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복숭아

by 영주

여름이 찬란하다고만 느낄 때가 있었다. 쏟아지는 햇살이 따갑기보다 강렬하고, 길쭉이 뻗어가는 잎사귀가 성가시기보다 건강하다고 느낄 때가. 지금보다 그때가 좋았을까라고 생각이 들면, 단연 그때가 좋았다고 단정 짓는다.

나의 순진함 때문에 모르게 상처받았을 다른 이들의 마음이 이제는 생각나지만, 그때의 찬란한 기억들이 여전히 좋은 나는 오늘도 ‘돌아가고 싶다.’고 아주 작게 읊조린다. 이별이나 상처가 없어 여름의 찬란함만 있었던 당시로 말이다. 그렇게만 모두가 머물러 오래도록 같이 산다면 정말로 좋겠다고 철없이 생각한다.


복숭아를 양껏 먹기엔 어려운 단란한 집이라, 통통하고 하얀 복숭아를 눈에 담고 마음껏 먹는 날은 할머니 댁을 가는 날이었다. 우리 가족을 더한 친척들은 할머니 댁에서 여름휴가를 보냈고, 항상 가족들이 한 박스씩 든든히 사 오는 여러 과일을 바쁘게 섞어서 먹었다.

배부르게 밥과 과일까지 잔뜩 먹고 나면, 그날만은 맑게 웃으시는 아빠가 ‘이리 나와봐!’라고 대문을 활짝 열며 나만 불렀다. 나는 별을 보여주러 그중에서도 나만 부르는 아빠가 좋았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나가면, 아주 깜깜한 밤은 배경으로 여기는 많은 별들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다. 보고 또 보고 있어도 아쉬웠고, 다 봐서 마음이 충분해지는 순간이란 없었지만 내년에 또 볼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덜어졌다.

또 볼 수 있는 건 맞지만, 별을 보고 행복‘만’ 마음에 가득 담을 수 있는 건 그날이 마지막 밤이었다.


잔뜩 사간 과일을 한입 물곤 우리에게 계속해서 건네던 할머니가 떠나셨기 때문이다.

그 해 여름엔 여름휴가가 없었고, 엄마와 산책을 하며 큰 박스 안의 뽀얀 과일이 아닌, 검은 봉지 안에 몇 개는 멍든 과일들을 잔뜩 담아 집에 왔다.

한 입 베어 물자 입안에 퍼지는 달콤함만큼 멍울진 마음에 울음이 젖어들었다. 가깝지만 멀리 앉은 할머니의 주름진 웃음이 생각났고, 여름 과일을 한 입 베어무시는 모습이 여전히 소녀같이 귀여우시다고 속으로 생각했던 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속으로 생각하던 걸 바로 옆에서 얘기하는 살가운 나였다면, 울음이 덜해졌을까?


같이 과일을 드시던 엄마가 한숨지으면, 나는 이유를 알고 있지만 이유를 물었고, 엄마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답했다.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을, 마음을 다해 어림잡으며 ‘저도 할머니가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더 말하면 울음이 새어 나올까 꾹꾹 누르며 복숭아를 먹었다. 울음보다 과일의 달콤함이 앞서는 경우는 없었고, 사실 과일이 넘어가 마음을 적시는 기분마저 들었지만 계속 베어 물었다.

그렇게 이제는 복숭아를 먹으면 마냥 달콤하지 않다. 여름이 찬란하지만은 않다. 그런 음식과 계절이 앞으로 더 많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애써 한편에 두고 작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아직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 그와의 시간이 남았음에 감사하며 오늘도 소중한 사람들의 시간은 느리게만 흘러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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