주일에 한 번 만나 즐겁게 식사하는 정도의 일이다. 그것은 전혀 힘들지도 않을뿐더러 기다려지는 즐거운 외식 시간이다.
친구들은 입시를 앞둔 아이를 위해 주말에 유명한 사찰을 방문하여 기도나 일정기간 수행하기도 하던데, 우리 부부는 전혀 그런 것에 문외한이거니와 굳이 그렇게까지라는 것이 두 사람의 공통된 생각이다. 힘들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이고, 우리는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 것 밖에 더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입시생 부모로 큰 할 일이 없다는 약간의 죄책감을 갖고 있던 나에게 제대로 된 할 일이 생겼다. 큰아이가 제일 먼저 시험을 쳤다. 오랜 시간 도서관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책과 싸운 아이가 시험의 여독을 풀기 위해 집으로 왔다. 얼굴에 공부한다고 고생한 티가 역력했다. 집에 오더니 하루 내내 잠만 잤다. 혹시나 싶어 방문을 빼곡히 열어보니 커튼이 쳐진 어두운 동굴 같은 방에서 자다가 스마트폰 하다가, 그렇게 이틀을 보냈다. 그리고 사흘째 아이는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말했다.
“아빠 우리 맛있는 점심 먹으러 가요.”
“이제 다 잤어? 그래, 맛있는 점심 뭐 먹을까?”
큰 아이와 나는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해변 길을 멀리 걸어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좀 더 맛있는 특별한 점심을 먹자고 했지만 아이는 그런 것은 엄마와 동생과 같이 먹어야 한다면서 그냥 칼국수 먹자고 한다. 공부하면서 자주 갔던 그 집 칼국수가 먹고 싶었다고.
LED전등아래서 햇볕이 그리웠던 아이의 얼굴에 초겨울의 맑은 햇살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시험이 끝나고 나니 내 할 일이 생겼다.
시험에 지친 아이와 즐겁게 놀아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