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일의 단서
로스쿨을 그만둔 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나가기 전에, 로스쿨에서의 나의 모습이 어땠는지에 대해 써보고 싶다.
솔직히 로스쿨에서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가감 없이 말하자면 로스쿨에서 흔히 말하는 ‘심연’이었다.
문제는 내가 공부를 안 한 사람도, 못 하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이다.
입학 전에는 착실히 선행학습을 했다.
학기 중이든 방학이든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교과서와 판례집을 읽고 사례를 썼다.
강의를 열심히 듣고 정리했으며, 스터디에 꼬박꼬박 참여했다.
정말 말 그대로 토가 나올 때까지 공부했다.
공부는 한가닥 하던 나였기에, 엉덩이 싸움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첫 시험 직전에는 내가 직접 만든 정리본을 뿌듯하게 원우들에게 나누어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결과는 항상 내 기대 이하였다. 아니, 객관적으로 봐도 별로였다.
로스쿨에선 모두가 열심이다. 내가 100을 해도 남들이 120을 하면 난 그냥 20 모자란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 틈 속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완벽해야 한다. 전교 1등들을 모아놓고 줄을 세운다고 생각하면 쉽다.
문제 속에서 쟁점을 정확히 낚아채고, 그 쟁점에 맞는 법조항이나 판례 문장을 정확히 기억해 내서 쓰고, 교수님이 기대하는 구조대로 답안을 빠르게 작성해내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빠뜨리면 점수는 가차 없다.
공부를 할 땐 분명 재밌었고 다 이해가 되는 것 같았는데, 성적을 받아 들면 난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 같이 느껴졌다.
아, 역시 난 법이 안 맞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법조인의 길에 회의를 느끼고 처음 휴학을 했을 때, 재미 삼아 실무수습을 신청했다. 운 좋게 선정이 되어 실무수습을 나갔는데, 시보로서의 생활은 뜻밖에도 정말 재밌었다. 사건 기록을 읽어보고, 관련 자료들을 정리하며 주어진 서면을 작성하는 일은 짜릿했다. 동기들과 토의하며 새로운 접근 방법을 생각해 내고, 실제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법과 판례를 뒤져보는 일은 밤새 해도 질리지가 않았다.
그렇게 제출한 과제는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나의 아이디어를 실제 사건에서 응용할 수도 있겠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내가 쓴 서면이 실무에서도 충분히 사용 가능한 수준이라는 칭찬을 들었을 때, ‘아 나 변호사 하고 싶네, 이거 나름 보람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시험은 정답을 찾는 일이지만, 실무는 문제의 현실적인 부분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일이었다. 정해진 답을 향해 논리를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의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방법을 탐색해야 했다.
로스쿨을 떠난 뒤 나의 방향을 잡는 데 이 경험은 큰 영향을 미쳤다.
시험에서는 점수가 남는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어떤 사람의 삶이 남는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잊힐 점수와 석차로 기억되는 사람보다,
누군가의 삶에 작은 발자취를 남긴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로스쿨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단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