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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Aug 17. 2024

'나의 프루스트 읽기 연습'

이수은, 느낌과 알아차림

 

1. 그간의 독서 기록


8월도 중순이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막 끝냈고 밀리의 서재에서 ≪AI 사피엔스≫를 듣고 있다. 릿터에서 발견한 김기태 작가의 단편이 좋아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샀다. 호기심에 리디아 데이비스의 책을 빌렸는데, ≪불안의 변이≫는 읽다 말았고 ≪형식과 영향력≫은 완독각. 그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기가 지지부진하던 차에 부스터가 되어줄 책을 도서관 신간코너에서 발견했다.



2. 이수은 작가의 ≪느낌과 알아차림≫: 나의 프루스트 읽기 연습


3년 4개월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며 기록한 글을 모은 책이다. 무언가에 깊이 빠져 있고 그것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그 생각들을 면밀하게 점검한 '시간'이, 그 시간을 지속시킨 애정이 선명하게 보인다. 첫 챕터를 읽자마자 ≪시간≫ 책장에 이 책을 함께 꽂아두고 싶어졌다.  

    

책을 읽는 동안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었다. 그 이름들을 생각하며 내가 보낸 시간을 돌아보았다. 인생작가라느니 인생작품이라느니 호들갑스러운 고백들이 부끄러웠다. 제대로 읽기 위해 나는 이토록 치열하게 읽어본 적이 있었나, 애정을 빌미로 오독하려 한 적은 없었나, 빛나는 문장들을 앞세워 나를 방어하려 하지는 않았나... 독서에도 애정에도 나태했다. 책의 어떤 문장 앞에서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시간≫만이 아니라 어떤 책이든 읽는 동안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내가 '읽고' 있는지 특정 목적으로 '소비하고' 있는지 따져볼 것. 그리고 ‘느낌’에서 ‘알아차림’으로 나아갈 것.       


이 책은 ≪시간≫ 입문자를 위한 믿음직스러운 가이드이자 끝까지 가보자고 독려하는 동행인으로도 더할 나위 없지만, 기대치 않게 내 독서생활을 되짚어보게 하여 좋았다. ≪시간≫과 진도를 맞추기 위해 3부까지만 읽었다. 특히 3부는 작가와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시간≫ 4편 <소돔과 고모라>를 읽기 전에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1부 반유대주의 편을 꼭 읽어보자(고 일단 내뱉고 미래의 내가 책임지기)!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것은 그 대상의 내재적 통일성, 그러한 형상을 빚어내는 원리로서의 패턴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들뢰즈의 지적대로, <<시간>>에 대해 논할 때 거듭 지목되는 여러 표상들은 이 소설의 근본 구조를 이루는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패턴에서 뻗어나온 줄기들, 새 가지를 틔워내는 마디들, 생장하는 패턴의 말단에 맺힌 이슬들이다.     

이런 개별적 파편들 가운데서 답을 찾으려 한다면 독자는 이 놀라운 감수성의 세계, 광활한 느낌의 바다를 영원히 떠돌게 될 것이다. ‘마르셀’이 오랫동안, 거의 평생을, 감각의 세계에서 길을 찾으려 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각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데 실패하게 될 것이다. 감수성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들에 체계를 부여하는 것은 인식이다. 독서는 느낌에서 알아차림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그것은 중력을 떨치고 날아오르는 높이뛰기처럼 연습을 필요로 한다.     

들뢰즈는 이 과정을 ‘배움’으로 규정한다. <<시간>>은 “한 작가의 배움의 과정의 이야기”이고, 이때 배움이란 기호(sign)의 해석을 습득하는 것이다. 화자의 기억으로부터 소환되는 추억들과 이미지들은 “배움의 원료들”이다.” pp11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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