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작가의 《우리가 열번을 나고 죽을 때》를 읽던 중이었다. 불현듯 창가에서 한낮의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4호선 창동역을 지나쳐 노원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전철 안은 어느새 한산해져 시선을 가로막는 이가 없었고, 창밖 사정도 비슷하여 도시 전경이 눈에 환히 들어왔다. 아파트숲과 상거건물들이 옆으로 떠밀려 갔다.
저 멀리 암릉이 군데군데 보이는 산이 도봉산인가, 불암산인가?
S언니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다시 읽어보려 했지만 시선은 도로 창밖으로 향했다. 하릴없이 책을 덮었다. 지하철을 탈 때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한강이 보이는 구간도 좋지. 허나 가장 좋은 때는 역시 지하에서 지상으로 전철이 막 올라와 읽던 책 위로 햇살이 쏟아지는 순간이다. 불지불식간에 경로가 틀어져 어느덧 다른 세상으로 진입해버린 듯 기분좋은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걸 마지막으로 경험한 건 몇년 전 3호선에서였다.
화정에서 원당을 지나 삼송역으로, 지축역에서 구파발역으로, 전철은 지하와 지상을 여러 차례 오르내렸다. 전철 안에는 빈 자리가 드문드문했고, 창밖으로는 서울에서 보기 힘든 나지막한 구릉과 과수원과 숲 위로 가득 열린 하늘이 보였다. 바깥이 막힌 벽으로 어둑해지면 책을 읽다가 시야가 환하게 열리면 빠르게 물러서는 풍경들 속으로 시선이 빨려가곤 했다. 장면의 연속적인 전환과 규칙적인 덜컹거림이 문장을 따라 흐르는 생각의 리듬과도 묘하게 어울려 즐거웠다.
그때 읽던 책은 정지돈 작가의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이었다. 그 책에도 이런 이동과 관계된 짧은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그 에세이가 그 즈음 읽었던 글 중 가장 좋아서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날 나는 막내동생을 만나 전시를 보고 을지로에서 라떼를 마셨다.
오늘의 모임을 위해 나는 예전과 다른 경로를 선택했다. 의정부행 외곽고속도로를 타서 목적지인 서울 북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마을버스와 전철로 도의 경계를 넘어 서울 복판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S언니는 굳이 힘들게...그냥 차로 오지, 하고 만류했으나 남편은 평상시 내 활동량을 지적하며 등을 떠밀었다. 때마침 나는 《편안함의 습격》을 완독한 터였다.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대해 몇 주에 걸쳐 읽지 않았나.
책은 긍정적& 부정적인 의미에서 미국적인 바이브가 물씬 풍긴다. '사냥'이라는 소재가 심리적 장벽이 되긴 했으나, 동일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경험의 멸종》보다는 읽는 재미가 있었다. '한달간의 알래스카 오지 트레킹 & 순록 사냥'이라는 야생적이며 육체적인 모험을 중심축으로 삼는 내용면에서도, 주제를 다루는 형식(구조)적인 측면에서도 그러했다. 소설적 재미와 인문 에세이의 매력을 고루 취한 책이었다.
책의 설득력과 내용에 관해 말하는 건 무의미할 성싶다. 제목만 읽어도 대부분 맞장구치지 않을까. '컴포트존 너머 세계 탐색', '자기 확장',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나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도전'(물론 책에서 언급된 도전 원칙이 놀랍기는 하다. 과제 수행시 죽지 않는다라니)!
처칠은 말했지. 앉을 수 있을 때 서지 않고, 누울 수 있을 때 절대 앉지 않는다고. 실상 그는 #nevergiveup 외치며 매일 16-18시간을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이런 에너지 보존 전략을 취했다지만, 이 하찮은 몸은 제 안위를 위해 그 말을 악용해왔다. 그래서 안 읽어도 이미 읽은 듯한 책을 선뜻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나 또한 내 작은 세계에서도 위기를 느끼고 있어서다. 편안함이 나를 습격하고 있다! 남편과 J는 입을 모아 말한다. 엄마가 저렇게 안 움직이는데도 살이 안 찌는 이유는 먹지도 않아서라고. 그렇다. 나는 음지식물처럼 살고 있다...
몸을 쓰는 인간으로 진화해온 존재로서 '물질 세계'를 '감각'하고 '경험'하며 살아가기...라고 내뱉고 나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내가 하고 있는 게 고작 전철 타고 멀리 가보기 따위라서. 그렇다고 저자처럼 오지로 떠날 일은 절대 없겠지만(주의력이 떨어진 요즘 같아선 장거리 고속도로 야간운전이 더 위험한 도전이 될지도).
서너시간 왕복 끝에 소설 한 권을 완독했다. 어느 역에선가 한 아저씨가 "여 앉아서 읽어요." 목청 높여 빈자리를 권해주기도 했다. 불편해 보였나. 시선이 일시에 쏠려 마음이 불편해지긴 했다. 오늘 여정의 주제가 불편함이긴 했으나. 고개를 꾸벅 숙이곤 냉큼 앉았다. 적당한 흔들림과 소음 속에서 읽은 책은 기억창고에 아주 오래 기억될 것이다.
신경과학자 리사 제노바는 말한다. 1년 간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는 날은 10일 내외이며, 가까운 과거도 채 3% 가량 기억에 저장될 뿐이라고.
"뇌는 의미 있는 것들만 기억하도록 진화했어요.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의미죠. 그래서 우리는 무엇에 집중할지 신경 써서 골라야 합니다. 먹구름에만 초점을 맞추면 햇살이 눈부신 순간이 와도 알아차리기 힘들어요. 우리는 보고 싶은 대로 보거든요."
- 김지수, 《의젓한 사람들》 , p337
그날 나는 성해나 작가의 중편을 읽었지, 우리가 열번 나고 죽는 천년 세월 동안 버텨온 것들을 떠올려봤어, 언젠가 가족과 한밤중에 올려다봤던 첨성대를 생각했고, 서울을 내려다보는 암릉들과 한결 멀어진 가을 하늘을 바라봤지, 그리고 운동을 다시 시작하자고 소소한 다짐을 했어. 경제학자 러셀 로버츠도 말했잖는가. '최고의 결정'은 없다고. 오직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을 뿐이라고. 전날의 작은 결심이 다음 날의 작은 여행으로 이어졌고, 인생의 많은 날들이 그러하듯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