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로스쿨에서 도망쳤을까

절벽 끝에 매달려 버티던 시간에 대하여

by 초점 밖의 삶

“로스쿨을 왜 그만뒀어요?”

최근 1년 간 가장 많이 들은 말들 중 하나다.

정확히 한 문장으로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보통은 그냥 이렇게 얼버무린다.


“법 공부가 좀 안 맞아서요.”


사실 나는 로스쿨을 꽤 쉽게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포기하기 쉬운 대상으로 여겨지도록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걸지도 모르겠지만.

존경하던 선배, 좋아하던 친구, 함께 놀던 동기들이 로스쿨 준비를 하는 걸 보고 막연하게 리트 준비를 시작했었다. 리트 점수는 날 때부터 결정된다는 ‘리트신수설’을 굳게 믿었던 나였지만 나름 성실하게 기출문제를 풀고, 스터디에 참여했으며, 꽤나 괜찮은 점수를 받아 들고 로스쿨에 진학했다.


솔직히 그렇게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과에선 꽤나 많은 비율의 인원이 매년 로스쿨에 진학했고, 다들 3년 버티고 변호사가 되어 짜잔, 하고 나타나곤 했다. 나라고 못할 이유가 없지.


내가 로스쿨에 진학했을 때는 코로나 막바지였다.

대학 시절 내내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나에게 로스쿨은 너무나도 외로운 곳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자들과 하루하루 공부 시간을 겨루었고, 겨우 만나는 스터디원들과는 그렇게 가까워지지 못했다. 대신 누구는 입학 첫날부터 하루 열 시간씩 공부한다더라, 누구는 시중에 있는 사례집을 전부 3 회독씩 한다더라, 따위의 고등학교 이후로 들어보지 못한 괴담들을 들었다.


그리고 그건 괴담이 아니었다.


첫 중간고사를 치고 나서 교수님께 개인 강평을 들으러 갔다. 객관식 40문제에 3문제나 틀리다니, 교수님은 용납할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평균이 39점대이고 중간값이 40점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셨다. 사례형은 나쁘지 않았지만 쟁점 누락이 있고 판례 문장을 정확히 쓰지 않아 점수를 줄 수가 없다고 하셨다. 학교 적응이 힘들다고 하니 교회를 다녀보라고 성경 글귀가 적힌 책갈피를 특별히 두 개를 주셨다. 종교가 도움이 되는 순간도 분명 있겠으나, 당시 나에게 썩 도움이 되었던 조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그냥 버텼다. 절벽 끝에 매달린 사람이 손을 놓지 않으려고 버티듯이 버텼다.

주변에서는 말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버텨야지, 다들 힘든 건 매한가지야, 변호사가 되면 괜찮아질 거야. 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학부 때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휴학을 두 번이나 하면서 버티고 또 버텼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조금씩 망가지고 있었다. 불면증이 생겼고, 누우면 가슴이 쪼이고 토할 것 같은 역류성 식도염이 만성적으로 찾아왔으며, 허리 디스크와 목 디스크가 손발을 저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각한 우울증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잠식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여기서 살아남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버티고 있다는 것을.


결국 나는 로스쿨을 그만두었다.

절벽에서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다들 그 밑은 절벽이고 떨어지면 끝이라고 했다. 하지만 매달려서 말라죽는 것보단 떨어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막상 손을 놓으니 별거 없었다. 사실 그 밑이 절벽이 아니었다는 걸, 괜히 무서워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아직도 나는 내가 왜 로스쿨을 자퇴했는지를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곳에 계속 남아있었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덜 나다운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전 01화로스쿨을 자퇴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