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7. 불의 날. 비. #읽은책 아니고 #산책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t9aZFgD0mic
추석연휴가 시작되었다. 간만에 서점에 갔다. 그것도 같은 곳엘 연이어 갔는데, 한 번은 친구 k와 갔고, 또 한 번은 J를 따라갔다. 서점은 여느 평범한 상점이라면 있지 않을 법한 한적한 주택가 깊숙이 들어앉아 있었다. 나는 두 번 모두 차로 이동했다. 하지만 버스가 다니는 대로변에서 골목 안쪽으로 걸어 걸어 들어간다면 마치 누군가의 집을 찾아가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친구는 블라인드북을 골랐고, J는 전공 관련 책을 두 권 골랐다. 그리고 나는...
언제부터인가 서점에서는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갖고 싶은 책을 찾아 헤맨다. 그렇게 산 책은 책상이나 책가방이 아니라 책장으로 직행한다. 어떤 책들은 심지어 래핑되거나 띠지로 단정하게 묶여 배송된 고대로 꽂아둔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책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다. 대출해서 읽고는 너무 좋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본되기 이전이라 세 권이 투박한 비닐봉투에 든 채 그대로 꽂혀 있다. 그게 2009년도이니 그해가 기점인 된 셈인가. 그 즈음에는 읽고 싶은 책이든 갖고 싶은 책이든 미친 듯이 사들였다. 아이를 데리고 동네 헌책방을 도서관만큼 들락거려 사장님이 J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였다.
어제는 J가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를 읽고 싶어 하길래, 표제작이 수록된 24년도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을 책장에서 찾아주었다. 이 책도 특별한 사은품들과 함께 랩핑되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미공개 미니픽션 소책자로 내 책장에서도 미공개된 상태로 남겨 있었던 거다... 나는 독서노트인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수상집을 읽지 않고 모아만 둔 지 몇 년 되었다. 수상작 대부분을 계간지나 다른 수록집에서 이미 읽은 탓도 있지만, 실은 설렘을 잃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올해의 수상작은 무얼까 점쳐보고, 날짜를 헤아리며 책의 출간을 기다리고, 배송된 책에 두근거리며 서둘러 펼쳐보고, 올해 수상작 읽어봤냐 어땠냐 설레발치며 독서 지기들과 다시 베스트를 꼽아보기도 했다. 그런 독서 의례를 마치 절기 의식 치르듯 갖곤 했었지. 아주 오랫동안 이상문학상이 그런 즐거움을 주었는데... 마음이 식어버렸다.
아무튼, 포장도 풀지 않는 이런 게으른 행태가 책을 장기보관하기에는 뭐 나쁘지 않지... 아니, 좋아하는 책이라면 이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은 물론 나만 하려나. 남편이 책장 속 사정에 일일이 관심 갖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그날도 나는 매의 눈을 한 채 서점 안을 어슬렁거렸다. 이렇게도 탐나는 책들이 많다니 참으로 즐겁고도 괴롭구나 탄식하며. 그러다 반양장 사철 제본된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펼쳐보자마자 바로 알았지. 나는 어김없이 내적 비명을 질렀다. #어머저건사야돼
#사적인서점 #책싸개 그림은
#휘리 작가님의 #흐르는초록
설민아 작가의 동명 전시를 엮은 에세이《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에는 전시회를 다녀간 10만명의 목소리 중 450개가 담겨 있다. 읽다 보면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나는 우리들의 이야기.
차마 말하지 못해
'부재중 통화'가 되어버린 이야기,
당신에게도 있나요?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 진정 위로가 되었던 건 "괜찮아, 힘내"라는 말이 아니라, 이 세상에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전화기에 대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사람들은 그 자체로 이 세상의 누군가에게 선물을 전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들이 쏘아 올린 주파수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공명하길 바란다.”
-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