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나이 중에서도 ‘서른’은 유독 다른 나이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곧 나이 앞에 숫자 ‘3’이 달린다는 사실만으로 무슨 인생의 큰 시련을 앞둔 사람 마냥 호들갑을 떨던 스물아홉을 기억한다. 아마 나뿐만이 아닌 대한민국의 수많은 스물아홉들이 그랬으리라.
어린 시절에는 서른이 되면 진짜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번듯한 직장에, 차도 있고, 결혼도 해서 당당히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씩씩하게 해내는 어른. 하지만 나의 서른은 전혀 달랐다. 나는 그동안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때려 치웠고, 차는 커녕 운전면허도 없었으며, '내 인생에 결혼이란 없다'를 입에 달고 사는 독신론자가 되어 있었다. 예상과는 다른 전개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내 자신이 싫은 건 아니다. 원래 인생이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1989년, 아버지가 서른이 되던 해에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문득 아버지의 서른이 궁금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된 기분은 어땠을까. 집안의 가장으로서 감당해내야만 했던 삶의 무게는 어떠했을까. 자식을 가진다는 것, 아버지가 된다는 것, 어쩌면 나는 평생 알 수 없을 것들. 생각해보면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참 많았구나.
2018년, 내가 서른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이 세상 모든 죽음이 갑작스럽겠지만, 이보다 더 갑작스러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언젠가는 올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나는 가끔 두려웠다. 부모님과 내게 남은 시간이,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보다 더 짧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그럴때마다 나는 ‘100세 시대’라는 말을 애써 떠올리며 두려움을 부정했고, 그것을 핑계로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손편지 쓰기, 리마인드 웨딩 화보 찍기, 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짧은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 등, 하고 싶은 리스트의 목록은 나날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나중에’라는 변명으로 그 목록은 하나도 실행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영 실행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흘려보낸 모든 시간들이 후회되고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4개월이 지났다. 나는 시간이 흐를 수록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흐려질까봐 겁이 난다. 그래서 다짐했다. 더 늦기 전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활자화시키기로. 이 글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다.