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을 자퇴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로스쿨 2학년에서 백수가 되다.

by 초점 밖의 삶

자퇴서를 제출했다.

저질러버렸다.


휴학 기간까지 해서 3년 반을 갇혀 있던 이 감옥에서 종이 한 장으로 너무나도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가끔 반수에 성공해서 자퇴서를 내고 홀가분한 인스타 스토리를 올리는 원우들이 있었다. 애석하게도 홀가분한 마음은 매한가지였지만, 미래에 대한 약속이 없는 나로서는 그런 스토리를 올릴 순 없었다. 사실 기말고사를 2주 앞둔 시기라 그 누구에게도 정확히 내가 뭘 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퀭한 모습의 원우들이 수업이나 스터디 따위에 늦었는지 형사소송법, 상법강의 따위의 두꺼운 책과 노트북, 커피, 독서대 등을 이고 지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 맞다, 나는 이제 이들을 원우라고 부를 신분이 아니구나.

지나가는 외부인 1이 되어 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다가 학교를 나섰다. 침을 퉤 뱉어버리고 나오고 싶었지만 그냥 곱게 걸어 나왔다.


지도교수님은 마지못해 종이에 서명을 해주시면서 하루만 더 고민해 보라고 하셨지만, 나는 이곳에 단 하루도 더 오고 싶지 않았다.


지도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너 이거 안 하면 뭐 할 건데. 발이라도 걸쳐놓고, 잠시 쉬었다가 돌아와. 뭐라도 해야지요 교수님, 저 나름 명문대 나왔는데 할게 이거밖에 없진 않을 거예요. 그리고 저 휴학 다 쓴 거 아시잖아요... 아 모르셨구나..


상담선생님도 그러셨다. 결국 우리 전부 잘 버텨서 변호사시험 통과하고 싶어서 힘든 거 아니겠어요? 같이 버텨봐요. 아니요. 선생님은 끝까지 절 이해하시지 못하시는군요. 전 그냥 이곳이 지긋지긋해요.


그렇게 나는 로스쿨 2학년이 아닌 공백기 2년의 백수가 되어 학교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미래가 상상되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이나, 조금은 마음이 덜 답답했다.

변호사시험 따위를 걱정하는 것보다 이 드넓은 세상에서 무얼 하며 살아갈지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덜 답답했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주도적으로 한 가장 큰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하였음에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로스쿨을 그만두면 하늘이 무너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은 여전히 파랬고,

봄바람은 여전히 선선했으며,

나는 여전히 새파랗게 어린 20대 중반이었다.


그래서 시원하게 학교를 걸어 나올 수 있었다.

로스쿨을 그만둔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이젠 알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