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정답 같은 인생’을 계획했다.
자퇴서를 제출하고 본가에 내려가는 길,
기차에서 노트북을 열어 나름의 ‘자퇴 후 인생 계획’을 세웠다.
부모님께서 얼마나 실망하셨을지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가 가장 두려웠기에,
나는 늘 그래왔듯 틀에 박힌 미래를 꾸역꾸역 생각해 냈다.
그 계획은 대충 이러했다.
다른 전문직에 도전한다.
대기업에 취직한다.
아니면 다른 로스쿨에 들어가 본다.
지금의 내가 보면 웃기지만, 당시엔 정말 진지했다.
아니 못해먹겠다고 로스쿨 탈출한 애가 겨우 생각해 낸 미래 계획이 또 다른 불안 속에 스스로를 집어넣는 거였다니.
부모님께서는 몇 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고 경제적 지원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경쟁에서 한번 이겨내지 못한 사람이 또 다른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냐고 질책하셨다.
아, 나는 더 이상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로스쿨생 딸이 아니구나.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취직이었다.
이제는 정말 돈을 벌어야 했다.
사회생활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몇 년을 학교에 갇혀 있었던 나는 사람과 세상에 목말라 있었다.
그렇게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대학 시절부터의 이력을 긁어모아 이력서를 쓰고,
로스쿨 시기의 공백과 로스쿨 자퇴의 이유를 구구절절 풀어낸 자기소개서를 쓰고 또 고치고,
채용 공고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 특이한 이력은 꽤나 이목을 끌었는지, 지원한 곳에선 웬만하면 면접까진 불러주었다.
여전히 “근데 왜 로스쿨을 그만두었어요?”는 어디서나 날 따라다니는 질문이었다.
꽤나 보수적인 편이었던 한 기업의 면접에 각 잡힌 양복을 입고 갔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빳빳한 양복을 입고, 똑같이 빳빳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사실 관심도 없던 분야의 회사였는데 열심히 관심 있는 척을 했다.
내가 속한 조의 인원들은 빼어난 말솜씨와 엄청난 직무 분야 지식을 뽐내며 다들 꽤나 면접을 잘 보았다.
소름 돋는 사실은 이들 중 아무도 면접에 붙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너무나도 작은 취업구멍.
그리고 여전히 뭘 할지 모른 채 그 앞에 서 있는 나.
도피처럼 시작한 취업 준비는 내게 방향을 알려주지 못했다.
오히려 얼마나 내가 길을 잃었는지만 더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이게 정말, 로스쿨을 호기롭게 그만두던 내가 원하던 삶이 맞을까.
그래서 나는 취업 준비를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조금은 엉뚱한 선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