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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목련 Steel Magnolias Oct 03. 2024

삶과 탱고를 추듯

새로이, 자유롭게

임신한 기간 동안 기자 생활을 접고 교육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여동생을 위한 기도를 많이 해서인지 딸은 엄마인 나보다도 이모를 더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진통하는 동안 동생의 합격 소식을 들었고, 그 날 아이도 건강하게 잘 태어났다.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고, 신에게 감사드렸다. 오래 전, 내 임용고시 합격 소식을 듣고 여동생이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성에 의지해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그녀가 말이다. 


경력이 3년도 되기 전에 도교육청에 유능하다고 소문이 나고 여기 저기 불려 다니는 걸 보면 오랜 세월 동안 노력으로 다져진 흔들리지 않는 성실함은 어딜가든 자연스레 드러나나보다.


고시생 시절 언니 신발이 낡았다고 홍대에서 구두를 사주고, 공부한다고 좋아하는 록 페스티벌에 못 가 서운해하는 나를 대신하여 주말에 쉴 수 있음에도 직장인 신분으로 촬영 감독으로 자원 봉사를 하러 갔다. 서툰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을 이끌어주며 열정적으로 촬영을 하는 동생의 모습을 본 고 마왕 신해철님이 동생을 따로 불러 격려를 해주셨는데, 동생이 나의 이야기를 꺼냈고 기꺼이 합격을 기원해주셨다고 했다. 언니, 합격 부적이라며 신해철님과 좋아하는 록밴드의 사인을 자랑스럽게 건네는 동생의 말에 눈물을 글썽이던 가을밤이 생각난다. 


삶에서 도망치고 싶을만큼 가장 힘들었던 지난 3년간, 가족들과 가장 가까이 지냈다. 내가 70대, 80대가 되면 이 때가 또 얼마나 가슴 절절하게 그리울까를 상상하니 모든 순간, 모든 하루가 그저 감사하다.


철저히 자기 관리를 하며 삶과 탱고를 추듯 자유롭게 시간을 유영하는 어머니, 여동생을 보며 매일 새로이 태어나는 나의 순간을, 함께 피어날 우리의 시간을 꿈꾼다. 


동생이 그린 그림에서 어머니가, 동생이 느껴진다. 아픔과 슬픔의 조각들로 흐려진 마음이 나를 대신해 흘린 가족의 눈물로 씻겨져 흘러간 자리에 맑은 사랑이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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