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희미했던 사람이 자신의 색을 다시 찾기까지

by 초점 밖의 삶

나는 어른이 되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쯤은 분명히 알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희미한 사람이었다.

취미도, 취향도 없는 희미한 사람.

좋아하는 가수도, 좋아하는 음식도, 좋아하는 계절도 명확하지 않은 희미한 사람.


그래서였을까,

나는 로스쿨에도 희미하게 스며들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한 질문이 아니었다.

늘 좋아하는 것보다 ‘잘해야 하는 것’들이 우선이었다.


시험, 성적, 합격, 다음 단계의 목표.


무엇을 잘하는 지도 확신하지 하는 나에게, 좋아하는 것을 생각할 여유는 더더욱 없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탐구는 엘리트 코스를 달리던 나에겐 사치처럼 느껴졌다.


로스쿨을 그만두고 나서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되었다.

이번 기회에 나의 색을 선명하게 찾아보고 싶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더라.

기억을 더듬어본다.


아 맞아.

나는 책을 좋아했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작은 도서관 같았다.

보통의 집에선 텔레비전이 있어야 할 위치에도 책장이 있었고, 책이 너무 많아 책을 두 줄로 꽂아두곤 했다. 우리는 그걸 ‘이중주차’라고 불렀다. 부모님께선 내가 읽을 책을 사는 데에는 돈을 아끼시지 않으셨다.


나를 처음으로 밤을 지새우게 만든 것도 독서였다. 조금만 더, 한 장만 더, 를 반복하며 책을 읽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고, 어느새 창밖이 밝아오곤 했다.


그 열정이 문득 그리워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북리더를 사서 매일 들고 다녔다.

많이 읽을 때는 한 달에 열 권씩 책을 읽었다.

내가 잊고 있었던 열정이었다.


책을 읽다 보니 또 하나 떠오른 것이 있었다.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어릴 때 나는 일기를 매일 꾸준히 썼다. 일기 쓸거리가 없으면 소설이나 시를 창작해서 쓰기도 했다. 작가를 꿈꾸며 아직 나오지 않은 시리즈의 마무리를 상상해서 써보기도 했고, 아이디어 노트에 앞으로 쓸 판타지 소설에 대해 떠오르는 영감을 메모하고 초안을 써보기도 했다.


예전에 좋아했던 것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새롭게 발견한 것들도 있었다.


카메라를 샀다.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포착하는 일은, 아직 이 세상이 살만하다는 생각을 나에게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길 가다 본 고양이며, 아름다운 빛깔의 하늘, 곱게 물든 낙엽 등을 찍으며 작은 희열을 느꼈다. SNS에 사진 계정을 만들어 내 시선으로 본 세상의 아름다움을 반대로 세상에 공유했다.


레고와 건담을 조립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좋은 편이었는데 무언가를 조립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내 손으로 무엇인가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만드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단계에 따라 착실히 진행했을 때 완전한 결과물이 보장된다는 것도 썩 뿌듯한 일이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다시 찾아가면서 꺠달았다.


나는 취미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들을 잠시 잊고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어느덧 나는 더 이상 희미한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누군가가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망설임 없이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책, 글쓰기, 사진, 그리고 조립.


어쩌면 나는 이제야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할 여유가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그리고 그 질문에

조금씩 대답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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