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길에서 벗어난 뒤에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자신이 정해둔 길과 다른 길을 들면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로스쿨을 자퇴한 나에게 하는 말도 비슷하다.
“그래서 이제 뭐 할 건데?”라는 주변인들의 질문은 경로를 이탈했으니 이제 어느 길로 갈지를 묻는 것 같았다.
나는 꽤 오랫동안 사회가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착실하게 밟아왔다. 반장이나 학생회 따위를 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명문대의 좋은 학과에 진학하여 4점대의 학점을 유지하고 인맥도 쌓아왔다. 내 인생의 당연한 다음 단계는 로스쿨을 무사히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여 훌륭한 법조인이 되는 것이었다.
로스쿨에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면 종종 이런 말을 들었다.
“그래도 3년만 버티면 변호사잖아.”
끝이 정해져 있다는 약속 같은 달콤한 말이었다.
내 주변에는 저마다 자신만의 잘 닦여진 길을 걸어가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난 재수도 한 번 안 하고, 로스쿨도 단번에 왔어. 지금 휴학을 해버리면 더 이상 완벽한 인생이 아니게 될까 봐 두려워.” 로스쿨 휴학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로스쿨을 자퇴함으로써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이 정해둔 길을 이탈했다.
다들 나에게 묻는다.
이제 뭐 할 거니?
다른 시험 준비할 거야?
취업 준비하려고?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어?
나를 처음 본 사람도 내가 로스쿨을 그만둔 이력을 밝히면 이런 질문을 한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항상 다음 답을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다만 지금은 다음 단계가 아닌 지금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예전에 제주도에서 차를 렌트해 여행한 적이 있다.
항상 내비게이션을 켜고 다녔지만 몇 번이나 경로를 이탈했다.
그럴 때마다 내비게이션은 다시 길을 찾아 안내했지만, 가끔은 다른 길로 간 덕분에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기도 했고, 우연히 마음에 드는 포토 스폿을 발견하기도 했다.
지금부터의 내 인생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경로를 이탈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게 꼭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찾아가고, 그 길목에서 마음에 드는 순간들을 포착하고 싶다.
최단 거리가 아니면 어떤가. 내가 그 길 위에서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