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클래스 스토리(1)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제가 마주했던 이 질문은 제 삶에 꽤나 큰 변화를 일으켰고, 비영리 단체를 도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영리 단체를 만들고, 운영하며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사실 굉장히 '이상주의자'에 가까웠던 제가 '현실'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세상에는 선의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 많다는 걸 배웠고, 실패도 했습니다. 온실 속에서 자라던 화초가 거친 들판에 놓인다는 것은, 적응 그 이상의 고통이 뒤따르는 일이었죠.
저는 아직도 비영리단체 활동을 중단하던 때를 잊지 못합니다.
세상을 바꿔보겠노라고 덤볐던 열정,
밤과 낮을 넘나들며 쏟았던 시간들,
마치 '화학적 결합'을 한 듯, 제 삶과 떼어놓을 수 없다고 느꼈던 일들을 떠나야만 했던 현실.
그 현실의 거대한 벽 앞에서 느꼈던 압도감은 실로 엄청났던 것 같습니다.
한동안 마음 어딘가가 마취된 듯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다가,
점차 마음의 마취가 풀리며 새어 나오는 고통에 몸부림치기도 했죠.
방황과 자책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어요.
나는 왜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 그 출발점에서 다시 생각하고 고민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비영리 단체를 시작하기 이전, 저는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안정적인 길이었지만, 남이 시키는 일을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소름 돋는 거부감이 들곤 했죠. 누군가 시키는 일만 하고 살아가기에 내 삶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희미했던 마음의 거부감이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뀌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나는 '의미'를 찾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싶었고, 쉽지 않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의미 있는 일'이기를 바랐습니다. 그 생각과 고민의 끝에, 내가 찾는 의미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과 닿아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내 안의 질문을 따라 회사를 그만두고,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비영리 단체도 만들고, 사회적 기업도 시도했죠. 물론 제가 생각한 만큼 좋은 결과를 일구지는 못했습니다.
야심 찬 도전의 실패가 큰 좌절로 이어지고 낙담은 포기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면 실패의 경험 앞에 제가 완전히 넘어지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흘러왔네요.
10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패와 좌절, 다시 일어서기 위한 몸부림의 시간들.'
그 과정에서 방향도, 방법도 모두 스스로 결정해야 했습니다.
결정에 뒤따르는 책임 앞에서 '살 떨리는 고독과 불안'을 이겨내야만 했죠.
그래서 더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제가 잘 몰랐던 부분까지 폭넓게 공부했어요. 경영을 전공하고 개발자의 길을 걸었지만, 이제는 철학, 심리학, 종교 같은 인문학 분야들까지도 더 살펴보게 됐어요. 한편으로는 실패의 자책을 넘어서 냉철하게 그 이유를 직면해야 했고, 거칠었던 방법들도 다듬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흐릿해졌던 방향도 다시 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 가운데에서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저와 같은 질문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거예요. 나는 누구인지,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의미를 붙잡고 살아야 하는지.
다만 그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어디서부터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를 안내해 주는 기회의 장이 없다는 것도 함께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답의 실마리를 찾았는지를 돌아봤어요. 사실 저는 누가 저를 앉혀다 놓고 '의미 있게 살아라' 가르치지 않았거든요. 그냥 경험하고 부딪히고 그렇게 느끼고 배웠던 거죠. 결과적으로 어떤 일방적인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경험'을 설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아웃클래스'를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밑바탕들이 마련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더해 아웃클래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더 있는데요.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 보려고 합니다.
깊은 경험, 다른 즐거움.
아웃클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